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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혐오자 안철수의 비극
게시물ID : sisa_54265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유체이탈가카
추천 : 5
조회수 : 805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4/08/05 16:31:45
http://m.media.daum.net/m/media/society/newsview/20140805152010578?RIGHT_REPLY=R44

[한겨레21][표지이야기] 서울시장·대선 후보 사퇴 → 논란 속 노원병 국회의원 당선 → 새정치 깃발 아래


민주당과 합당 → 대표 사퇴, 아무런 임팩트 없이 정치권에서 보낸 2년

"새정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도, 실천할 기회도 얻지 못했다."

2012년 안철수 대선 후보 시절부터 '정치인 안철수'와 함께해온 한 인사는 이렇게 평가했다. 측근이 내린 평가치고는 꽤 야박하다. 물론 그간 '안철수' 앞에 놓인 정치 상황이 결코 녹록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상황이 간단했다면 애초부터 국민이 그를 호출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이 실패에 대한 변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안철수 본인도 알고 있다. 7월31일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7·30 재·보궐 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2012년 9월 대선 출마를 선언한 뒤부터 약 2년이라는 짧고도 긴 시간 동안 대선 후보로, 무소속 의원으로, 야당 대표로 굵직한 경험을 한 '안철수'는 이렇게 무너지는 걸까.

열망이 시작된 곳도 '야권의 실망'

'안철수 현상'이 본격적으로 대한민국을 덮친 것은 2011년께다. 2011년 6월부터 전국을 돌며 청춘콘서트를 진행하던 '최고경영자(CEO) 안철수'에게 젊은이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집권 4년차에 접어든 이명박 정부에 대한 피로감과 이를 극복할 대안 세력이 돼주지 못한 기존 야권에 대한 실망을 지렛대 삼아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그해 9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후보직을 양보한 것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지속적으로 대선 출마 요구를 받던 그는 2012년 9월19일 전격적으로 대선 후보 출마를 선언했다.

약 1년 만에 벌어진 이 갑작스러운 돌풍은 정치권을 혼란스럽게 했다. '안철수 현상'과 '개인 안철수'에 대한 분석 기사와 서적이 쏟아졌다.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인물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갑론을박도 벌어졌지만, 기존 정치권에 실망한 국민의 지지는 계속됐다. 그러나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야권 단일화 협상을 벌이던 그는 투표일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 협상을 포기하고 대선 후보직을 사퇴했다. 정치인으로서 내린 첫 번째 결단이었다. 그의 사퇴 기자회견은 갑작스러웠고 강렬했다. 많은 국민이 "제가 후보직을 내려놓겠다"며 울먹이는 그의 발표를 또 한 번의 '양보'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대중의 찬사는 여기에서부터 주춤했다. 안철수 후보는 사퇴 선언 이후 2주 동안 문재인 당시 후보를 돕지 않았다. 2주 뒤 본격적인 지원 유세에 나서면서도 소극적인 태도로 임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당시 문재인 캠프의 한 당직자는 "안철수 후보는 유세 지원 현장에 노란 옷이 보이는 것조차 싫어했다"고 했다. 민주통합당과 자신이 '하나의 이미지'로 묶이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대선 투표일인 2012년 12월19일, 선거 결과가 나오기 전 그는 미국으로 떠났다. 일부에서 '나는 더 이상 대선 결과에 책임지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겠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10월 재보선, 결국 세력화 실패

2013년 4월 재보선을 한 달 앞두고 귀국한 그는 서울 노원병 선거구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야권에서는 그의 고향인 부산에 출마해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지만, 그는 "지역주의를 벗어나 민심의 바로미터인 수도권에서 새로운 정치 씨앗을 뿌리고자 결심했다"고 했다. 노원병이 'X파일' 사건으로 부당하게 의원직을 잃은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의 지역구라는 점도 논란이 됐다. 그럼에도 그는 출마를 강행했고 결국 당선됐다.

당선 이후 안철수 의원의 정치 실험은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그해 5월 자신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 이사장으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를 영입했지만, 최 교수는 80일 만에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안철수 의원과의 갈등설이 불거졌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공방,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 사태 등 정치적 사안이 터질 때도 안 의원은 이렇다 할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2013년 10월 재보선에 독자적인 후보를 내겠다고 했지만 결국 세력화에 실패하고 선거에 참여하지 못했다.

재보선이 끝난 뒤인 그해 11월 안 의원은 새정치추진위원회를 출범하면서 신당 창당 수순에 돌입했다. 올해 2월17일에는 300여 명의 발기인들과 새정치연합 창당 발기인대회를 열었다. 본격적인 제3세력화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안 의원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3월2일 갑작스럽게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함께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그야말로 폭탄 선언이었다. 윤여준 새정치연합 공동위원장조차 발표 직전까지 몰랐던 안철수 의원의 단독 결정이었다. 자신이 그토록 거리를 두려 애써온 '기존 정치권'과의 결합은 그가 내세운 '새정치'를 열망하던 지지자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안철수 쪽의 한 인사는 "기성 정치에 투항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평가했다.

이후 '정치인 안철수'의 내리막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새정치연합의 공동대표가 됐으나 그나마 합당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도 지켜내지 못했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는 찬반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반대 의견이 더 많다는 이유로 없던 일이 됐다. 6·4 지방선거에서는 안 의원 쪽 사람으로 분류되던 윤장현 광주시장을 무리하게 '꽂아넣었다'는 비판에 직면했고, 7·30 재보선 역시 매끄럽지 못한 전략공천 과정을 겪으며 참패의 결과를 낳았다.

"아무도 모르게 중요한 결정"

'정치인 안철수'가 지난 2년간의 정치 실험에서 실패를 거듭해온 이유는 뭘까. 대부분의 정치 전문가들은 안 의원에 대해 꽤 혹독한 평가를 내놨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안철수 의원은 장외에 있을 때부터 한 번도 핵심을 찌르지 못했다. 원내에 들어와서도 지방선거 무공천 논란을 제외하고 당에서 새정치의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구정치에서도 보이지 않던 비합리적인 공천을 했다. 그 공천을 본인이 직접 했든 안 했든 대표로서 책임이 있다. 더 이상 당 지도부에 참여하지 않게 된 지금, 더 이상 개인으로서 특별하게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분석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도 "자신을 희생하기도 하면서 유권자들을 감동시켜야 하는데 안철수 의원은 기업식으로 정치를 하려고 했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좇는 경향이 국민의 마음을 돌아서게 했다. 안철수 현상에 대한 기대감은 지속되고 있지만 안철수 현상의 대표로서 안철수라는 인물은 이제 끝났다"고 말했다.

"안철수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의 차원이 있다. 하나는 안철수 같은 사람에게 유권자들이 기대를 갖는 현상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안철수 개인과 주위 사람들이다. 후자는 끝난 것 같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안철수 의원의 리더십에 대한 비판은 안철수 쪽 인사들 사이에서도 나온다. 한 측근은 "(안철수 의원은) 옆에서 함께 의사결정을 해나가야 하는 사람도 모르게 중요한 결정을 해왔다. 대선 후보를 사퇴할 때나 합당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초선거 무공천 여부를 여론조사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을 때는 이 방침이 무공천 방침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여론조사를 이용하려는 건지, 아니면 무공천을 밀어붙이려는 건지 당 안의 지지 그룹도 그 의도를 몰랐다. 소통이 안 되니 그것이 예측 불가능성으로 이어져 지지 세력 사이에서도 규합이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안철수 쪽의 인사는 "정치 지도자가 되려면 뿌리 깊은 벤처기업 CEO 마인드를 버려야 한다. 그건 반정치적이다. 정치를 혐오한다. 그 반사이익만으로는 새정치를 구현할 수 없다. 그런데 안 의원은 여전히 교수, 변호사, 의사 출신들에게만 의존했다. 그 한계의 틀을 빨리 빠져나왔어야 하는데 자기 경험에만 의존해온 것이다. 130명에 달하는 현역 의원과 부단하게 머리를 맞대고 스킨십을 하고 토론을 하고 한 방향으로 끌고 갔어야 하는데 이런 기억이 별로 없다. 이것도 뼈아픈 대목이다"라고 말했다.

지지 세력마저 실패를 인정한 상황에서 '정치인 안철수'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걸까. 이 물음에 대해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이렇게 정리했다. "안철수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의 차원이 있다. 하나는 안철수 같은 사람에게 유권자들이 기대를 갖는 현상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안철수 개인과 주위 사람들이다. 후자는 끝난 것 같다. 안철수 의원이나 주변 사람들이 보여줄 수 있는 정치력은 한국 정치 발전에 더 이상 기여하지 못한다는 판단이 난 것 같다. 전자의 경우 '지금의 정치로는 안 된다'는 시민들의 불만이 더 커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나라 정치인들 중에는 이 불만을 해소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안철수 의원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 야당 정치인이 누가 있는지 생각해볼 문제다."

안철수 개인에 대한 기대를 아직 저버릴 때는 아니라는 의견도 여전히 있다. 안철수 의원의 지지율은 많이 떨어졌지만 아직까지 10%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직 그를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다. 윤희웅 민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은 "안철수 의원은 완전히 소멸된 카드는 아니다. 내상을 입은 상황이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박근혜 대통령도 대략 5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면서 현실 정치인으로 변화하고, 거품도 빠지고, 맷집도 기르며 새롭게 진영 내부에서 지지 기반을 확보해왔다. 안 의원에게도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MB도 박근혜도 5년 이상 시간 소요

정치권 밖에서 꾸준히 안철수 의원을 도와온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민주당과 합당하려고 했을 때 예상한 어려움은 아직 시작도 안 됐다. 앞으로 이러한 고비를 5번은 더 넘어야 할 것 같다. 다시 한번 제로 베이스에서 추슬러야 한다. 앞으로 본인이 뜻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또 와도 이런 과정을 겪지 않고는 그 뜻을 잘 펼치지 못할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을 겪으면서 무너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감당하고 가야 한다. 그렇게 단련해야 한다."


송채경화 기자[email protected]·장슬기 인턴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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