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입대하고 첫 휴가도 나가지 못한 이등병 때, 처음으로 부모님께 받은 편지 한 통이 생각났다. 편지를 받곤 손이 저리고 가슴이 떨려 차마 펴지도 못하다가 바로 있었던 첫 훈련의 시작을 알리는 행군길에 가지고 갔다. 힘에 부칠 때 쯤 슬쩍 펴 봐야겠단 생각으로 야전상의 윗주머니에 넣어놓고 행군길을 나서는데 비가 정말이지 억수로 왔고, 너무나 당연히 졸병 중 졸병이었던 난 제대로 입을 수조차 없는 헌 우의 하나를 걸치고 계속 계속 걸었다. 중간이 조금 지나 너무 힘에 부칠 때쯤 주어진 휴식시간에 편지생각이 나선 얼른 꺼내 보았는데, 이럴 수가, 난 왜 그리 어리석었을까, 편지는 죄다 젖어버려 도저히 알아볼 수 없게 되었던 게다. 눈이 찌릿해오고 목 아래에서부터 울컥하는 것이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난 서둘러 장구를 챙겨야 했고, 다시 걸음을 걸어야 했다.
이제 그로 몇 년이 지나 문득 그 때 일이 생각나, 차마 버릴 수 없었던 파란 종이를 찾아보니, 놀랍게도 파란 종이에 온통 번졌던 잉크가 마르고 볼펜자국이 남아 글씨를 무척이나 또렷하게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아침, 저녁으론 꽤 찬 바람이 부는 게 이제는 가을이구나 싶다가도 대낮엔 쉬 물러서지 않을 기세로 땀을 흘리게 만드는 햇빛이 얄밉기도 하다.
더우면 더운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네가 있는 그 곳의 조건들도 어렵고 힘들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하다.
모두들 묵묵히 피할 수 없는 삶의 현장에서 열심히 살아간다. 싫든, 좋든, 때론 불평하고 때론 낙심하지만
「나의 길」이 있음에.. 어제는 분명히 오늘과 다르지만 어제와 오늘은 모두 나의 삶 속에 있는 것을...!
고생스럽고 짜증나는 일들도 많겠지만 잘 감당하며 지내리라 믿는다.
느긋하게 생각하고 있다가 빨리 보낼려니 마음이 급하구나.
깔창은 형 말에 의하면 유격훈련 끝나면 하나는 버려야 할 것이어서 두개 보낸단다.
스포츠매장에도 없고 해서 특별히 좋은 것은 아니지만 잘 쓰고 필요하면 또 말해라.
추석 때는 쓸쓸할 것 같구먼?!
아빠는 9月 5日 제주 가서 성묘하고 9月 7日 올 예정이다. 가끔은 지루한 듯 해도 평안한 삶이 좋다.
하루하루가 지나감에 감사하자.
어떤 얘기도 안 들어오겠지만
언젠가는 깨닫게 되겠지 아마!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