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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하지마세요
게시물ID : cook_538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닉네임Ω
추천 : 17
조회수 : 2075회
댓글수 : 13개
등록시간 : 2011/09/15 01:27:18
 제주도에 있는 특급호텔에서 언제 짤릴지 모르는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조리사입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아니고 말을 잘 하는 사람도 아닌데다가 지금은 술까지 마신 상태라
 다소 두서없는 글이 되겠지만
오유보면 고민게시판이나 요리게시판에 조리학과관련 진로상담글이 많이 보이더라구요
그때마다 하고싶은말이 참 많았지만 아이디도 없고 조리있게 글쓰는 재주도 없어서 그냥 넘겼어요
근데 오늘 맘먹고 글올립니다
취미로써의 요리가 아닌 직업으로 삼는 요리의 삶.. 하지마세요
환상을 가진 어린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답답합니다.
요리사.. 떠올려보면 참 멋있죠? 새하얀 조리가운입고 말끔하게 목에 두른 스카프에 하얀모자쓰고 불앞에서
스테이크 굽고 파스타 볶고 도마위에서 현란한 칼솜씨를 뿜어내는 모습.. 
새하얀 접시위에 완성된 음식을 예술적으로 디스플레이 해내며 집중하고 홀에 서빙시키는 모습..
저도 멋있어요
근데 그것뿐입니다
제가 일하는 업장은 호텔내 중식레스토랑인데 저는 양식을 하고싶었지만 양식주방에 TO가 꽉차서
인사과에서 입사하자마자 이쪽으로 배정시켰습니다.
기본으로 하루 10시간 근무인데 막내급 인턴이라 1시간 일찍 출근해서 11시간근무.. 7~9월 바캉스기간이나
이제 몇개월 후면 크리스마스다 연말연시에 졸업시즌이라 아마 12시간 넘게 일합니다
물론 그때까지 제가 일을 하고있을지 저도 모르겠어요
지금 벌써 이쪽길에 큰 회의감이 들고 환상이 깨져버리면서 다른길로 갈까 몹시 고민중입니다.
제 나이 28살.. 4년제 조리학과다니다가 군대갔다오고 등록금모은다고 휴학한번하고 졸업하니 나이가 이렇게 되었는데 처음 여기에 입사하니 전문대 졸업해서 벌써부터 경력1년 2년 달고있는 24살 25살 어린동생들이 저한테 선배소리 듣고있습니다. 호칭에 문제가 있다거나 자존심상하는게 아니라
4년씩이나 그 비싼 등록금 내가면서 요리배운 저보다 2년동안 전문대에서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졸업해서 먼저 일하고 있는 걔네들이 저보다 뛰어나고 그렇더라구요..
여기서 많은분들이 반문을 던집니다. "4년제 학위달고있으니 나중에 걔네보다 유리하지않느냐?"
네 유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전문대 졸업생이라고 우리가 무시할 수도 있는 그분들
요리사생활하면서 업무외시간에 노는거 아닙니다. 야간대학에서 4년제 학위 따는분도 계시고
영어공부 엄청 열심히 해서 외국에 있는 동일호텔 체인으로 가려고 준비중인분도 있고
뭐 다들 엄청 치열하게 요리의 길을 파고있더라구요.
이쪽세계는 최소한의 학력에다가 풍부한 경력과 어느정도의 외국어능력, 그리고 업무능력과 자기계발이 경쟁력입니다
그리고 다른거 다 필요없고 일이 정말 여러분이 상상하는것보다 훨씬 힘듭니다
조리사생활은 곧 노동이라 요리실력이 어쩌고 저쩌고 간에 일단 하루의 절반이상을 서서 이리 저리 뛰어다닐만한 체력이 뒷바침이 되어야 버팁니다.
지난 7월 여름방학시즌에 조리학과 대학생들이 실습나와서 한달동안 일하다가 갔는데 특히 여대생들 ,, 제가 일하는 업장에서 정확히 두명 주방에서 탈진했습니다.
일이 힘든만큼 연봉이 많이 나오면 그래도 버틸만하겠죠
근데 그것도 아닙니다. 인턴월급이 정확히 말씀드리긴 힘들지만 편의점 알바 한달동안 하는수준?
인턴이라 약한것도 있지만 계약직이나 정직원이라 하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호텔이 대기업 계열사라 직원복지나 혜택은 정말정말 좋지만 연봉자체는 여러분의 상상이상으로 짭니다..
그리고 많은 조리학도들이 호텔을 꿈꾸며 공부를 하고 있지만 호텔이 능사는 아닙니다.
호텔에선 요리를 배우기가 너무 힘듭니다. 
요리를 배우기 전에 입사자체가 무척 힘들구요.
보통 장기알바나 인턴으로 시작해서 계약직 몇년채우면 정직원 전환시험이나 면접같은 기회가 주어지고 
대다수는 짤리고 극소수만 살아남아서 정직원생활을 이어나가요 
정직원 달고 경력 최소 3년정도 쌓으면 
이제 본인이 직접 만든 음식을 홀에 내보낼수 있지않을까 싶네요
그것도 메인요리급은 아니고 사이드디쉬나 가벼운요리들있죠? 중간중간 입가심하는 코스메뉴들..
제가 일하는 중식주방말고 연회주방에 저희학교를 10여년전에 졸업한 선배가 있어서 친해지게 되었는데
선배님말씀 들어보면 자기가 지금호텔에서 경력이 14년인데 배운게 너무너무없다고 합니다.
그만큼 조직이 심하게 체계화되어있고 엄격하기때문에 기회가 잘 주어지지않아요
차라리 서울의 강남같은곳 가면 파인다이닝급 레스토랑많죠? 
스타쉐프들이 운영하는..그런 레스토랑이 일하면서 요리를 배우기엔 더 좋습니다
실제로도 호텔에서 경력 4~5년만 쌓고 퇴사하여 호텔출신간판 내달고 그런곳으로 가서 일하는 사람 무진장 많습니다.
제가 일하는 호텔중식당에서 밥을 먹으려면요  가벼운 단품요리는 먹을것도 못되기때문에
보통 코스메뉴를 먹잖아요? 코스메뉴 기본이 15만원부터 시작합니다
15만원이 가장 저렴한 코스요리고 코스치곤 음식도 간소한편이구요 
100만원 넘어가는 코스메뉴까지도 현재 운영중인데 정작 그 요리를 만드는 주방직원들의 현실은 암담하죠. 
제가 회의감을 많이 느끼는데 특히 이런부분에서 많이 느낍니다. 박탈감과 함께...
런치타임이나 디너타임의 주방모습은 완전 전쟁터입니다. 주문밀려있는데 주문지는 자꾸 출력되고있고
노련하지 못한 조리사들은 정신없어서 코스꼬이고 과장님들은 안따라주는 부하직원들때문에 성질내고 
군대에서나 쓸 법한 쌍욕나오고 국자로 얻어맞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같은시각 홀에서는 아름다은 선율의 클래식과 라이브로 울려지는 그랜드피아노연주가 울리고 있고
사람들은 명품옷과 가방을 몸에 두르고 수십만원짜리 식사를 여유있게 즐기고 있습니다.
그 괴리감이 너무 크구요.. 네 이런건 제가 요리자체를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한 찐따라서 그렇습니다
인정합니다. 저는 몇년간 서양요리에 관심이 많아서 양식레스토랑쪽에서 일을 맡고싶었는데 상황이 그렇게 되질 못하니 더더욱 그런것 같네요, 중국요리는 정말 모르거든요 재료들이나 조리용어가 모두 중국어 한문 이런거라 제가 좋아하고 공부하던 요리지만 정말 적성에 안맞다는 느낌이 강해요..
이곳에서 10년씩 버티고 하시는분들은 정말 소수구요...  개인적으로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분들은 오직 요리에 대한 열정으로 버티시고 계신겁니다..
아무튼 이리저리 정신없는 글을 좀 써봤는데 오늘 제가 쉬는날이라 술한잔 마시고 호텔 직원숙소에서 자기전에 이런글 올리게 되었습니다. 
요즘 정말 제가 너무너무 좋아하고 적성에 맞다고 생각했던 조리사의길.. 현역생활한지 1년도 안된 풋내기가 도망가는거라 생각할 수도있고 이런근성으론 요리가 아니라 어딜가도 못버틴다고 생각하시는분 분명 계시겠지만... 지금 일이 너무 힘들고... 저도 남들처럼 직장생활하면서 추석 설날에 고향찾아가서 부모님 뵙고
주말엔 애인과 데이트도 하고싶고 그러고싶지만 퇴근만 하면 침대에 저절로 흡수되어서 눈뜨면 다음날 출근시간.. 출근하면 출근하자마자 이어지는 선배님들의 윽박지름과 꾸중... 내가 실수하면 호텔레스토랑 전체의 이미지가 실추될것같은 부담감.. 다달이 정확히 꽂히긴 하지만 턱없이 적은 월급...
계약직과 정직원전환이라는 산을 넘는다 하더라도 그닥 ....저도 돈모아서 집도사고 차도사고 결혼도 해야할거아닙니까............
뭐라고 썼는지도 모르겠네요...글은 이만 줄이고 자야겠네요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 요리..하지마세요
동네 파스타집 중국집에서 삼천원짜리 오천원짜리 요리하려고 이쪽길로 뛰어드시는분들 없지않나 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대형호텔이나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자부심갖고 일하려고 하시죠? 
길이 너무 좁고 처우가 너무 암담합니다.. 
이쪽으로 꿈을갖고 나는 할수있을거야 제2의 에드워드권이 될거야 라는 환상을 가진 어린학생들
제발 다른길 찾으시고 좋아하시는 요리는 취미로만 즐기세요..
알고있다고 힘든거 알지만 버틸거라 각오하고 들어오는 대부분에 얼마못가 관두고 다른길로 나섭니다

저만 이런소리 하는게 아니라 알바생이나 실습생들한테도 다른 직원들이 누누히 하는 조언입니다.
뻘글 죄송합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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