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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쓴 매우 단편 소설
게시물ID : freeboard_6855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되염
추천 : 0
조회수 : 29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5/22 22:52:33

*STAR(스타)*

 

나는 입양아이다. 내가 입양되었다는 사실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어쩌다 보니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이 전혀 부끄럽지는 않았지만, 나를 쓸쓸하게 만들었다. 엄마와 아빠는 변함없이 사랑을 주었다. 이러면 안 되지만, 이래선 안 되지만 그 사랑이 가식적이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리고 내가 입양아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나서는 혼 한번 내질 않으신다. 나는 그게 더 어색했다. 그 때부터 나는 점점 마음을 닫아갔다. 집에서는 말 한마디 안했다. 그건 어딜 가나 마찬가지였다. 아주 가끔 무언가 소리를 내려 할 때도 이상한 쇳소리 말고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어차피 말을 안 할 것이기 때문에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별다른 불편함 없이 생활 할 수 있었다. 나의 생활은 남과의 소통을 끊은 대신에 혼자서 생각하고 노는 방법을 터득함에 이르렀다. 나 자신과의 대화는 언제나 활발했다. 그러다 보니 내 안에 있는 여러 명의 친구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모두 나, , , , 나 이다. 내가 스무 살이 되던 해 부모님은 나에게 정장 한 벌과 꽤 좋아 보이는 시계를 선물 해 주셨다. 이런 것들의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정장은 옷걸이에 그대로 걸어 두었고, 시계는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스물 한 살이 되던 해에 아빠가 보채듯이 이제는 대학교에 가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나는 대학생이 될 필요를 못 느꼈기에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아빠의 표정이 살 짝 일그러지려 하자 옆에 있던 엄마가 급히 아빠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힌 방에서 이따금 아빠의 성난 듯 한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책이 떨어지는 듯 한 둔탁한 소리도 났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또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밥을 안 먹고도 살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움직이지 않고도 살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숨을 쉬지 않는 게 고통스럽지 않다면……그러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호흡 하는 것 마저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되었을 때 우연히도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행이다. 귀찮게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안방에 들어가서 서랍을 뒤졌다. 엄마가 먹던 수면제 몇 상자와 아빠가 먹었을 것 같은 신경안정제 몇 상자를 찾았다. 이런 걸 먹고 계셨구나. 하지만 어떠한 연민이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알약들을 한데 모으니 60알정도 되었다. 한 번에 꿀꺽 삼키기엔 양이 너무 많았다. 그래도 이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아 억지로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잘 넘어가지 않아 물을 많이 마셨더니 배가 부르다. 살짝 속이 쓰렸지만 잠들면 되겠거니 하고 내 방 침대로 가서 누웠다. 누워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지러움이 올라온다. 천장이 빙빙 돌기 시작한다. 역겨움이 올라와 토를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스르륵 눈이 감긴다. 몸에 힘이 풀린다. 이제 다 끝났다.

주변이 어두워지고 한기가 온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작은 진동이 느껴진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다. 눈은 떠지지 않고 몸은 천근만근 움직여지지 않는다.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건드린다. 눈이 번쩍 뜨이면서 내가 지금 서 있음을 느낀다. 고개를 돌려 보니 낯이 익다. 내 얼굴이다. 눈이 퀭하고 홀쭉한 게 내가 이렇게 생겼었나 했다. 생소한 소리가 들린다. 내 얼굴에서 나오는 소리다. 내 목소리를 처음 듣는 것 같다. 가늘고 발음이 부정확 하지만 그래도 소리가 난다. 신기하다. 뭐라고 하는지 잘 안 들려서 귀를 가까이 댔다.

오랫동안 기다렸어. 내가 누군지 알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어. 나는 네가 만든 존재이니까 단번에 알아 볼 줄 알았지. 그런데 생각보다 늦게 와서 심심했어. 마음먹기 힘들었나 봐. 아니면 죽는 것조차 귀찮았던 건가?”

상대편의 는 내 표정을 읽은 듯, 내 마음을 들여다 보 듯 이야기 했다.

여기가 어딘지 궁금하지 않아? 네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궁금하지 않아?”

고개를 끄덕이자 는 계속해서 이야기 한다.

여기가 어딘지는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어. 그런데 이승이 아닌 것만은 확실해 보이지? 주변이 이렇게나 어두운데 너랑 내 몸이 보이는 건 이상하잖아. 몸이 빛나는 것 같지 않아? 그래서 난 여기가 좋아. 꼭 스타가 된 것 같잖아.”

마지막 스타라는 말에 내가 피식 하고 웃자 역시 미소 지었다.

그리고 궁금해 하던 너의 상태는 일단은 살아 있다는 거야.”

잠시 아쉬워하는 표정인 나를 보고 상대편 는 계속 이야기 했다.

그런데 걱정 하지 마. 얼마나 가겠어? 이 상태가. 곧 저세상 가겠지. 하하하

의 유머가 식상했지만 의 기분이 상할 까봐 웃어주었다.

혹시 지금 이 상태가 된 게 후회되지는 않아?”

나는 아쉬울 것이 없었다. 그 어떤 것에도, 숨 쉬는 것조차도 흥미가 없었기에…….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비록 이긴 하지만 아주 오랜만에 누군가와 즐겁게 대화 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너를 키워 준 부모님. 비록 양 부모이지만 고맙긴 했었는데, 그래도 마지막인데 얼굴 한 번 보고 가는 게 낫지 않을까?”

맞는 말이다. 그래도 지금껏 이런 나를 데리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만한 일이다. 그러자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 공간이 아닌 곳에서 누군가가 내 가슴을 심하게 때리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고통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면서 주위가 확 밝아짐을 느꼈다. 주변이 너무나 시끄럽다. 흐릿한 시야로 보이는 건 옆에서 나를 붙잡고 통곡하는 부모님과 제세동기로 나의 가슴에 전기 충격을 주고 있는 구급대원이 보인다. 내 상체는 벗겨져 있었고, 흔들리는 걸로 보아 구급차 안에 있는 것 같다. 다시 살아난 것이다. 나를 위해 울어주고 있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왠지 처량하다. 너무나 미안하다. 그리고 뜨거운 감사함을 느낀다. 거추장스러운 산소 호흡기를 떼고 싶다. 손을 움직이고 싶은데 말을 듣지 않는다. 마지막 있는 힘껏 힘을 줘본다. 힘겹게 손을 올리니 구급대원이 제세동기 사용을 멈춘다. 산소 호흡기에 손을 가져다 대고 떼려고 시도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엄마가 손을 뻗어 산소 호흡기 벗는 것을 도와준다. 아빠의 눈물도 보았다. 엄마의 눈물도 보았다. 땀 흘리며 숨 차하는 구급대원도 보았다. 나는 입을 열었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말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뻐끔거리는 내 입에서 쉰 소리가 나왔다.

...............

주변이 스르륵 어두워졌다. 몸이 다시 가뿐해졌다. 샤워를 막 끝낸 것처럼 개운하다. 어느새 가 내 옆에 와 있다.

평생 외롭고 고독했었지. 이젠 나랑 같이 있자. 항상 너만을 위해 있을게.”

내 입에서도 자연스럽게 말이 나왔다.

고마워. 그런데 부모님도 내가 한 말을 들었을까?”

상대편의 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미소만 지었다. 나도 별로 궁금하지는 않았다.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지금을 계속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변은 여전히 칠흑 같이 어둡고, 나와 의 몸은 여전히 빛나는 것처럼 밝아 보인다. 꼭 스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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