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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 박근혜 후보의 코스프레
게시물ID : humorbest_5386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산소가스
추천 : 121
조회수 : 7000회
댓글수 : 4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10/03 18:59:33
원본글 작성시간 : 2012/10/03 18:24:56

[세상 읽기] 박근혜 후보의 코스프레 / 진중권

한겨레 | 입력 2012.10.02 19:10

 '붉은색'은 상징적이다. 전세계의 보수당 중에서 붉은색을 사용하는 것은 새누리당밖에 없을 게다. 레드 콤플렉스가 강한 나라에선 진보정당들도 붉은색을 쓰지 못한다. 민주노동당은 주황, 통합진보당은 보라, 진보신당도 적·녹·청·황의 희석식을 사용했다.

색깔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새누리당의 공약은 민주당의 것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복지와 경제민주화에 이어, 최근엔 대북 포용정책까지 가져갔다. 한마디로 상대팀의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올라온 셈. 그동안 파란색 유니폼이 워낙 욕을 많이 먹은 탓이다.




하지만 '코스프레'로 본질을 가릴 수는 없는 일. 바로 1년 전만 해도 새누리당은 당운을 걸고 "무상급식은 망국의 길"이라 주장했다. 거센 역풍을 맞자 부랴부랴 무상보육을 도입했지만, 애초에 복지정책이 아니라 선거정책으로 도입된 제도는 1년 만에 좌초하고 만다.

경제민주화도 다르지 않다. 지난 대선 박근혜 캠프의 공약은 '줄푸세'였다. 이 기억을 지우려고 김종인씨를 영입하기는 했으나, 현재 그는 당에서 꿔다놓은 보릿자루나 다름없다. 대세는 차라리 이한구 원내대표. 그야말로 새누리당의 계급적 기반을 정직하게 대변한다.

대북정책이라고 다르겠는가? 지난 7월 말 박근혜 후보는 비무장지대(DMZ)에서 군복을 입고 안보 의지를 과시했다. 그러더니 지난 9월13일 느닷없이 기자회견을 열어 대북 포용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는 '상호주의'를 내세워온 집권여당의 대북 강경책을 완전히 뒤엎은 것이다.

그나마 평가할 만한 것은 개혁공천이었으나, 현영희 의원의 공천헌금 사건, 친박 좌장 홍사덕 전 의원의 불법정치자금 수수 의혹으로 빛이 바랬다. 게다가 송영선 전 의원은 육성으로 생생하게 친박 세력의 감추어진 정치행태를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정치를 쇄신한다? 정준길 공보위원은 안철수 쪽을 향해 "나오면 죽는다"고 협박하다가 들통났다. 박근혜 캠프가 여전히 공작정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얘기다. 게다가 김재원 대변인은 기자들을 향해 육두문자를 퍼부어댔다가 임명장도 받기 전에 사퇴를 해야 했다.

'국민대통합'의 행보는 어떤가? 봉하마을 방문은 군사작전처럼 기습적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서 재미를 봤는지 전태일재단을 방문하려다 결국 쌍용차 노동자들의 격렬한 항의를 받고 만다. 젊은층과 소통한다고 가천대 특강에 나섰으나 학생 강제동원 시비에 휘말렸다.

인사를 영입하는 방식은 어떤가? 본인에게 허락도 안 받고 이름부터 흘리는 식이다. 졸지에 영입 대상이 된 인사들은 기가 막히다는 반응. 정태인씨는 "초조한 모양"이라고 비웃었고, 장하준 교수는 "영입 제의는커녕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다"고 말했다.

'국민대통합 위원장'으로 영입 대상에 오른 김지하 시인은 허락도 없이 자신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데에 진노했다고 한다. 박근혜 캠프에 합류한 것으로 보도된 손숙 전 장관은 곧바로 "사실무근"이라 밝히고 나섰다. 이 모두가 대통합마저 코스프레로 때우려다 보니 발생하는 해프닝이다.

물론 선거에는 코스프레도 필요하나, 그것도 정도의 문제. 제 정치적 정체성을 감추는 코스프레는 사기이며, 싫다는 사람 쫓아다니는 것은 스토킹이다. 야수가 미녀 복장 하고 싫다는 사람들 쫓아다니는 것은 '광폭'(狂暴) 행보다.('광폭'(廣幅)은 그것이 끼치는 민폐의 범위에 있다.)

압권은 김재범 선수의 경우. 그는 박근혜 후보로부터 경북지역 공동선대위장으로 임명장까지 받았으나 사흘 만에 "모르고 그냥 식사 자리인 줄 알고 갔다가 이렇게 된 일"이라고 해명했다. 밥 먹으러 갔다가 졸지에 감투를 쓴 셈. 이건 전형적인 다단계 피해 사례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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