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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 05. 휴식
게시물ID : mabinogi_209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필하모니
추천 : 0
조회수 : 26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5/24 06:42:17

온타나와 통신이 끊긴 지 하루가 지났다. 평상시면 반나절이면 갈 거리건만… 시간이 가면 갈 수록 발걸음이 급해졌다. 던바튼에 하루라도 빨리 도착하여 온타나의 흔적을 찾아야했다. 등에 맨 가방이 이상하게도 무겁게 느껴졌다. 지친걸지도 몰랐다. 밤 낮, 먹는 것을 제외하곤 던바튼을 향해 걷기만 했다. 하지만 내가 지친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였다. 근처 던바튼의 피난민과는 다르게 멀쩡한 옷차림의 나는 도적단의 표적이 되기 딱 좋았다.

 

 

"어이, 누님! 가진 걸 모두 내놓지 않으면 험한 꼴을 당하게 될걸?"

 

 

 던바튼의 함락은 어린 꼬마아이에게까지 몹쓸 선택 앞에서 갈등의 고문을 겪게 만들었다. 아니,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달아날 수도, 대항할 수도 없는 궁지까지 내몰려 어쩔 수 없이 범죄의 유혹을 언도받는 것일지도 몰랐다. 길을 따라 반복되고 있는 약탈, 던바튼에서 여기까지 굴러온 것으로 보이는 까맣게 탄 쓰레기들은 종이나 나무 뿐 만이 아니였다. 거기엔 사람도 속해 있었다.

 

 

"몸뚱아리 멀쩡한 사내가 도적질이나 하고 있어?"

 

"헹, 몸뚱아리 성하니 도적질하지. 팔다리 하나씩 잃고 도적질 하남?"

 

"그것도 그러네."

 

 

 듣고보니 맞는 말이였다. 엉겁결에 대꾸하는 투로 대답해버렸다. 도적에게 반박을 듣다니, 왠지 낯설기만하다. 도적은 말보다 시퍼런 단검의 날을 먼저 들이대야 옳는 그런 놈들이였다.

 

 

"누님, 여긴 자주 오나?"

 

 

 소년은 좀처럼 공격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한껏 여유로운 표정. 지금까지처럼 초짜로 보이진 않았다. 하루빨리 움직여야하는데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그런건 왜 물어. 혹시 나한테 관심있어?"

 

"오해는 말라고. 그냥 지루해서 묻는거야. 시간도 많은데 서두를 필요 있겠어?"

 

 

 놈은 시간이 많은 모양이였다. 아니면 기만을 위한 안개일지도 모를 일이였다. 느긋한 말투와 느릿한 호흡에서 날 선 긴장감이 느껴졌다.

 

 

"여기가 쏠쏠한가? 하긴 별 힘들이지 않고 주머니를 털 수 있으니 재미 좀 봤으려나?"

 

"이번엔 누님 차례야. 왜 그러셔."

 

"지랄. 엿이나 먹으라지."

 

 

 술수에 넘어갈 수는 없었다. 허튼 소리로 경계를 늦춘 후 허를 찌르고 올 터였다. 도적질이나 암살에 일가견이 있는 놈이라면 그런 전술도 가능할 것 같았다. 대꾸할 필요는 없었지만 선제공격을 감행하기엔 어딘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느낌을 보아하니 놈도 꽤나 짱구를 굴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헤헤, 여전히 성질머리하곤… 내가 시비를 걸었으니 합을 좀 봐야하나? 근데 좀 쉬었다 하자. 어차피 하나는 승자가 되고 하난 패자가 될테니깐."

 

"미친놈, 나 지금 정말로 바쁘거든? 볼 일 없으면 당장 꺼져줄래?"

 

 

 놈의 목소리는 갈수록 여유로웠다. 천천히 움직이던 소년은 크고 넓직하게 생긴 바위에 걸터 앉았다. 슬며시 짜증이 솟았다. 난 그가 앉아있는 틈을 타 가방에서 재빨리 대장장이용 망치를 꺼내들었다.

 

 

"푸히힛! 그거 설마 무기?"

 

 

 놈의 웃음소리에 조롱이 담긴 것 같았다. 아니 담겨 있었다. 조롱이라면 참기 힘든 일이였다. 이제 조롱은 과거 실패와 낙오에 인한「그 일」만으로도 충분했다. 세상에서 조롱당하더라도 저 소년에게 조롱당할 이유는 없었다. 

 

 

"씨발… 도적놈에다가 조롱까지? 슬슬 기분 나빠지려하는데?"

 

"하하! 그 망치로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그렇다면 덤벼봐."

 

"해보지 않곤 모르는 일이지."

 

 

 소년 역시 재빨리 방어태세를 갖추며 단검을 곧추세웠다. 곧 이어 칼 끝에 푸른 반사빛이 피었다. 빠르게 그에게 다가가 망치를 크게 휘둘렀다. 예상하던대로 그는 프로였다. 두 합, 세 합이 아슬아슬하게 그의 스탭에 빗겨갔다. 소년은 눈 깜빡 하지 않은 채 슉슉 스윙을 피해댔다.

 

 

"헤헤. 빈틈 발견!"

 

 

 날 사이로 그의 미소가 보였다. 동시에 가슴께에 바람이 일었다. 바짓가락이 베어지는 소리가 섬뜩했다. 놈은 허를 놓치지 않았다. 가슴께를 스친 바람결에 몸을 물리는 순간 칼바람이 정수리를 향해 밀려왔다. 속도가 매우 빨랐다. 횡으로 펼쳐진 단검을 거둬들이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날이 직각으로 쏟아졌다.

 

 

"……?!"

 

 

 놈의 단검술에 익숙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을 깊게 생각할 여유따윈 없었다. 펼치는 공세가 빨랐다. 그 칼 끝을 피하기 위해 곁으로 도약하고 낙법해서 충격을 줄였지만 쉽지 않았다. 스무 합을 넘기면서 숨이 턱에 차기 시작했다. 수세도 벅차니 공세는 엄두도 나지 않았다. 틀림 없이 녀석이다.

 

 

"이런 미친 쥐새끼… 어디 숨어 지내나 했더니 여기서 도적질이나 하고 있었어?"

 

"오랜만이야. 철공녀. 푸히힛, 강철 5인방은 모두 어디가고 댁 혼자야?"

 

"하아 하아… 네놈이야 말로 왜 혼자 있어? 이 쥐새끼야."

 

 

 놈은 내 말에 대꾸도 앉은 채 고삐를 늦추지 않고 다가왔다. 서둘러 물러서도 놈의 눈빛은 여전히 단검 끝에 있었다. 절망이 앞섰다. 긴장을 늦춰봤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곧 몸 어딘가에 뜨거운 불길이 지나갈 터 였다.

 

 

" 촤악 -! "

 

"읏……!"

 

 

 베이고야 말았다. 붉은 빛의 선혈은 땅바닥에 흩뿌려졌다. 예상외로 데미지가 컸다.

 

 

"하하하! 오늘은 정말 재수가 좋군! 옛 동료와 마주치질 않나. 철공녀를 만나지 않나! 대박인데?"

 

"으읏…!"

 

 

 상처가 깊었다. 움직일 수 있을까? 발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일어나보려 안간힘을 써봤다.

 

 

"이런, 그렇게나 굳세던 철공녀 에일렌이 그런 표정을 짓다니! 하르겔이 본다면 무진장 슬퍼하겠는데?"

 

"뭐…?"

 

 

 듣고 싶지 않은 이름의 등장. 온 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듯한 느낌.

 

 

"…으로 부르지마."

 

"뭐?"

 

"그딴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어."

 

"뭔 개소리야?"

 

 

 나의 분노에 답하듯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이것이 나의 파멸로 이어질지 놈의 파멸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길은 없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놈은 나보다 한 수 위였다.

 

 

"기도하는 신이 있다면 지금 기도해라. 네놈들처럼 막되먹은 미치광이들 덕분에 내 친구에 대해 모두가 편견과 두려움을 가지는거야. 마프림과 온타나도 그 때문에 무고하게…!"

 

"지-이랄."

 

 

 놈은 빠르게 튕겨나와 나에게 접근했다. 그의 품세나 동작이 컸다. 일격에 끝낼 요령인듯 보였다. 원하는 바였다.

 

 

"자칭 둔성(鈍聖)이라 칭한 리우가 말했지. 둔기는 검처럼 적의 살을 베거나 찌를 수 없지만…"

 

 

그의 단검이 망치의 쇳부분과 정통으로 닿았다. 금속이 부딪히는 경쾌한 파열음이 맑게 울렸다.

 

 

"우웃……!"

 

"적의 무기나 뼈정도는 가볍게 박살낼 수 있다고!!"

 

"콰장창!"

 

"아, 이 빌어먹을…."

 

 

 망치에 닿은 단검의 날은 그대로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대로 망치는 놈의 늑골에 강력한 스트라이크를 날렸다. 빠악-! 하는 경쾌한 뼈 부러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놈은 토혈하며 신음을 내뱉었다.

 

 

"크흑!"

 

"헹! 그 단검 아주 싸구려구만? 요즘 대장장이들이란… 물건에 영혼이 안 담겨있잖아?!"

 

 

 놈은 뒤로 나자빠지는 듯 했지만 믿기힘든 동작으로 낙법하여 나와 거리를 두었다.

 

 

"아오 젠장… 이건 무진장 아프군.."

 

"늑골 세개쯤은 우습게 날아갔을걸?"

 

"끄하하학…! 재밌군 재밌어! 역시 철공녀 누님이 최고라니깐. 뭐 얼굴 도장은 찍었으니 이쯤에서 물러갈까?"

 

"지-이랄.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하라고. 도망이겠지. 푸히힛!"

 

 

 놈을 좀 더 비웃고 싶었지만 그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숨어만지내던 그들이 내 앞에 대놓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이유가 있겠지. 시급했다. 얼른 온타나를 찾아야하는데… 던바튼쪽으로 걸음을 재촉해보려 했지만 다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머리에 떨어지는 뭔가를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후두둑 비가 떨어졌다. 막 쏟아낼 소나기로 보였다. 짙은 먹구름이 낮게 내려앉아 내 시야는 온통 잿빛이였다.풀밭 여기저기 난 잡초도, 먹빛을 뿜어내던 하늘도 모두 흐릿한 실루엣이였다.

 

 

"크으. 이럴 때 비라니, 나도 참 운도 지지리 없지.."

 

 

 다리에 힘이 풀려갔다. 금방이라도 고꾸라져 넘어질 것 같았지만 계속 전진했다.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대로 죽어버릴 것 같았다. 을씨년스러운 날씨의 빗장울이 자꾸만 내 시야를 가려댔다. 결국 진이 다 빠진 난 힘을 잃고 내 머리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것이 좋은 징조일리는 없었다. 점점 눈꺼풀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시야가 흐려지자 죽음이 눈 앞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살아남아야만 했다. 살아남아야만 훗날을 도모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발은 말을 듣지 않았다. 뭐든 움직이려고 해봤지만 몸은 쥐죽은 듯 가만히 있었다.

 

 

"빌어처먹을 다리야. 움직…………여.."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아득하고 편안한 느낌이 죽음의 기로 앞에서 느껴졌다.

 

 

"네가 날 부르는 별명말고 말이야. 난 누구냐고."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의 순간에 떠오른건 덤덤하게 자신의 자아를 물었던 온타나의 목소리.. 난 도대체 무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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