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공 - 2
<숫자>
<민성은 비행기에 타자마자 의자를 뒤로 쭉 눕히고는 그대로 누워버렸다. 뒤따라온 지희가 그걸보고 혀를 쯧쯧차며 골프클럽을 옆자리에
대충 밀어넣고 뒷쪽 떨어진 자리로 가서 앉았다.>
민성) (흐음... 차에서 자면서 왔더니 잠이 더 안오네... 그나저나 되게 기분나쁜 꿈이었어. 별 시덥잖은 내용이지만 기분나쁘게 생생하단 말이지...)
민성) (어차피 한국까지 돌아가는 동안에 잘 시간이야 많으니... 휴대전화로 서핑이나 해야지... 음? 이건?)
<휴대전화를 꺼내어 잠금을 풀려던 민성은 손바닥에 쓰여진 숫자를 발견한다. 손바닥을 가득 메운 07 이라는 숫자였다. 문신이라도 한듯 진하게 새겨진 글씨는 민성이 아무리 문지르고 긁어봐도 변함이 없었다.>
민성) (뭐야 이건;; 설마 그녀석이 말한 믿기 싫어도 믿을수밖에 없을거란게 이걸 말한거였나...)
민성) 지희야! 수건에 물좀 묻혀서 가져와주라.
지희) 또 칠칠찮게 뭐 묻히고 다니긴... 자. 어디묻었는데?
민성) 아니 손바닥에... 설마 니가 장난친거야? 내가 자고있을때?
지희) 응? 무슨소리야 손바닥이 왜? 아무것도 없는데 뭘 닦는거야??
민성) 뭐라구?
<지희가 마치 글자가 안보이는듯이 말하자, 민성은 잠시 혼란스러웠다. 지희 눈에는 안보이는건가? 그러나 곧 민성은 속으로 지희를 비웃었다. '흥, 그러면 내가 모를줄 알고? 장난쳐놓고는 모르는척 하는거겠지. 괜히 심각하게 생각했군.>
민성) 흠. 대충 지워진거같네. 됬어. 들고가.
지희) 원래부터 손바닥은 깨끗했는데 무슨소리하는건지 원...
꼬마) 지워지긴 퍽이나 지워졌겠다. 그걸 무슨수로 지우냐.
민성) 니가 그려놓고 잘도 그런소릴 한다. 알면 지울 생각이나... 헉?
<민성은 말을하던 도중 들려온 꼬마의 목소리에 흠칫하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골프클럽 위에서 꼬마를 발견하고는 얼굴이 파래졌다.>
민성) (내가 지금 피곤해서 헛것을 보는건가...;;)
꼬마) 헛것이라니, 무례하군. 그리고 그걸 무슨수로 지우냐고. 애초에 지울수있는 방법으로 쓰여진게 아니야.
지희) 너 혼자서 뭐라고 중얼거려... 그리고 얼굴이 왜그렇게 파래졌어? 귀신이라도 봤니?
민성) 아냐, 아무것도... 오늘 너무 무리했나봐 피곤하네... 좀 더 자야겠다.
지희) 그래... 자꾸 헛소리 하는거보니 많이 피곤한가보다. 일어나면 불러 뒤에있을게.
민성) 응, 알았어...
꼬마) 사태파악이 생각보단 빠르군. 내가 너한테만 보인다는것과 그 숫자가 농담이 아니란걸 빨리 파악하다니.
민성) (... 넌 뭐하는 녀석... 아, 저승사자라고 했었나...)
꼬마) 그래. 이제야 설명하기 쉬워졌군. 아까전에도 얘기했지만 넌 그 손바닥에 적힌 일수, 즉 일주일 뒤에 사망한다. 사망 원인은 불명. 어떻게 사망할지나 정확한 일시는 정해지지 않았다. 이제 이해할 마음이 생기나?
민성) (갑자기 나타나서 그런말 한다고... 아아! 내가 다음주면 죽는다니!! 이런 생각은 들지 않는데...)
꼬마) 쳇. 태평한 녀석이군. 아무튼, 일주일 안에 해보고싶은건 다 하도록 해라. 후회나 미련이 남으면 데려가기 힘들어지니깐.
민성) (매몰찬 녀석같으니. 천천히 생각해볼테니 저리 사라져!)
<민성의 손짓에 꼬마는 마치 연기처럼 흩어졌다. 꼬마가 사라지자 민성의 생각은 급속도로 복잡해졌다.>
민성) (내가 죽는다고? 일주일뒤에? 하... 뭐부터 해야하는거지... 부모님이랑 지희한테도 얘기를 해야하나... 아니지, 차라리 말하지 않는편이 좋을거야. 하고싶은거? 뭐가있을까... 크게 없을거같은데. 그냥 일주일동안 잠만자다가 편안하게 갈까? 아니면 아무도 날 못죽이게 도망칠까? 아냐, 병으로 죽는거라면 그런걸로 피할수가 없겠지......)
<민성은 고민을 하다가 결국 좋은 생각을 떠올리지 못하고 잠에 들었다. 민성은 한국에 도착하고 나서야 잠에서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