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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닫는 것이 공포의 시작
게시물ID : humorbest_54142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세피아
추천 : 26
조회수 : 4667회
댓글수 : 0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10/07 23:00:52
원본글 작성시간 : 2012/10/07 04:03:07

 나는 복도식 아파트에 살고 있다. 좌우로 3호씩, 한층에 총 6가구가 산다. 나는 502호로 좌측 중간에 살고 있다. 내 방은 복도쪽에 붙어 있는데, 그 날도 창문을 열어 놓고 밤새도록 온라인게임을 하고 있었다. 물론 부모님은 모르게 몰컴을 하고 있었다. 불을 끄고, 헤드폰을 끼고 신나게 인던을 돌고 있는데, 그 날도 옆집사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501호에 사는 사람은 일이 늦게 끝나는 건지, 놀다 오는건지 매번 새벽에 지나가곤 했었다. 발자국 소리로 봐서 내충 내 또래 여자같아서 은근 관심이 갔다.

 

그리고 다음 날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여동생한테 물었다.

"야, 혹시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아?"

"어디 옆집?"

"아... 501호 말이야"

그러자 동생은 의아한 듯 이렇게 말했다.

"501호? 아무도 안 살잖아. 이사 간지가 언젠데... 아직 사람 안들어왔어"

뭐라고? 사람이 안산다고? 그럼 그 여잔 누구야? 난 다급하게 다시 물었다.

"뭐? 언제부터?"

집요하게 묻자 동생은 짜증이 났는지 조금 날카롭게 대답했다.

"아! 몰라... 한달정도 됐나? 왜?"

"아냐..."

 

도대체 그 여잔 누구야? 하고 생각하는 순간 깨달았다. 나는 문을 여닫는 소리를 한.번.도. 들은 적이 없다. 식은 땀이 흘렀다. 그 여잔 도대체 누구지?

 

그리고 다시 찾아온 밤. 그냥 자면 좋겠지만, 온라인게임의 중독성은 여간 대단한게 아니었다. 또 다시 불을 끄고 게임을 하고 있었다.

 

'또각, 또각, 또각'

 

온 몸의 세포가 곧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이상할 정도로 정신이 날카롭게 선다.

'제발... 제발... 이쪽으로 오지마!!!!!'

하지만, 내 기대를 저버리고 항상 그렇듯이 그 여자는 우리집을 지나 501호로 갔다. 나는 숨죽이고 귀를 귀울였다.

5초... 10초... 15초... 문을 여닫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다시 빠져나가는 소리도... 나지 않는다.

'제발!! 들어가!! 제발... 거기서 뭐하는 거야!!'

정말 미칠 거 같았다. 당장 현관문을 열고나가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나에겐 그런 용기따윈 없다. 그렇게 오늘도 무언가가 501호 문 앞에 서있다. 오감의 모든 집중력을 청각에만 집중시킨다. 식은땀이 계속 흐른다. 더워 미칠거 같지만, 닫혀있는 창문은 열 수 없다. 들릴리가 없는 숨소리가 느껴지는 것 같다. 이 감각, 이 느낌이 견딜수 가 없다. 도대체 그 여잔 빈집 앞에서 뭘 하는걸까.

 

그렇게 잠들 수 없는 밤이 계속됐다.

 

 난 공포를 이길 수 없게되면, 이불을 뒤집어 쓰고 극도로 긴장된 상태에서 식은땀을 흘리다 나도 모르게 잠들곤 했다. 이대론 살아갈 수 없다. 점점 오전수업에 지각하는 일이 잦아졌다. 눈에는 어둠이 내려와 있었고, 친구들은 게임 좀 그만하라면서 걱정했다. 게임 같은건 이미 접은지 오래다. 아니, 할 수 없게 되었다는게 맞겠지. 나는 결심했다. 오늘 그 여자의 정체를 확인해 보기로. 그리고 다시 밤이 찾아왔다.

 

'또각, 또각, 또각'

 

왔구나!! 나는 청각에 모든 집중력을 쏫아 부었다. 또각하는 소리가 옆집의 문앞에서 멈쳤다.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역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10분~20분 정도 지났을까? 시계를 보니 2~3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역시,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다. 나는 마음을 바로 잡았다.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이렇게 컸었던가? 천천히 현관문의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철컥!!'

 

 순간, 헉! 소리가  날만큼 엄청난 기세로 잠금장치가 해제되었다. 그렇게 천천히 돌렸는데도... 지금 내 집중력은 정상이 아니다. 그리고 천천히 문손잡이를 잡고 밀었다. 젠장!! 문은 당연히 출구쪽으로 움직이기 편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몸을 완전히 빠져나가지 않으면 문 넘어의 501호는 볼 수 없다. 왜 이걸 생각못했지? 정말 미칠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멈출수도 없다. 지금까지 쌓여온 공포와 스트레스는 나의 임계점을 충분히 돌파하고도 남았다. 여기서 멈춘다면, 자멸뿐이다. 나는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아아, 그러고 보면 분명 초등학교때 거울의 원리때문에 잠망경 같은걸 샀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열려진 문의 틈 사이로 얼굴을 내미니 엘레베이터쪽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엘레베이터 코너쪽으로 스산한 기운이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안된다. 정신을, 집중력을 더 이상 유지시킬수가 없다. 나의 한계는 결국 이 몇분인가? 온 힘을 다해 문을 밀면서 순간적으로 501호쪽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시선을 보낸 그 곳에는!!

 

'뭐야? 아무 것도 없잖아?'

 

 순간, 세상의 공기가 땅으로 다 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볍다. 그래 원래 공기는 이렇게 가벼운 것이지. 그럼, 도대체 내가 들은 그 소리는 뭐지? 아니 소리? 불투명 창문 넘어의 그 실루엣도 가짜란 말인가? 환각, 환청? 뭐가 뭔지 모르겠다. 피곤해진 나는 문을 부여잡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느꼈다.

 

 나는... 뒤 돌아보면 죽는다! 그렇게 확신했다. 팽창된 공기가 다시 농염하게 나를 둘러싸기 시작한다. 머리 뒤로 느껴지는 공간은 더 이상, 이 세계의 것이 아니었다. 피로 젤리를 만들어 녹인 뒤 덮어쓰면 이렇게 기분나쁘고 눅눅하고 무거운 느낌이 들까? 문손잡이가 미끌거린다. 끈적한 공기가 손에 달라 붙는다. 깜짝 놀란나는 손잡이를 놓고 말았다. 복도에서 불어온 바람일까? 누군가의 숨결일까? 끈적한 공기가 뒷덜미로 불어왔고, 견딜 수 없어진 나는 앞으로 한걸음 내딛고 말았다. 아니, 본능적으로 멀어질려고 했었는지도 모른다. 눈치채보면 앞에는 막다른 공간. 뛰어 내릴까? 아니, 여긴 5층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머리와는 반대로 발은 한걸음 또 나아가기 시작했다. 위험을 피하기 위한 본능의 움직임인가?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온 몸을 울렸지만, 곧바로 공기중에 흡수되어 간다. 그래 도망칠 수 없다. 살고 싶다. 나는 결심했다. 맞서기로, 물론 뒤 돌아볼 용기는 없었다.

 

"으아아아아아!!"

 

조금이라도 더 그것과 더 멀어지기 위해, 나는 막다른 골목으로 뛰었다.

5m도 안되는 거리를 미친듯이 뛰었다. 눈 앞에 초인종이 보였다.

'띵동, 띵동, 띵동, 꽝,꽝,꽝' 

나는 미친듯이 초인종을 누르며 문을 두두렸다.

"여보세요!! 안에 누구 없나요? 으아아!!"

복도를 등진채로 울부짓다, 공포감에 못이겨 복도끝의 난간으로 몸을 틀며 기댔다. 복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털썩'

긴장이 풀리면서 무너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악, 하악, 헉, 헉, 헉'

내 숨소리만 복도에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끼이익'

문이 열렸다.

 

"....."

"....."

우리는 한 동안 서로를 쳐다보았다.

"....."

"....."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마.

"미친놈"

우리 집 현관문에서 나온 동생이 벌레처럼 날 쳐다보다 그대로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아~"

도대체 내가 본 것은 뭐지? 이젠 뭐가 뭔지 알수 없게 됐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집으로 돌아가는 것 밖에 없었다. 심호흡을 하며 일어설 때 였다.

"흡?"

뭐야? 음식물쓰레기라도 방치하고 이사간 건가? 미미하지만 조금 썩는 냄새가 났다. 어릴적부터 후각 하나는 타고나서 틀리진 않았을거다. 그 때 한 가지 머리속에 스쳐간 생각. 설마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사고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하나의 가설로 이어져 가고 있었다. 아니, 그래도 설마?

 

다음 날, 나는 경비실에 연락해서 옆집에서 악취가 난다며 빨리 처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아파트 보조키를 이용해 501호로 들어간 경비아저씨는 예상대로 비명을 지르며 문밖으로 나왔다. 그 뒤로는 경찰출동. 나는 목격자 진술 때문에 꽤나 고생했다.

 

그렇다. 수상하게 여긴나는 악취문제를 빌미 삼아 경비아저씨와 함께 그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집 안 장롱 속에 남겨진 여자의 시체를 발견했다. 장롱의 가장 깊숙한 칸, 밑단에 시체가 구겨져 넣어져 있었다. 대량의 방부제와 함께. 시간벌기용인가? 장롱은 열기 전에도 이미 짙은 남갈색으로 변해있었고, 구더기가 장롱밖으로도 기어다니고 있었다. 조금만 상상력이 있어도 충분히 예측가능한 일이지만 경비아저씨는 내 눈짓에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직업이니까.

 

그 뒤로, 여자의 환영을 보는 일은 없었다. 그런가. 난 보기 좋게 이용당한건가. 뭐, 그런건 어찌되었건 상관없어진 기분이다. 다만, 두번 다시 나타나는 일이 없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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