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열렸던 제 24회 서울 올림픽.
지금의 중고교생, 아니 대학교 저학년 학생들도 이제는 경험하지 못한 대회가 되었을 만큼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하지만 서울 올림픽은 다른 그 어떤 대회보다도 감동적인 올림픽임에 틀림없습니다.
제 24회 서울 올림픽이 있을 때까지 올림픽은 참으로 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예전의 고대 올림픽 때에는 올림픽을 하면 전쟁을 쉬었는데
지금의 올림픽은 전쟁을 하면 올림픽이 쉽니다.
제 6회 독일 베를린 올림픽이 제 1차 세계대전으로 무산되는가 하면
제 12회 일본 도쿄 올림픽과 13회 핀란드 헬싱키 올림픽도
제 2차 세계대전으로 무산되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제 20회 서독 뮌헨 올림픽은 테러로 물든 비참한 대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의 숙소를 습격하여
이스라엘 선수 2명을 살해하고 11명을 인질로 삼아 이스라엘에 억류중인
팔레스타인 게릴라 200명의 석방을 요구한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로 인해 대회가 24시간 동안 중단되고, 공항에서 탈출 직전 테러범들과
서독 특수부대와의 총격전이 벌어져 이 사건은 인질 전원과 테러범 5명,
서독 특수부대 요원 1명 등 모두 17명이 숨지는 비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선수단을 철수한 이스라엘은 즉각 피의 보복을 감행했고,
이듬해 중동전쟁이 벌어지는 불씨가 됐습니다.
올림픽의 속행여부를 놓고 많은 논쟁이 벌어졌으나,
IOC 위원장 에이버리 브런디지가 위기를 극복하는 것 또한
올림픽의 정신이라는 주장이 받아 들여져 다시 속개되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제 22회 소련 모스크바 올림픽과 제 23회 미국 로스앤젤레스 대회는
절름발이 대회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올림픽 역사상 가장 큰 불참 운동으로 이어져
자유 민주주의 진영의 60여개국이 불참했으며 또한 참가한 자유진영의 국가들 역시
개막식 뿐 아니라 메달 수여식에도 참석하지 않아 국가 대신
올림픽 찬가가 연주되는 해프닝을 낳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불참했으며 자유 민주주의 진영이 대거 불참한 공산주의 진영만의
대회가 되자 소련과 동독 두 국가가 전체 메달의 90%를 휩쓰는 결말을 낳았습니다.
4년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 23회 올림픽...
1980년 모스크바 대회 불참을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국가들이 불참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이번에는 소련, 동독 등의 공산주의 진영의 국가들이 대거 불참하여 역시 반쪽짜리 대회로 개최되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중국은 올림픽에 참가하며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렇게 22회와 23회 올림픽이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간의 반목으로 끝이 났다면
24회 올림픽은 이 두 진영이 다시 한자리에 모여 화합의 장을 연 감동적인 대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울 올림픽이 가장 감동적이라고 하는것입니다.
1988년의 서울 올림픽에서 두 진영의 화합은 1990년대 소련의 붕괴와 독일의 통일 등으로 이어지며
지난 100년간 계속되어온 자유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이념과 사상의 대립이
사라지고 인류가 화합할 수 있다는 신호탄이 되었던 것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