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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특급 코미디..
게시물ID : sisa_539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반탄핵신공
추천 : 10
조회수 : 720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04/05/10 09:57:15
송만기, 7년만에 가수 활동을 재개 4집 앨범 ▲ 가수 겸 MC 송만기가 영부인 학벌비하 파문을 딛고 4집 앨범으로 다시 태어났다. / 스포츠좆선 김경민 기자 대통령 영부인 학벌비하 파문에 휩싸였던 화제인물 송만기(46)가 4집 앨범을 들고 7년만에 가수 활동을 재개했다. 그는 최근의 해프닝으로 인해 더욱 널리 이름이 알려졌지만 사실은 70년대 말부터 명동의 라이브 카페 '쉘부르'에서 통기타 가수로 출발한 직업 가수다. 79년 TBC 대학가요경연대회에서 김수철, 권인하, 이정희 등과 함께 출전하며 유망가수로 지목받았고 단국대 경영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친 뒤 육군학사장교로 임관돼 전방에서 중대장으로 전역한 그는 극단 '대하'에서 활동하다 88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LA 라디오 코리아의 DJ, 이벤트 가수 겸 MC 등 그의 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대학시절 국가대표 필드하키 선수부터 방송작가, 홈쇼핑 채널의 쇼호스트까지 거쳤으니 가수중 가장 독특한 이력이다. 93년 귀국해 솔로 1집 '한번만 더'를 발표하며 가수의 길로 되돌아왔다. 당시 김범룡, 이승철, 김상배 등과 같은 소속사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며 가요순위차트 30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성인가요를 시도한 96년 2집 '가슴은 아직도 방황'에 이어 97년 3집의 록발라드 '안절부절'로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경기방송 FM(99.9MHz)에서 '떴다 송만기'라는 프로그램의 DJ를 맡았다. IMF에도 불구하고 무려 26개의 광고가 달라붙는 최고 인기 프로그램이었다. 거침없는 말투와 파격적인 스타일의 진행은 박철보다 송만기가 원조격인데 언제든지 할 말은 하는 그의 독설 때문에 방송위원회 청문회에 불려다녔으며 출연정지를 당하는 아픔도 겪었다. 그에 의하면 지난달 MBC TV 시사프로 '신강균의 뉴스서비스-사실은'의 파문은 대통령 탄핵지지모임 사회자로서 매끄러운 진행을 위해 이런저런 사례를 들어가며 응답을 유도한 것인데 MBC가 문제의 부분만 부각시켜 방송했다고 한다. 그는 이미 해당 프로그램 담당자를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그는 이번 4집에도 편파방송에 대한 그의 항변을 노래한 '방송이 왜 그래?' 등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한 6곡을 포함시켜 눈길을 끈다. .................................................. 저번 사건으로 인생만기되었던 자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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