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음
이맘때쯤 되서 공기가 차가워지면, 가을 타는 것도 있기는 하지만, 제대한 지 십여 년이 지나도 군대 생각이 난다.
남쪽을 바라보면 시야 끝자락 능선에 도시 불빛이 엷은 노을처럼 밤하늘에 보이고, 북쪽은 내가 들어왔던 그들의 삶처럼 암흑이다
대북 방송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얼마나 틀어 댔으면 아직도 찬바람에 코끝이 시리다고 느끼면 나도 모르게 흥얼거린다.
군 생활을 빡씨게 한 적도, 내무 생활에 구타가 심한 것도 아니었지만, 나의 무의식 안에서 국방부 시계는 여전히 돌아가는 것 같다.
오래돼서 정확한 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그날 일이 있고 난 뒤부터 내 시계는 아직도 돌아가게 된 거 같다.
출입인원 명단에 첨보는 이름이 들어왔다. 상급부대에 알아보니 이산가족이라고 하는데 이 부근에 묘소가 있다며, 그들이 용무를 마치고 갈 수 있게
가만히 지켜보라는 전달사항이 떨어졌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아침에 근무교대를 하며 인수인계를 하고, 일단은 잤었던 걸로 기억한다.
점심때면 어김없이 식사를 하라고 깨운다.
GOP는 지랄 맞게 추었고, 아침잠을 자고 나면 밥맛이 없다. 막사 앞에서 담배 무는데 어찌어찌 해서 잠깐 상황실에 다시 앉았다.
그리고 벨이 울렸다.
“통화~ 먼일이야~?”
“어? 김뱀이십니까?..”
“옹야~먼일이야~?고라니가 튀디?”
“아..그게…….”
“말꼬리 잘라 쳐드시지 말고 말씀하세요~ㅅㅂㄹㅁ야~~~”
“....”
“....아 먼일이야!?”
“저...그게...민간인들 언제 나갑니까?”
근무자의 얘기는 민간인 할아버지 한분이 철책 선을 붙잡고 있는데 제제를 하고 싶지만
너무 서럽게 울고 계서서 자기도 어떻게 하지를 못하겠다는 얘기였다.
그 광경을 밀조를 돌던 근무자도 목격했는데 그들도 어쩧게 하지 못했고 그래서 다들 가기만을 바라고 궁금해 하는 모양이었다.
게대가 애들 사이에 이 이야기가 퍼지면서 감정이입이 깊게 들어선 모양이었다.
GOP가 워낙에 특이사항도 없고, 딱히 뭐 즐길 거리도 없는 곳인지라 근무를 서다 보면 멍해질 수밖에 없는데, 애들이 이일에 너무 민감하게
빠져 든거 같았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통신으로 욕 한번 쏴준뒤 방책으로 올라가 봤다.
그리고 나도 봤다.
겨울...
GOP...늙은 할아버지의 울음
여덟 발자국정도 뒤에 두 손 공손히 모은 아들처럼 보이는 아저씨
그 뒤에 좀 멀리 고가 초소에 고개 숙인 근무자...
날은 너무 추웠고, GOP는 늘 조용하다. 할아버지 울음소리는 너무 잘 들린다.
난 처음 여기가 군대라는 걸 느꼈고, 내가 군인이고, 우리나라가 분단국가라는 걸 피부로 느꼈다. 게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흥얼거릴 만큼 대북방송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날은 모두에게 힘든 날이 되었고, 대대까지는 얘깃거리로 회자되진 않았지만 중대 안에서는 이슈가 되었다.
그렇게 빡신 내무 생활도 없고, 유격이나 혹한기 같은 훈련도 없고, 24시 근무만 서면 되는 GOP에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 떨어진 듯 알게 모르게 부대 분위기가 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