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4학년 때 있었던 일입니다.
그 당시 저희 가족이 강원도 속초에서 경기도 성남으로 이사 온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인 것 같습니다.
아파트에 살다가 2층 주택으로 이사를 왔고, 1층은 주인집 2층은 저희 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제가 지금 하려는 이야기와는 상관이 없지만 이사 온 첫날 밤 새벽 고양이 우는 소리가 내내 들렸습니다.
가족들은 지쳐 잠들었지만 저는 그 소리 때문에 밤잠을 거의 설쳤던 기억이 나네요.
두 마리가 서로 싸우는지 번갈아가면서 날카롭게 울더대는데 어린나이에 얼마나 무섭던지;
아무튼 그 날 말고는 별 일 없이 한달 정도가 흘렀습니다.
부모님이 결혼식 때문에 강릉에 가서 다음날은 되야 오신다고 하셨죠.
오랜만에 동생이랑 티비도 실컷 보고 서로 보드게임도 하고 밤늦게 과자도 먹고 침대에서 뛰며 자유를 만끽했습니다.
평소 10시정도면 자던 저희였지만 그 날 만큼은 서로 신나서 밤새자면서 히히덕 거리면서 계속 놀았습니다.
한참을 놀다 시계를 보니 12시가 좀 넘어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동생은 피곤하다면서 방에 들어가 잘거라면서 떼를 썼습니다.
저는 혼자 티비라도 보면서 더 밤을 지새며 놀고 싶었지만 동생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겁이 많아 혼자 자거나 혼자 있기를 꺼려한 까닭에 방에 들어가 불을 끄고 누웠습니다.
그렇게 계속 누워있다가 막상 불을 끄고 누으니 잠도 안오고 해서 동생이랑 끝말잇기를 하고 있었는데 위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2층 주택이라 위는 옥상이고 지금 시간엔 사람이 있을 수가 없는데 말이죠.
설사 주인집 아주머니나 아저씨가 올라온다 하더라도 옥상을 올라가는 철계단 소리가 안들릴리가 없습니다.
누군가 걷는 것같이, 혹은 뭔가가 옥상 바닥에 계속 부딪치는 소리가 났습니다.
'퉁' 소리가 같기도 했고 '통' 이나 '쿵'소리 갔기도 했습니다.
동생과 저는 겁을 먹고 이게 뭔 소리인가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데, 옆 집에서 키우는 개가 갑자기 막 짖더라고요. 사납게 한참을 짖자 옥상에서 울리는 소리가 멎었습니다.
그걸 듣고 저희는 도둑고양이 정도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저희가 살던 마을에 도둑고양이가 무지 많긴 했어요.
저희 주택 2층까지 올라와서는 문 앞을 스윽 지나다니고 가끔은 쓰레기 봉투까지 헤집어 놓곤 했으니까요.
다시 잠을 청하는데
퉁
퉁
퉁
퉁
퉁
퉁
퉁
퉁
갑자기 미친듯이 들리는 겁니다. 동생하고 저하고 기겁해서 소리 지르면서 이불 뒤집어 쓰고 벌벌 떨었습니다.
무슨 농구선수가 공 튀기듯 소리가 났어요 정말로; 소리가 그니까....흔히 윗집에서 뛰어다니거나 그러면 소리가 좀 울리듯이 나잖아요.
그것처럼 퉁소리 같기도 하고 통소리가 같기도 한 것이 울리면서 옥상 전체를 뛰어다녔습니다.
개가 또 짖더군요. 이불 뒤집어 쓰고 진짜 옆집개를 응원했습니다. 제발 저것 좀 쫓아내 달라고.
한참 개가 짖는데 옆집 아주머니가 나와서는 왜 이렇게 짖냐면서 개를 한 대 때리고는(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린 걸로 봐선..)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버렸습니다.
옥상에서 들리던 소리가 멎긴 했지만 동생하고 저는 말그대로 겁에 장악당한 상태였습니다.
이불을 조금 열고 동생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눴었는지는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옥상 철계단을 밟는 소리가 나는 겁니다.
진짜 무서웠던 건 옥상 철계단이 좀 낡아서 그런건진 몰라도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의 소리를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소리가 다릅니다.
방금 그 소리는 분명 내려오면서 철계단 제일 윗부분을 밟았을 때 나는 소리였습니다.
올라간 사람도 없는데 말이죠.
그거 듣고 동생하고 방구석으로 순식간에 기어가서 같이 이불 뒤집어 쓰고 숨죽이고 있었습니다.
한참동안 정적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옆 집 개 짖는 소리도 없고..자주 들리던 도둑고양이 울음 소리도..술취한 아저씨 고성방가소리도.. 이시간 쯔음 자주 들려 제 잠을 깨우던 어떤 소리도 그날 밤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퉁'하고 철계단 윗 부분 밟는 소리가 다시 들리더니..
계단에서 공 같은거 떨구거나 하면 처음에는 통 통 하면서 계단 따라 구르다가 점점 가속도가 붙으면서 빠르게 튀기면서 내려 오잖습니까.
그것처럼 처음엔 퉁 퉁 하고 철계단 윗부분 쪽 밟는 소리가 느리게 들리더니 점점 계단 밟는 소리가 빨라지면서
퉁 퉁 퉁 퉁 퉁 퉁
하면서 순식간에 철계단을 내려왔습니다. 철계단 소리가 좀 시끄러운 편이었는데 가뜩이나 긴장했던 저한테는 진짜 한 계단 한 계단이 발포소리 처럼 들렸습니다.
저희는 숨조차 쉴 수 없었고 다시 한동안 정적이었습니다.
옥상계단으로 내려와 집밖으로 나가려면 길이 한 군데 밖에 없습니다.
집 현관문 앞을 지나서 1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간 뒤 대문으로 나가는 것이죠.
그 때 제 머릿속에 퍼뜩 든 생각이 문을 잠갔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진짜 미치도록 무섭고 겁이 났지만 일단 제가 오빠이고 문을 잠그는 것은 저의 책임이라는 생각에 이불을 벗고 진짜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습니다.
열면서도 벌써 현관문 앞에 서있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죠.
저희 집 현관문이 반투명이라서 누군가 앞을 지나가면 실루엣이 보이거든요.
현관문에 비치는 실루엣은 없었고 저는 재빨리 문 앞으로 달려가 잠금 고리를 돌리려 했으나 문은 이미 잠겨 있더군요.
안도하면서 다시 방으로 돌아오려는데 실루엣이 보였습니다.
그건 공이었습니다.
공이었는지 도둑고양이었는지 개였는지 확실치 않지만 둥그렇게 생긴 무언가가 달빛을 받아 거무스름한 실루엣을 비추며 현관문 앞을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 다시 아까 옥상에서 들리던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면서 계단을 내려가는데 진짜 살면서 그렇게 무서웠던 적이 없었을 겁니다.
방까지 미친듯이 달려와서 일단 불을 켜보니 동생은 울고 있고 시간은 새벽 1시가 훨씬 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지금도 가끔 그게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곤 합니다.
누군가 장난으로 던진 공이었을까..누군가 한밤중에 우리집 옥상에서 놀다가 흘린 공이었을까 생각해보지만
한가지 걸리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공이라도 생각되는 그것은 그때의 정황상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