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셨다는 소식을 뉴스로 접했습니다. 전화를 드려야 할 것 같은데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더군요. 언론 인터뷰에서 부재중 전화가 1천 통 넘게 와 있더라는 말씀에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변명입니다. 졸업하고 한 번도 먼저 전화드리지 않았음에 대한 죄송함과, 그래서 마지막 통화도 교수님이 제가 있는 대구에 들르셨을 때 연락하신 거였다는 것. 그리고 졸업할 때 그렇게 호언장담하던 박사과정을 아직 시작하지 못한 것에 대한 송구함이 큽니다.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께 제자가 드리는 편지
"발표문 만들고 기사 노릇까지 … 깊은 자괴감 빠져"
"연구실적 가로채기 변명 마시고 부디 책임 통감을"
대립도 있었지만 이해가는 '합리적 보수'
졸업 뒤 이렇게 자주 교수님 얼굴을 뵙는 건 처음입니다. 포털 사이트마다 교수님 사진이 메인 화면에 걸립니다. 어느 비 오는 날 찍힌 사진을 보면서 제가 교수님께 지도받으며 교원대 대학원에서 공부했던 것이 2009~2010년인데 그때 쓰시던 우산을 아직 쓰시는구나 생각했습니다. 다른 생각도 많이 납니다.
제가 교수님께 지도를 받던 때, '교사 시국선언'이 있었습니다. 저는 시국선언에 참여했고 교수님은 시국선언 반대 선언을 하셨죠. 당시 연구실 분위기를 아직 기억합니다. 저는 연구실 공용 책상 위에 시국선언 관련 홍보물을 올려놓았고 교수님께서는 들어오셨다가 살짝 굳은 표정으로 금방 나가셨습니다. 연구실의 다른 학생들은 그 사이에서 불안해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석사 학위 논문을 쓸 때도 대립은 있었습니다. 저는 지방자치단체 간 교육 재정이 불평등하게 배분되고 있다는 문제 제기를 하는 논문을 쓰고자 했고 교수님께서는 그 전제에 동의할 수 없으니 논문을 지도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저에겐 큰 타격이었지만, 교수님께서는 그 논문을 당신의 생각대로 바꾸진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결국 제가 원하는 논의를 담은 논문으로 학위를 받았습니다. 강남 돈 뺏어서 강북에 주자는 거냐는 평가를 받기도 한 제 논문에 대해 나중에는 교수님께서 잘 썼다고 격려해주시기도 하셨죠.
교수님과 보낸 2년은 시국선언을 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조합원 제자와 시국선언 반대 선언을 한 스승, 그들이 상징하는 두 세력이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깨닫게 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그 가능성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교수님께서 2년간 제게 보여주신 관점과 주장들이 이른바 '꼴통 보수'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교수님은 레이건 집권기 10년, 신자유주의 초기에 미국에서 공부하셨습니다. 어찌 보면 순수한 신자유주의 사상을 공부하신 뒤 그 신념을 토대로 평생 교육학자로 사신 분입니다. 지자체 간 교육 재정이 평등하게 배분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하신 것도 평가를 통한 배분이 옳다고 생각하시는 교수님의 학문적 배경 때문임을 알고 있습니다. 다른 연구나 수업에서도 교수님께서는 효과적이고 투명한 열린 행·재정을 강조하셨고 학교 평가나 컨설팅에서도 같은 관점을 고수하셨습니다. 일관된 맥락 없이 무조건 반진보 성향의 주장을 펼치는 비합리적인 모습이었다면 저는 끝까지 교수님의 학문적 지평을 이해할 수도, 신뢰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수님의 정년퇴임을 안타까워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급진적이거나 진보적 가치를 지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기에 오히려 교수님의 '합리적 보수'가 교육정책에 반영되길 바란 적도 있습니다.
'단독 저서' 하나 없는 게 너무 속상해서
그런데 교수님. 교수님께서 후보자로 지명되신 뒤 보여주시는 모습은 다릅니다. 논문 표절과 연구 실적을 가로채고 부풀렸다는 비판에 대한 교수님의 '몰랐다' '기억이 안 난다' '제자의 동의를 받아서 문제될 것이 없다' '관행이었다'라는 말씀은, 교수님께 연구 윤리를 배운 절 당혹하게 했습니다.
대학원 재학 시절 다른 학생들과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지도교수님이 '단독 저서' 하나 없는 거 너무 속상하다고. 보통은 지도교수 정년퇴임식에서 그분이 이제껏 하신 연구 자료와 논문을 모아 제자들이 논총집을 찍어 선물한다는데, 논총은커녕 논문 하나 변변히 없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함께 원서라도 번역한 뒤 교수님께 지도받고 교수님 단독저서로 출간하시라 제안을 드릴까 하는 이야기도 했죠. 그럴 만큼 저뿐 아니라 연구실에 있는 학생들이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교수님의 연구 실적이 별로 없다는 것을요.
지금 표절 의혹이 제기되는 논문 중 상당수는 제가 같이 수업을 들었거나 연구실에서 뵈었던 사람들의 논문입니다. 저는 그 논문을 원저자가 쓰는 과정도 보았고 다 쓴 논문을 교수님을 '제1 저자'로 하여 학술지에 싣기 위해 학생이 스스로 요약하는 과정도 여러 차례 보았습니다. 교수님께서 다른 대학이나 기관에 특강을 나가실 때 필요한 원고를 석사과정 학생이 매번 대신 썼습니다. 발표할 프레젠테이션 자료 역시 학생이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이 원고와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다 읽을 수 없으니 중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발표할 원고만 따로 메모로 만들어달라'고 하셨죠. 발표 장소까지 운전도 시키셨습니다. 이런 교수님의 요구를 정면에서 거절하지 못하고 돌아서서 욕하는 학생들의 모습도 대학원의 일상이었습니다. 물론 노동의 대가는 없었죠. 그 일을 맡은 학생은 오히려 다른 학생들의 눈초리와 자괴감 그리고 여러 차례 반복되는 교수님의 수정 요구를 견뎌야 했습니다.
교수님께서 오랫동안 맡아오신 <문화일보> 칼럼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교수님이 말씀해주시는 방향과 논지로 학생이 글을 쓰고 교수님께서 그 글을 확인하신 뒤 조금 수정해 넘기시는 것이 <문화일보> 칼럼이었습니다. 저와 몇몇 학생들은 모여 심각하게 회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맡기시는 여러 글들을 쓸 것인지에 대해서요. 회의 결과는 단일하지 않았습니다. 논문이나 연구, 특강 자료는 공부와도 관련이 있고 한국의 학위 과정이 도제식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언론사 기명 칼럼은 성격이 다르다는 데까지 의견이 모아졌으나 글을 쓰라는 요구를 거절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이 모이지 않았습니다. 학생이 교수의 요구를 거절하는 것은 한국 학계에서 정말 쉽지 않습니다. 특히 당시 연구실 학생들은 전원 박사과정을 이어서 하고 싶어 했고, 학계에 남고자 대학원을 진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교수님께 맞서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칼럼을 대신 쓰지 않기로 한 뒤
그 뒤 회의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문화일보> 칼럼은 대신 쓰지 않았습니다. 이 일을 후배들에게 넘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좌절된, 저보다 한 해 윗 학번이었던 분은 저희에게 노골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당연히 싫었겠지요.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저희 학번과 윗 학번은 한 연구실을 쓰면서도 서로 얼굴 마주치기도 싫어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교수님 역시 지켜보신 과정이지요.
이 이야기를 제가 해도 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교수님께 맞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이유였지만, 그것 이외의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학생의 논문을 교수님께서 빼앗아가는 것은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일종의 인정이기도 했습니다. 학생 12명이 모여 있는 그 연구실은 후궁들이 모여 있는 구중궁궐 같았습니다. 왕의 총애를 받기 위해 온갖 암투와 전략이 횡행하는 곳 말입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자신의 논문이 프로젝트 보고서로 재탕되는 걸 눈감는 대신 조금의 수당과 프로젝트의 연구원으로 이름을 올려 연구 실적을 얻는 학생들을 부러워한 적도 많았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교수님께 인정받고 그것을 발판 삼아 학계에 진출하고 싶었습니다. 심지어 2년차 때, 교수님께서 담당하신 학부 수업을 나누어 맡기셨을 때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우쭐대며 기뻐했습니다. 등록금을 내고 수업을 듣는 학부 학생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저를 비롯해 다른 학생들이 돌아가며 한 주씩 수업을 하고 교수는 얼굴조차 볼 수 없는 시간이 학기의 3분의 1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은 뒤늦게 든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학생에게 특강 원고를 맡기고 가짜 프로젝트를 하고 사적인 일에까지 학생을 동원하는 것은 교수님만이 하신 일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교수님들이 그러하십니다. 교수님들끼리도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셨고, 저 역시 그런 교수님들과 요구에 굴복하는 학생들을 비난했지만 문제 제기를 하거나 해결할 생각은 못했습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관행'은 이런 것일 겁니다. 잘못이지만 계속 그렇게 행해져와서 잘못으로 인식되지 않는 것. 잘못임을 알지만 고치려고 나서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든 사회악. 그것이 관행입니다.
그러니 교수님. '관행이었다' 혹은 '학생의 동의가 있었다'는 말은 변명이나 해명이 될 수 없습니다. 논문 표절 의혹은 해명이 필요 없는 일입니다. 원논문과 표절 논문을 비교하면 누구나 확인이 가능합니다. 또한 표절에서 원저자의 동의 여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교수님께서 제게 주셨던 가르침처럼 논문과 연구는 지식의 생성과 공유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고 그 두 개는 완전히 다른 과정이니까요. 제가 쓴 이 글은 저의 것이고 누군가 이 글을 공유하는 것에 대해 제가 동의한다고 해서 이 글을 쓴 사람이 바뀌는 게 아니라는 것은 연구 윤리를 따지지 않더라도 자명한 일입니다. 그러니 교수님. 부디 논문 의혹에 대해 해명하지 말아주세요. 인정하고 그간 미처 교수님께 대면해 싫다고 말하지 못한 수많은 제자들에게 사과해주세요. 그리고 스승으로서 치열하게 연구하고 학문을 닦는 문화를 보여주기보다 학생들끼리 교수의 총애를 사이에 둔 경쟁을 하게 한 것에 대해 부디 책임을 통감해주세요. 평생 대학 강단에서, 그리고 연구자로 살아오신 교수님의 지난 족적이 낱낱이 밝혀지는 지금, 그 상황을 알고 있는 수많은 교수님의 제자들을 기만하지 말아주세요. 그때는 관행이었기에 서로 모른척 넘어갔다 하더라도 지금 이렇게 전 국민에게 알려진 상황에서 더 물러설 곳은 없습니다. 그 끝에서 부디 교수님, 인정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인사청문회 전 의혹을 인정해주십시오
아마 제가 이런 글을 쓴다 하더라도 7월9일 예정된 인사청문회가 열리겠지요. 그 전에 교수님께서 논문 의혹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십사 하는 말씀으로 첫 번째 편지를 마칩니다. 청문회 전 드리는 두 번째 편지에서 앞으로 이 나라 교육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할지도 모를 교수님께 부탁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때 뵙겠습니다.
제자 이희진 올림
추신) 6월25일 교수님의 '정치 후원금'에 관한 기사를 봤습니다. 전혀 몰랐던 일이었는데 기뻤습니다. 시민이 정치후원금을 내는 것이 잘못입니까? 그렇게 당연한 일이 오히려 교육공무원에게 제한당하고 있는 것이 우스꽝스러운 일이잖습니까. 그에 대해 '누구한테 후원하는지도 몰랐다'라는 말보다는 적극적으로 말씀해주십시오. 이것이 왜 잘못이냐고. 민주시민으로서의 당연한 권리이고 이제까지 같은 이유로 처벌한 판결이 잘못된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