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전 인터넷 뉴스에서 사천 지진에 대한 기사를 처음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난리 속에서 드러난 모정에 관한 글도 많이 보았고요.
지금까지 알려진것만 해도 2만여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아무 의미 없는 것 인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구호기금이나 보내는게 더 도움이 되겠죠.
그래도, 우리나라는 아니지만. 평소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던 중국이지만
이번사건 속에서 생긴 연민과 가슴의 답답함을 덜고 싶어 이렇게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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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문천현을 중심으로 발생한 이 지진은 진도가 7.8에 달하며…….”
사천이란 말에 한창 쌀을 씻다 말고 급히 수건에 물기를 닦은 후 TV 앞으로 향했다.
“문천현이면 그렇게 먼 곳도 아닌데.”
그녀 홀로 불안한 중얼거림을 하는 줄 모르는 TV는 애꿎게도 설마하는 그녀의 마음새를 찌르는 말을 이었다.
“이번 지진은 진도가 강하고 파급면적이 넒어 청두에 거쳐 두장옌까지…….”
앵커의 말을 뒷받침하듯 TV 화면엔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하나의 충실한 건물이었을 한 폐허를 비췄다. 엉망으로 무너져 처음 보는 이는 원형을 떠올리기 힘들었을 테지만 그녀는 기억 속에서 같은 장소를 찾았다. 잊을 리가 없었다. 하나뿐인 아들의 입학식날도, 참관수업으로도 종종 찾아갔던 학교. 그녀의 아들이 다니는 학교였다. 머리를 스치듯 아들의 아침인사가 떠오른다. 순식간에 그녀의 손발이 차가워짐을 느꼈다. 아니 그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녀는 넋이 나가 보였다. 아들, 아들, 아들, 아들. 급히 옷을 차려입으며 그녀는 아들의 얼굴을 떠올리려 애쓴다. 하지만 오늘 아침 웃으며 인사하고 나갔던 아들의 얼굴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집을 나서 바로 택시를 잡았다. 택시기사의 얼굴 역시 그녀처럼 그늘이 드리워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에 닿은 손은 차가웠지만 정작 손에는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자 그녀의 손을 타고 눈물이 흐른다. 그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순간 아들의 우는 모습이 떠오른다. 무겁고 서늘한 콘크리트 더미 어딘가에 묻혀 자신을 부르며 울고 있을 아들. 놀라 눈을 뜨자 가까스로 기억난 아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 그녀의 아들은 열이 난다며 학교를 쉬어도 되냐고 물었다. 그럼에도 꾀병이라 생각하고 억지로 학교를 보낸 것이 잘못이었다. 아니 그전에 굳이 먼 학교에 보낸 것이 실수였다. 어쩌면 남편을 따라 고향을 버리고 사천까지 온 것이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 같다는 기분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러며 한참을 달리자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도착했다.
학교는 엉망이 되어있었다. 아들이 오늘 아침까지 딛고 걸었을 마루는 단순한 나무판자가 되어 널브러져 있었고 그 너머로 회색의 콘크리트 더미가 쌓여있었다. 그 중심부엔 s 크진 않지만 불도 올라오고 있었다. 집에서 이곳까지 겨우 지탱해 오던 다리는 이내 힘이 풀렸고 그녀는 주저앉았다. 주위는 시끄러웠다. 아수라장이라는 말이 문득 스쳤다. 하지만 그 대부분이 무너진 학교를 둘러싼 단순한 구경꾼 혹은 자신같이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안심하고 있던 부모들이 내는 소리였다. 오히려 무너진 학교 안쪽은 조용했다. 아들의 슬픈 비명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짧은 생각이 스치고 이내 무거운 슬픔이 머리를 짓눌렀다. 아들은 소리조차 지르지 못한다. 망연자실한 채 주저앉은 그녀의 시선 너머로 정부의 구조 작업을 기다리다 못한 학부모들이 팔을 걷고 맨손으로 무거운 콘크리트를 들어내고 있었다. 정신이 어느 정도 돌아오자 그녀도 이미 다른 이들처럼 필사적으로 돌을 들어내고 있었다. 도시에서 태어나 농사일 한번 없이 가정에서만 지내온 그녀의 고운 손이 이내 모난 콘크리트에 거듭거듭 긁히며 붉은 피를 흘렸다. 하지만 멈출 순 없었다. 바로 이 너머에 자기 자식이 울며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손 따위는 어떻게 돼도 좋았다.
사흘 밤낮을 잠도 자지 못하고 그녀는 계속 돌을 들어냈다. 그동안에도 수많은 아이들이, 그녀의 아들을 알고, 함께 뛰놀았을 아이들이 꺼내어졌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이 자신의 팔로, 자신을 위해 걱정한 부모를 안지 못하였다. 다만 피투성이가 된 부모의 손이 그들을 껴안고 연기로 얼룩투성이가 된 얼굴로 조금이라도 남아있을지 모르는 자식의 온기를 느낄 뿐이었다. 그리고 겨우 차가운 콘크리트 더미에서 꺼내어진 아이들은 또다시 가슴 아리게 퍼런 비닐에 싸여졌다. 그녀는 그런 아이들과 아들의 얼굴이 겹쳐졌다. 그리고 그때마다 더욱 거칠게 돌을 들어냈다. 이윽고 흰 방재복을 입은 이들이 그녀를 비롯한 부모들을 밀어냈다. 시체가 모인 곳에는 전염병이 돈다고 하였다. 그녀의, 그리고 주변의 여러 부모들의 소중한 아이들을 그들은 이미 시체로 취급하였다. 이내 그들이 가져온 호스에서 새하얀 분말을 뿌리기 시작했다. 바람에 날린 그것은 그녀의 숨을 따라 코로 들어가 목을 따갑게 하였다. 그녀의 아들은 그것은 온몸으로 뒤집어쓰고 있을 것이다. 겨우 72시간. 자신의 아이를 이렇게 만든 정부가 정한 시간에 의해 그녀의 아들은 죽은 것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 위로 소독약인지 아니면 죽은 아이의 그 무엇일지 모를 하얀 것이 스쳐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