5평 남짓하는
아늑한 그애의 자취방에 발을 들였던 날
그 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밤10시 쯤이었나
학교에선 꼭 붙어다니는 단짝이지만
연락은 귀찮아하던 그 애 에게서
대뜸 카톡이 먼저 왔던게.
웬일로 연락을 먼저 하지? 심심한가
라는 의구심을 품은채 본 그 애의 카톡 내용은
자기가 마치 구여친인 것 마냥...이라기 보단
좀 더 투박한 느낌의
"야 자냐?"
"1초 답장해라 뭐하냐ㅡㅡ"
ㅋㅋ..나는 보자마자 피식대며
답장을 보냈다.
"자기야 우리 이미 다 끝났잖아 나 요즘 만나는 사람 있어 구질구질하게 굴지 말고 깨끗하게 잊어줬음 좋겠어 이제 이런 카톡 보내지마 차단할게"
왠지 구여친스러운 카톡 내용에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 드립을 좀 쳐봤다.
그러나...
"너 모솔이잖아 ㅋ"
아직 밤 10시밖에 안됐는데
새벽에 잠 못들까봐 미리 눈물샘 터뜨려주는
친구의 깊은 배려심에 감탄하며
다시 답장을 보냈다.
"ㅋㅋㅋㅋㅋㅋ 에효 모솔은 드립도 못치네 서러워서 살겠나.. 근데 평소에 카톡 귀찮아 하더만 웬열?"
" 아 다른게 아니라 우리집 전구가 나갔어.. 근데 나 전구 갈 줄 모르거든.. "
" 근데? "
" 아니 근데가 아니라 xx아 답답하네 니가 그래서 모솔인거야"
"갈아주러 갈려고 옷 갈아입고 있는 중이었는데 뭐라고? 한번만 더 말해줄래?"
"소인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시옵소서"
"뭔가 부족한데? 그 정도로 전구 갈아주러 가주겠냐?"
"나 지금 치킨 시켜놨는데 오기 싫음 말던가 "
"반반에 치킨무 많이?"
"ㅇㅋ"
"오 지져스 치렐루야"
"닥치고 튀어와"
귀찮았지만
마침 배도 고팠고 치킨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는
여자인 그 애가 걱정되는 마음 반
치킨을 먹고 싶은 마음 반 에는 개뿔
그냥 머릿속엔 치킨이 먹고 싶은 맘으로 가득찬 상태로
반반에 치킨무 많이!를 만세 삼창 하듯 외치며
그 애의 원룸으로 걸음을 옮겼다.
"띵똥"
"ㅇㅇ이냐?"
"접니다 저라구요 저예요"
"병xㅋ"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방안의 컴컴함
오롯이 핸드폰 불빛으로만 방 안을 밝히고 있는
그 애의 방은 왠지 모르게 분위기 있어보였다.
"야 분위기 좋은데?ㅋㅋㅋㅋㅋ 이대로 지내는 것도 괜찮을듯"?
"아 싫어ㅡㅡ 무섭단 말이야 곧 있음 치킨온다고 빨리 전구나 갈아줘"
"니 얼굴이 더 무섭다"
"닥쳐라ㅡㅡ"
"뭐 그래 치느님을 영접하는데 예의가 아니지 암 전구는 ?"
"저기 씽크대 밑에 보면 있음"
5평 남짓한 방도
어두우니 물건 하나 찾기가 쉽지 않다
핸드폰 후레쉬에 의지한채
분위기 좋다는 말을 연신 해대며
전구를 찾았다.
그러고서 친구가 미리 준비해 둔 의자에 올라섰고
내가 또 전구 가는데에 도가 텄다며
"10초컷 한다 잘봐라"
라고
너스레를 떨며 전구를 갈기 시작했다.
한손으론
불을 비춰야 해서
한손으로만 전구를 갈아끼우는 터라
10초보다는 시간이 더 걸렸지만
나름 빠른 시간에 전구를 갈아끼웠고
나의 전구 가는 솜씨에
그 애는
따봉을 날리며
"올ㅋ"
이라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렇게 의자에서 내려온 뒤
전구 불을 킨 순간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던
어두컴컴 했던 방 안은 환한 불빛으로 가득차면서
그 애의
화장기 없는 청초한 얼굴이
내 눈에 들어왔고
내 마음에도 전구가 켜지는 순간이자
내 마음이 그 애로 가득차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