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한지 이제 2년 정도가 되어가네요.
2년이 다 되어가지만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하고, 작성하는 와중에도 그때의 생각을 회상하려니 웬지 찝찝하지만 한번 몇자 적어보렵니다.
저는 동해안 삼척에 위치한 2X사단 5X연대 출신으로써, 제가 속해있던 부대의 주된 임무는 해안 경계근무였습니다.
낮에는 소초에서 생활하고 밤이되면 초소로 근무투입을 하는 생활을 9개월가량 했었네요...
밤에는 완전 무장을 갖추고, 해안 끝자락 절벽 내지 산 속에 위치한 초소에 투입되어 다음날 아침까지 밤을 세서, 바다를 바라보며 경계근무를 하는 것이 저희의 임무였습니다.
소위 말하자면 해안 GOP라고 하면 이해가 빠르실 듯 할 것 같네요.
여기서 소초와 초소를 헷갈려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짧게 첨언하자면, 소초는 소대 병사들이 먹고 자고 생활하는 일종의 '기지'이고, 초소는 선임병과 후임병이 짝을 이루어서 경계근무를 하는 장소를 초소라고 합니다.
아무튼,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제가 속해있던 소초는 근처 지형이 매우 험하고 암석 또는 절벽지대가 많아 밤에 경계근무를 하러 초소에 투입시 발이라도 헛딛이면 큰 사고를 당할 수 있는 위험 지대였습니다.
당시 저는 병장이었고, 전역까지 한달 정도 남아있던 터라 소대에 갓 들어온 신병들과 함께 근무에 투입해서 초소에 대한 이것저것을 알려주는 일종의 교육자 역할을 했었습니다.
그때 소대에 전입 온지 딱 2주차가 되는 이등병 하나가 있었는데, 소대장이 당연하다는 듯이 저와 짝을 이루어서 근무 편성에 올리시더군요.
저는 그놈이 이제 갓 들어온 신입이고 해서 뭔가 걱정이되 (이상하게 그날따라 뭔가가 불안하더군요) 근무 투입 전 이런저런 알려주어야 할 상황들을 알려주고 미리 교육을 시켰습니다. 초소에 투입해서 무얼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그리고 그날 밤, 각 초소에 투입하는 근무자들과 함께 야간감시장비 및 총기 점검을 마치고, 각자 배정된 초소에 무장을 갖추고 투입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일이 터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앞장을 서고 1~2m간격을 두어, 바로 뒤에 후임병이 따라오는 식으로 출발을 했지요. 당시 밤에 후레시를 켜고 저와 후임병 단 둘이서 산속을 헤치며 절벽 끝자락에 위치한 초소까지 가는데에는 걸어서 15분 정도가 걸리는 위치였습니다.
" 야 여기가 워낙 주변 지형이 험하니까, 후레시로 땅 잘 비추면서 조심히 따라와 알았지? "
" 예! 알겠습니다! "
후임의 마지막말이 끝난 이후 계속 초소에 도착 할 때까지 저와 그 후임병은 서로 아무 말 없이 계속 걷기만 했던 것 같네요.
다행이 후레시도 잘 비추면서 따라오는 것 같아 저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앞만 보면서 가던 찰나에 혹시나 해서,
"야 후레시로 앞만 비추면서 오지 말고, 주변 경계도 신경 쓰면서 오도록 해. 알았지?"
"........"
글쌔 이 후임병이 아무 말이 없는 겁니다. 그게 당연한 것이 지금 지나가고 있는 곳이 바로 옆에 절벽이었고, 파도가 심하게 치고 있던 와중이었기에 사람의 목소리가 서로 전달이 잘 될 수가 없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후임이 아무 말이 없어 살짝 뒤를 돌아 잘 따라오는 후임의 모습을 보고, 다시금 후임병과 같이 초소에 거의 도착할 무렵이었습니다.
" 아따 힘들구만, 하하 오느라 수고 했다. 여기가 바로 1초소다 "
"........"
글쌔 또 이 후임병이 아무 말이 없는 겁니다. 저는 아까부터 아무 대꾸가 없는 후임에게 갑자기 화가 나서,
" 아 시x 선임 말 안들리냐??? "
하고 뒤를 돌아 후레시를 비추는데 아무도 없더군요. 순간 소름이 돋았고, 도대체 잘 따라오던 후임이 어디로 새나간 것일까...?
저는 당시 놀라고 말 것도 할 것 없이 수없이 "x됐구나"만 외치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 후임을 찾기에 급급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해안소초의 경우, 민가랑 밀접해있어 정해진 근무경로를 벗어나면 바로 탈영으로 간주해버리기 때문에 자칫했다간 그 후임은 무장탈영으로, 저는 근무태만으로 징계를 받을 위험이 매우 큰 상황이었던 겁니다. 빨리 사라진 이 후임병을 찾지 않는다면 말년에 큰일 날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당시 저는 소초에 현 상황을 보고조차 하지 않고, 그 추운 날에 현기증이 날 정도로 왔던 길을 뛰어서 그 후임병을 찾기 위해 주변을 살폈지요.
그런데 한 1분정도 지났을까? 근무투입로에서 얼마 벗어나지 않은 곳에서, 저 멀리 새하얀 빛의 후레시 하나가 근무투입로가 아닌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보이더군요.
자세히 보니, 후레시에 비춰진 그림자가 방탄헬멧에 총기가 비춰지길레 그 후임병이라는 생각이 들어, 있는 힘껏 그쪽을 향해 목숨을 걸고 뛰어갔습니다. 당시 시간이 00시 20분이었던 걸로 기억하네요.. 한밤에 이게 무슨 쌩쇼냐 시발 이러면서 뛰어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후임병이 가고 있는 곳까지 거의 도착할 무렵, 그 후임의 뒷모습을 보니 무언가가 이상하더군요.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모르는 길을 아주 열심히, 마치 알고 있는 곳인 마냥 터벅터벅 자연스럽게 가고 있던 것 입니다. 아무튼, 저는 그 후임과 10m정도의 떨어진 거리에서,
" 야!!!!!!! 김XX 야이 x새끼야!!!!!!! 어디가는거야!!!!!!!! "
제가 이렇게 소리를 지르고 나니 그때서야 후레시로 뒤를 보더군요. 저는 당연히 있는 힘껏 달려가 다짜고짜 그 후임병 뺨부터 때리고 발로 걷어찼지요. 그리고
" 야이 시x놈아 너 여기가 어디인줄알고 니 멋대로 근무지 이탈하는 건데 x새끼야 돌았냐?? "
" 에......? "
" 에?는 시x 어따 대고, 개새끼가 야 돌았냐 너 죽고 싶어?? 너 여기가 어디인줄알고 니 멋데로 가는 건데?? "
제가 발로 걷어차 한동안 바닥에 엉덩방아 찧은 채로 앉아 있던 후임이 멍하게 후레시로 절 비추더니 갑자기 자기가 가던 방향으로 후레시를 번갈아 비추더군요. 저는 그때 너무 화가 나서 이등병이고 뭐고 없다. 라고 생각해 멱살을 잡아 때리려는 찰나에
글 쌔, 이놈이 이상한 말을 하는 겁니다..
" XXX 병장님? "
" 뭔데 시x놈아 앙??? "
" 왜.. 왜... 왜.... 뒤, 뒤에서 오시는 겁니까? "
" 뭐라고? "
" 저, 저, 저 지금까지.... XXX병장님 발만 보면서 가고 있었습니다.... 근데, 어어어어어, 어째서 뒤, 뒤에서 나타나신 겁니까?????
저는 한참 이 후임이 하는 말에 소름이 돋아 움직일 수가 없더군요. 그리고 갑자기 이게 웬걸... 그녀석도 겁에 질렸는지 20살 먹은 놈이 전투복에 오줌을 지리더군요. 그제 서야 저와 후임병은 소초 상황실에 상황 보고를 하고, 근무자를 교체까지 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당연히 그 후임병은 완전히 겁에 질려 투입자체가 불가능했고, 저희 분대 부분대장이 대신 근무에 투입해 저와 다시 근무지로 갔었네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 근무를 마치고 소초에 돌아온 저는 상황실로 불려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근데 여기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
전날 밤, 저와 서로 짝이 되어 소초 정문을 나섰을 때부터 그 후임병은 1초소 가는 길이 아닌 엉뚱한 방향으로 제 뒤만 바라보며 갔다고 하는 겁니다. 당연히 그 후임병은 온지 얼마 되질 않아 근무투입로 자체가 처음 가는 길이었고, 그저 앞에 가는 사람이 저 인줄 알고 따라갔던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미스테리가 나오게 되는데....
그날 제 뒤에 후레시를 비추면서 따라오던 후임병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00시가 넘었던 그 시각, 저와 후임병은 각각 누구와 함께 산속을 걸었던 것일까요...?
" 야 여기가 워낙 주변 지형이 험하니까, 후레시로 땅 잘 비추면서 조심히 따라와 알았지? "
" 예! 알겠습니다! "
생각하기도 싫군요...... 2년전 그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