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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옥 할머니의 시
게시물ID : lovestory_550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cme_Oh
추천 : 4
조회수 : 71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5/19 01:28:59

 

평화가 춤춘다. 통일이다.

 

열세 살

평양

나 그 때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전쟁이

남자가

나를 빼앗긴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남의 나라 식민지가 되는 것이

내 인생을

그렇게

긴 어둠의 시간으로 덮어버릴 줄

몰랐습니다.

 

감악소에 갇힌 아버지를 빼낼 수 있는 돈 10원,

그 돈을 벌어서

아버지 나오게 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마음이 콩닥거렸습니다.

아버지를 나오게 해드릴 수 있다는 믿음이

나를 어른이라고 믿게 만들었습니다.

 

엄마에게도, 오빠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공장에 취직시켜준다며 내 앞에 나타난 낮선 사람을 따라 나섰습니다.

감악소 벌금 10원을 벌고 싶어...

 

너무 아팠습니다.

내게 닥치는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

소리치고, 구르고, 버팅기고

 

하지만 내게 돌아오는 것은

구타와 고문과 감금이었습니다.

열세 살 어린 나이로

견기기 너무 힘들어

"엄마, 엄마" 소리쳤습니다.

저 멀리 평양에 있을 내 엄마에게

내 통곡소리가 들리기를 바라며

그렇게...

 

1945년 8월 15일,

남들은 해방이랍니다.

남들은 그 추운 겨울을 이겼더니 봄이 왔답니다.

남들은 그 어두운 터널을 지났더니 빛이 비춘다고 합니다.

 

하지만,

내겐 아버지 감악소 벌금 10원이 없었습니다.

다시 내겐

또 다른 어둠의 터널이 시작되고,

추운 겨울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내게 10원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삼팔선에 가로막힌 휴전선은

다시 내 고향, 내 아버지를 빼앗아 가 버리고,

또 다시 전쟁이랍니다.

와~ 와~ 전쟁을 하랍니다.

무기를 사들이랍니다.

그것이 평화랍니다.

 

아니야!!!

휴전선에 봄이 와야 진정한 해방이야!!!!

휴전선에 새벽이 와야 비로소 아침이야!!!!

비로소 평화야!!!

 

아 ~

나비가 되어 날고 싶습니다.

아직 해방 받지 못한 이 몸.

늙은 몸이지만

헐헐 날아 고향으로 가고 싶습니다.

 

휴전선이 가로 막은들 못가겠습니까?

철조망 가시덤불에 찢겨

내 몸뚱아리 피투성이 된들 못가겠습니까?

가는 길에

분단도 허물고,

휴전선 가시덤불도 걷어치우고

'휴전'을 '평화'로 '통일'로 만드는 일인데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열세 살 이별 이후

생각만 해도 아프던 내 고향, 내 아버지 무덤가에

감악소 벌금 10원을 내어드리며 내 손으로 아버지 해방시켜 드리렵니다.

 

아~ 보입니다.

저기 저 보통강 가에 놀고 있는 열세 살 철부지 길원옥이가

식민지의 고통도 걷어치우고,

'위안부'라는 아픈 굴레도 다 벗어버리고,

전쟁의 공포도 전혀 없이

평화롭게 친구들과 동네에서 고무줄 놀이 하고 있는 원옥이가 보입니다.

-이솔 근현대사 알기 프로젝트 중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님의 글>

출처 아리솔 컨설턴트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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