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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병을 죽게 한 군대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하여
게시물ID : sisa_5421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킬프군단
추천 : 1
조회수 : 68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8/03 03:32:27

전에 이런 현상과 아주 유사한 상황을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원래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진과 왕따 문화에 대해서 정리하다가 나온 결과입니다.

 

자유로운시민사회vs학교다움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S102&articleId=572198

 

 

 

이 글의 저자는 중간집단전체주의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는데 이 중간 집단 전체주의 사회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개개인이 공동체가 강요하는 집단이나 조직에 전적으로 흡수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강제적인 경향이 제도적 · 정책적인 환경 하에서 사회에 세력이 확장된다. 여기에 더해 이러한 경향이 사회에 두루 퍼져 있다. 특히 제도 · 정책적 환경에서 무리의 질서(군생 질서)가 개인보다 우위에 놓이는 것은 물론 그 작용이 사회 곳곳에 미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를 중간집단전체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 집단을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 있습니다.

 

1. 다른 사람과의 거리를 강제로 좁혀버려 거리감을 유지할 수 없는 집단

2. 내부의 규칙이 시민사회적 규칙과 다른 집단, 학교법은 폭력학생에 대해 경찰력을 동원하지 않는다.

3. 억지로 서로 친해질 것을 강요하는 공간

 

 

이지메의 모형은 다음 두 가지가 필수적이다.

 

1. 자신의 손에 의해 비통 속에서 존재 자체가 파괴되어가는 타인

2. 그 타인의 스러져가는 숨결과 고통을 즐기면서 완전하게 타인을 조종하는 자신 

이름

양상

1. 파괴신과

무너져 내리는 희생물

폭력적인 힘을 통해 피해자를 단숨에 무너뜨리는 것을 즐기는 형태이다.

2. 주인과 노비

명령-복종의 형태이다. 일반적 노예와는 달리 자기 마음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조종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몸도 마음도 즉시 반응하도록 조종당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항상 흠칫흠칫 눈치를 살핀다. 그리고 그 내면에서부터 주인의 힘을 즉각 반영하며 살아야 한다.

3. 장난치는 신과

그의 장난감

장난치듯이 억지스러운 것을 시킨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을 보며 쾌감을 느낀다. 고통을 주기 위한 다양한 실험적인 아이디어를 짜내서 피해자로 하여금 상상하지도 못한 짓을 시키는 것이다.

 

 

 

그들이 윤일병에 한 짓은 저 위의 세 가지 유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윤일병을 괴롭히는 방식은 학교에서 왕따를 괴롭히는 방식과 다르지 않습니다.

가래를 핥으라고 한 짓은 3번 폭력행위는 1번, 그리고 그 가운데에 분명히 2번이 들어있습니다.

 

 

요즘 저는 우리 한국 사회에 바로 저 <중간 집단 전체주의>가 펼쳐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

특히 군대는 학교처럼 내부에 갇힌 채 바깥 세상의 규칙이 통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가해자들은 윤일병만큼이나 되풀이 되는 폭력 속에서 살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심리는 제가 정리한 글에서 이렇게 표현하지요.

 

가해자는 강인해질 수 없는 자를 장난감처럼 취급하는 행위는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고통을 거쳐 강해진 자들은 슬픔, 아픔, 정의, 인간다운 감각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은 자신을 강인한 이미지로 개조하는 일에 집착한다. 그들에게 강해진 자가 강해질 수 없는 자를 장난감으로 취급하며 노는 것이 정당하다.  

이지메를 심하게 겪은 사람일수록 이 권리 의식은 강해진다. 이 권리를 침해당하면 격하게 부정한다. 자신도 예전에 이런 일을 당했었다고 주장하는 가해자들이 있다. 혹은 이건 전통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은 견뎠으니 다른 애들도 그래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은 갖은 박해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처세해서 강인해졌다는 자부심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여기게 되어 이런 짓에 대해 양심적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결국 그들의 사회는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거나, 법으로 사람을 지키는 사회가 아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을 단련시켜온 사회인 것이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집단생활을 통해 이러한 집단 교육을 익힐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은 강해질 수 없는 한심한 자를 향해서 억누를 수 없는 분노와 공격 욕구를 느낀다. 세상과 자신 사이에 경계를 긋는 일에 성공한 사람을 보면 화가 난다. 고통을 겪지 않고 행복해 보이는 자를 대면하면 피해의식과 증오에 휩싸인다. 그리고 기회가 주어지면 고통을 느끼게 해주리라 결심한다. 학교의 집단생활은 ‘고통을 당해서 비뚤어진’ 자들에게 그러한 기회를 얼마든지 준다.

 

 

제가 정리한 <이지메의 구조>에서는 공간은 제도·정책적인 환경의 영향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다. 같이 있고 싶지 않은 가학적인 친구나 선생님과 종일 부대끼며 공동생활을 해야만 한다는 조건이 있다. 여기에 다양한 강제적 학교 행사가 더해진다. 게다가 폭력에 대해서 법의 손이 뻗치지 않는 무법지대라는 점이 덧붙여진다. 이 사례와 같은 집단 심리-이해투쟁의 정치 공간을 만드는 좋은 조건을 제공하고 있다.라고 표현하고 있지요,

 

 

전체주의 사회의 학교나 회사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다. 이 전체주의적 중간 집단 역시 개인에게 자치와 참가를 심하게 요구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개인을 철저히 압박한다.  예를 들어 전쟁 때는 지역공동체에서 가혹한 억압이 이루어졌다. 전쟁이 시작되자 공동체가 조직되고 다양한 행사와 함께 국가에 헌신하는 공동체적 상황이 많아졌다. 그러자 그때까지 숨어있던 질투, 악의가 일어나며 집단 따돌림이 자주 일어났다. 법을 사이에 두고 각자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다. 시민 사회적 사회에서는 사적인 행복을 추구하고 살았던 그들이 말이다.

 

전쟁이나 혁명, 민족분쟁이 한창인 때 직장, 학교, 지역이 공동체화 된다. 이때 상당수의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악행을 일삼으며 함께 살아야 했다. 

-파마같은 것은 하지 말 것.

-이런 비상시에 여자와 시시덕거리고 있다니, 이 매국노!

-괘씸하다. 괘씸하다. 괘씸하다. 부럽다. 괘씸하다.

-나라를 위해 일치단결하고 서로 거리감이 없어지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와 거리를 두고 우리보다 즐겁게 살던 너희들이 미웠다.

-지금이 기회다. 된맛을 보여주마. 꼴좋다. 

 

거리를 조절할 자유가 법으로 보장되어 있는 시민사회에서는 그들도 선량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공동체가 개인을 압박하면 그들은 급격히 변화한다. 이런 생각들에 대해 개인이 원하지 않아도 그의 내면에 강제로 침투한다.

  

2차대전 당시 일본에서는 각 마을을 분단 단위로 나누었다. 그리고 분단별로 젊은이들을 소년단에 배정했다. 이 소년단에서 그들은 공동으로 소사회를 이루어 자치를 해야 했다. 그러자 원래 학교제도 아래에서나 만연하던 이지메가 몇 배로 심해져서 나타났다. 더욱이 공습을 피해 공동생활을 하는 일이 생기면 이지메는 지옥과 같았다. 집단에는 폭군이라고 할 만한 리더를 중심으로 자치 세계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소년단이 사라진 후 이 소권력자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비굴한 인간으로 변했다.

 

 

 

즉 그들에게 어리버리한 인간은 공격해도 된다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바로 그 공간에서는 말이죠.

이들이 그 공간 밖으로 나오면 오히려 비굴한 인간으로 변하는거죠.

지금 그들을 인터뷰해보세요. 아마 평범한 인간으로 변해버렸을 겁니다.

전 위에서 설명한 증상이 일간베스트 같은 커뮤니티에서도 일어난다고 봅니다.

학교는 현재진행이고요, 때로는 가정, 정당, 고아원에서도 일어납니다.

내부의 규칙이 외부의 규칙보다 훨씬 중요하고

심지어 사람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곳이 바로 저 중간집단 전체주의 사회인 건데

우리나라와 일본에는 이런 자치적 소규모 집단의 내부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다고 봅니다.

심지어 정치까지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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