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기독교 논쟁에 대한 연장선상에 있지 않습니다. * 이 글은 운영자님이 지우셔도 받아들일 것입니다. * 이 글은 믿는 자들에게만 드리고자 쓰는 글입니다. 지겨운 글이므로 불필하신 분은 건너 뛰셔도 좋겠습니다. 교회를 다녀와서 온 가족이 낮잠을 자고 나는 그 동안 읽지 않았던 글을 대략 보든 중 ‘난 기독교인인데 신비인님의 글을 보고 생각이 많아졌다’는 구절을 읽고 ‘이거 잘못 가고 있다’는 생각에 자리를 고쳐 앉아봅니다. 설마 했는데 믿음이 이 정도의 유치한 글 때문에 흔들린다면 답답한 노릇이군요. 그 동안 신비인님의 글을 꼼꼼히 읽지도 않았고 별로 그럴 가치도 못 느꼈었는데 행여 다른 이들이 잘못 말려드는 것 같아 오늘 꼼꼼히 읽어보았습니다. 엄청난 시간이……. 그리곤 역시 괜히 꼼꼼히 읽어보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기독교 염장지르기를 시작하며…….―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하여 만국의 반기독동지들이여 단결하자!” 이제 겨우 시작인데 논리는 없고 빈정거리기만 하느냐. 이게 웬 씨나락소리? 기독교가 언제 사람 사는 세상을 사람 못사는 세상으로 만들었나? 그 수많은 봉사자들은 어떡하라구……. 가엾은 슈바이쪄님……. 이제 겨우 시작이라니. 아예 시비걸기로 작정을. 위의 주장처럼 신비인님의 의도가 무엇인지 명확합니다. 이것은 사탄이 광야에서 예수에게 행한 것들과 거의 유사한 성격의 행태입니다. “뛰어내려라. 내말이 틀렸냐. 증명해봐라…….” 이럴 경우 믿는 자들은 욱하는 성질로 이를 해결하고자 이겨보겠다고 덤벼들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승리는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휩쓸고 로마를 무너뜨려서 지배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는 것이 이기는 법임을 믿는 자들은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지 아니하고 세상의 왕이 되었다면 그냥 그 대에 끝나고 역사로 남을 뿐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에 매달리고 죽으면서 내가 세상을 이겼다고 말씀하시고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역설적인 결과로 수천 년이지나 수억의 인간들 속에 살아 열매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은 담대하십시오 절대로 이런 경우 이기겠다고 욱하고 내 힘으로 해결하겠다고 달려들지 마십시오. 이런 말싸움에서 이긴다고 전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쟁의 답변은 그 논쟁의 제공자나 질문한자의 테두리 안에서 답하시면 안 됩니다. 그것은 상대가 원하는 바요 상대의 허접한 지식의 한계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결국 상대의 허접한 지식 안에서 논의가 되어야 하므로 해결이 나지 않는 법입니다. 가령 광야에서 사탄이 예수님 더러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라’ 라고 따지면 “내가 뛰어내릴 수는 있지만 그것은 어쩌구저쩌구.” 이렇게 답하시지 않으셨죠.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했다” 고 답하셨습니다. “이 여인을 죽여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이러저러해서 죽여야 한다. 혹은 용서해야 한다” 라고 하지 않고 어느 쪽이라도 애초부터 꼬투리 잡고자 한 말이므로. 잠시 동안 땅에 글을 쓰고 군중심리를 가라앉히고 엉뚱한 답변을 합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 돌로 쳐라” 그 말 그대로 그 말에 받아서 해석하고 설득하려 덤벼들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즉 답변의 방향이 상대가 원하는 방향에서 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정치권에서 꼬리 잡고 늘어지기에서 많이 보는 것이죠. 어린아이가 따지고 들면 세상의 이치를 설명할 길이 없어 웃고 마는 경우도 있고 당황하는 경우도 있죠. 그럴 때 어린아이는 자기가 이겼다고 기뻐하는 법이고 어른은 그저 웃기만 하는 거죠. 어느 정도 레벨이 같아야 설명을 하죠……. 그것이 지식이든 신앙이든……. 코끼리 코털을 보고 ‘이 바늘처럼 딱딱하지도 않은 것이 어떻게 나무를 뽑는단 말인가’라거나 혹은 코끼리의 발톱을 보고 ‘계란 같은 이것이 어떻게 걸어 다녀서 나무를 뽑는단 말인가…….’ 라고 하는데 어떤 방법으로 코끼리를 설명한단 말입니까 시므이가 다윗을 욕할 때 그 부하가 ‘그를 죽일까요?’ 라고 물으니 다윗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냥 두어라 저 일도 주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할 수 없느니라” 그런고로 지금 모두 다 아는 것처럼 나서는 것도 우스운 짓이므로 함부로 나서지 마십시오. 주께서 하시는 일은 당장은 이해가 되지 않아도 나중에 이해가 되는 일이 어디 한 둘이랍디까 가령 예수 믿는 사람 찾아다니며 죽이던 사울이 하루아침에 변하여 이방인에게 예수 전하고 다니는 바울이 되지 않았습니까. 저렇게 기독교 욕하기 위해 찾아다니는 신비인도 어느 순간 기독교 환자가 될지 모르는 것입니다 극과 극은 상통한다고 비난하기 위하여 가까이 가는 것도 그만큼 가까이 있는 것이니……. 물론 그는 사울과 다릅니다.(설명 생략) 만약에 일부를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것이 옳다면 일부의 선행을 보고 전체의 선행을 판단해야 할 것이며 일부 이해 못할 구절로 전체를 판단한다면 마찬가지로 차원이 다른 일부의 구절로 전체를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자세히 보면 구절구절만 따질 뿐 전체의 흐름에서는 스스로의 모순도 수 없이 발견됩니다. 그런고로 너무 괘념치 마시기 바랍니다. 말꼬투리 잡는데 따라 잡혀가지 말라는 뜻이올시다. 처음 성경을 접할 때 우리는 가능하면 신약부터 읽으라는 주의사항을 듣습니다. 이렇게 구약부터 읽으면 어설픈 자기 지식으로 이를 해석하려고 들고 그러다가 엉뚱한 논리에 집착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구제받지 못할 오류를 범하기도 합니다. 신비인과 같은 극단적인 비판론자들의 글은 가만히 보면 내용이 아주 자극적이며 기독교의 기본 교리는 파악하지 못하고 피상적인 것에 집착하며 특히 기본 개념이나 혹은 설정 자체가 그릇되어 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애초부터 출발이 잘못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이야기올시다. 신비인도 애초부터 접근 방식이 달랐습니다. 기독교인이 모두 무슨 기복신앙도 아니고... 그렇게 과학적인 것이 중요하다면 왜 과학자들은 이웃을 향한 사랑의 행동을 보이지 않는 것일까요 더구나 종교란 그것이 사회적 영향이든 절대적 영향이든 삶의 본질과 구분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오로지 과학적인(솔직히 그것도 급수가 낮은) 접근방법만으로 해석하려다 보니 절대와 상대의 개념조차 명확치 않은 상태로 사람의 본질을 찾아보겠다는 무모함을 드러냅니다. 과학이란 삶의 본질이 아니라 건강하게 사는 길……. 이런 방향으로 사용해야죠. 그리고 논리와 과학은 다릅니다. 이 말을 이해하시는 분은 이해하시고 안 되시면 그냥 넘어갑시다. (회피라고 말해도 상관없음 어차피 이해 안 되는 거 모아놓고 가르칠 수도 없고) 그리고 기독교는 신약에서 그 의미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예수의 희생이 지니는 의미와 부활이 지니는 의미로 기독교가 존재하는 것이지 기독교에서 그 기나긴 구약은 말귀 못 알아듣는 어린 아이에게 드는 회초리 수준입니다. 예수를 준비하러온 요한의 수준이며 한마디로 몽학선생이라는 이야기올시다. 그런 구약 중 그것도 출애굽까지도 오지도 않고 (이러면 델하비브언덕 이야기도 나오겠지?) 극히 짧은 일부분 몇 가지 구절을 가지고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여 과학이랍시고 글을 다는데 신비인이 그렇게 깊고 심오한 과학적 지식으로 반론을 하고 있다면 왜 많은 과학자들이 연구를 거듭하다가 결국 기독교 환자가 되는 현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그들이 신비인 보다 과학적인 지식이 부족하여 그렇게 기독교 환자가 되었나요? 수억의 기독교인들이 다 신비인보다 못나서 멍청해서 기독교환자가 되었을까요? 질량불변의 법칙이란 것을 진리로 믿고 있을 시절에 질량이 줄었다 늘었다한다고 하면 믿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질량이 에너지란 것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지식이 부족하면 우연이라고 합니다. 과학이란 우연을 줄여나가는 것이죠. (물론 연구할수록 자꾸 우연은 늘어만 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듯이 지금 이해가 안 되는 것도 나중에 이해가 되겠지 하고 믿고 가는게 순리요 그런 것은 우리의 교육과 경험에서 인정되는 것입니다. 애초부터 모든 것을 다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확연하게 알고 믿는다면 세상에 누가 그것을 안 믿겠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이미 종교가 아니죠……. 이미 생로병사의 비밀을 다 아는데 불교의 수행이 무슨 소용이랍니까. 그러나 현실은 기독교가 들어간 나라들은 경제적 부국이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현실이고 결과입니다. 이것은 하늘이 도와서 그랬다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정신이 썩어빠지고 다른 사람 이용이나 하고 돈이나 갈취하려는 것이 아니란 것을 말하고자 인용하였습니다. 구약은 기독교에 작은 부분이요 그곳에서도 아주 아주 작은 일부분으로 소란을 일으키는데 기독교에서는 구약에 여자가 강간당하면 성안인지 성 밖인지 구별하여 처벌하는 규정도 있고 요즘 쓰이는 법정증인 3명도 성경에서 유래 되었으며 심지어는 포도주가 심장병에 좋다는 이야기 까지 나와 있고 효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신이 말하는 인간의 죽음이란 이 칸에서 다음 칸으로 옮기는 과정일 뿐, 이것을 미개한 인간의 관점에서 해석하여 무슨 큰 문제를 발견이나 한 것처럼……. 성경에는 육체를 죽여 대가를 치르고 그 영혼을 구하려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글에 욱하고 반응을 보이는 것은 오유를 들쑤셔 놓아서 그가 원하는 에 대한 도움을 주는 결과일 뿐 어리석은 것입니다. 반 기독교운동은 그토록 싫어하는 기독교 전도와 같습니다. 오유시사게시판을 전도의 장으로 만든다면 옳을까요? 신비인은 애초부터 오유인도 아니었고 어떤 사적인 욕심에서 오로지 기독교를 공격하기 위하여 오유에 가입하였으며 본인은 순진한 백성을 꼬드겨 이익을 취하려는 기독교인들을 비난한다면서 정작 스스로는 이런 글에 흥분하는 순진한 기독교인들을 꼬드겨 별 논리도 없이 그저 들쑤셔 놓고선 결국 자신의 존재(닉에서 읽을 수 있듯이 자기도취적 성향이 강하고 이상한 종교 단체의 교주처럼 타인들로부터 추앙받고 관심 받고 싶어 하는)를 과시하고자 하는 목적을 이루어 나가는 소영웅적인 정도의 작은 사람일 뿐입니다. (물론 반대 하겠지만 스스로는 해방운동가라고 할지라도 독불장군식 운동은 결론이 뻔한데..) 그가 해방하고자하는 것을 보십시오. 무엇으로부터 누구를 해방한다는 것입니까 시사란 사회적 이슈를 말함이지 어느 한사람이 사이트에서 문제를 일으킨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엔 주지자리를 놓고 이단옆차기로 날아다니는 스님들도 있고 어린애 강간하는 목사도 있습니다. 짐존슨의 가이아나 사태도 있고 오대양 사건도 있습니다. 그리고 전혀 신비스럽지 않은 신비인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솔직히 제가 더 신비스럽지 않나요?^^;) 큰 그릇에 작은 돌멩이 하나 던져졌다고 물이 넘치지 않습니다. 이제 더 이상 작은 일에 흔들리지 마시고 말려들지 마십시오. 그를 어떻게 사용할지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입니다. * 이 글은 이 게시판에 적합한 글이 아니라 제 블로그에 올리려다가 자기 홈페이지 광고하고자 하는 신비인님와 같은 사람으로 해석될까봐 그냥 여기에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