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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OCN 에서 방영했던 아포칼립토...
게시물ID : humordata_5385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알콜
추천 : 1
조회수 : 1776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09/09/08 00:42:49
▲ <아포칼립토> 제작현장의 멜 깁슨.(가운데)
ⓒ 21세기폭스

또 다시 2004년의 논쟁을 재현하기 위한 것이라면, 멜 깁슨이 옳았다.

그가 제작에 감독까지 맡았을 뿐 아니라, 각본까지 썼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예수가 지상에 머문 마지막 하루를 다룬 이 작품은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로마 병사의 잔혹한 채찍질, 메시아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장면의 사실적인 재현으로 전세계 영화팬들의 경악과 비명을 유발했다.

"놀랍고도 충격적이며 감동적인 경험"이라는 극찬과 "종교와 신성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싸구려 스플래터 무비(잔혹한 장면이 여과 없이 그대로 보여지는 영화)"라는 혹평을 동시에 받았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상영도중 관객이 실신해 응급실로 실려 가는 해프닝까지 낳았던 그야말로 논란과 논쟁의 중심에 섰던 영화다.

그 논란이 불러온 스포트라이트에 현혹된 걸까? 전작과 마찬가지로 멜 깁슨이 제작·연출·각본까지 1인 3역을 도맡아 북 치고 장구 치며, 가야금까지 뜯은 <아포칼립토> 역시 논쟁과 논란을 일으킬 여지는 충분한 영화다. 멜 깁슨이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건 간에.

멜 깁슨이 놓치고 있는 2가지

▲ 영화의 한 장면.
ⓒ 21세기폭스
ⓒ 21세기폭스


지금으로부터 1700여년 전 멕시코와 과테말라 등지에서 태동하기 시작해 16세기 에스파냐에 점령당하기 전까지 독자적인 문명을 창출하고, 발전시켰던 마야. 멜 깁슨은 남미의 울울창창한 밀림과 빛나는 고대문화에 카메라의 눈을 맞추고 대체 이 사람들, 즉 마야의 문명이 왜 멸망의 길로 치달았는지 나름의 방식으로 유추한다.

여기에서 사용되는 멜 깁슨의 외형적 영화기법은 빼어나다. 다양한 각도에서의 박진감 넘치는 촬영과 고증을 거쳐 등장시킨 수많은 엑스트라가 만들어내는 사실감, 긴장과 감정적 동화를 동시에 야기하는 제임스 호너의 음악, 여기에 더해 앞서 말한 논란과 논쟁을 일으킬 여과되지 않은 잔혹한 장면묘사까지.

그러나, 멜 깁슨은 2가지를 놓치고 있다. 그게 뭘까?

적지 않은 배우들의 궁극적 꿈이 연출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불멸의 연인>에서 베토벤으로 열연한 게리 올드만, <마지막 황제>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조안 첸, 거기에 한국 청춘영화의 늙지 않는 아이콘 정우성이 그렇고, 경우가 좀 다르지만 코미디언 이경규까지.

그러나 좋은 배우와 좋은 영화감독은 관객에서 다가서는 방법에서부터 평가의 방식까지가 판이하게 다른 법. 괜한 치기와 우월감에 시도한 배우의 영화연출은 여태껏 쌓아온 배우로서의 이력까지 갉아먹기 십상이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지만, 남의 떡을 차지하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멜 깁슨과 그의 영화 <아포칼립토> 역시 이 당연명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리썰 웨폰>에서는 타협 모르는 의로운 형사로, <왓 위민 원트>에서는 중년의 매력적인 플레이보이로 근사한 연기를 펼친 멜 깁슨. 배우로서의 그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허나, 감독으로서의 그는 글쎄….

<아포칼립토>는 마야문명에 대한 인류학적 탐구와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희열과 고뇌를 담고 있지 않다. 애초 멜 깁슨의 의도대로 '나사를 조이는 듯한 끊임없는 추격 액션'으로 가득 찬 스릴러영화라 보는 것이 정확하다.

장르 선택은 감독의 고유권한이니 그걸 책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문제는 멜 깁슨이 전면에 내세운 스릴과 서스펜스 그리고, 액션이 어디선가 수없이 본 듯한 장면의 답습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두말할 것 없이 할리우드 장르영화 문법의 지루한 반복이다.

 

오히려 아포칼립토 1편에 이은 후속 2편은 이에 부족한 부분을 충실히 채워주는 역량을 보이기도 한다 국내에선 개봉이 보류 되었기에 웹하드에서나 볼수 있을것이다

혹 원하는 네티즌들을 위하야 주소링크를 걸어두겠다.

아포칼립토 2편 감상

 



고루한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답습, 거기에다 백인우월주의까지

▲ <아포칼립토> 포스터.
ⓒ 21세기폭스
천길 낭떠러지 폭포에서의 다이빙, 음산한 음악과 함께 갑자기 등장하는 공포스런 적, 멧돼지 혹은, 퓨마와 함께 달리며 흔들리는 카메라, 혼자인 주인공이 다수인 악당(?)을 처치하는 매복과 기습 등을 담은 장면이 모조리 낡았다. 새로운 것이라곤 없다. 한번 본 영화를 다시 보는 듯한 느낌. 관객의 지루함은 불을 보듯 뻔하다.

너무나 뻔히 보이는 고루한 장르문법의 답습이 <아포칼립토>의 첫 번째 아킬레스건이라면, 두 번째는 보일 듯 말 듯 비쳐지는 '백인 우월주의'의 기분 나쁜 냄새다.

<아포칼립토>는 많은 부분 상상에 의해 축조된 영화다. 1500년대 중반 에스파냐가 점령하기 전 마야문명이 어느 정도로 발전된 정치·사회·경제·문화적 공동체였는지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멜 깁슨은 당시를 살았던 원주민을 살인과 복수 그리고, 재복수에만 매달리는 단세포로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을 제외한 나머지 배우들은 지극히 평면적인 캐릭터로 전락해 아이를 많이 낳기 위해 익히지도 않은 동물의 성기를 먹고, 자기 부족의 평화를 위해 다른 부족을 잡아다 산채로 심장을 꺼내고, 목을 자른다.

그뿐인가. 영화 곳곳에서 보여지는 마야인의 잔인성에 대한 과도한 묘사는 여성관객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뿐더러 비명까지 유발한다.

다 좋다. 고래로부터 일부 철학자들은 인간을 '생존 이외의 이유로 같은 종을 죽이는 유일한 동물'이라 칭하며 그 잔인함을 연구해왔으니까, 멜 깁슨의 연출방식 역시 그 철학자들의 견해를 따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영화의 말미에 등장하는 에스파냐 점령군들 또한 동등하게 잔인한 존재로 묘사해야 옳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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