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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게시물ID : soju_2285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고르고싶삼
추천 : 3
조회수 : 371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3/05/27 13:20:51
새침하게 흐린 품이 각자 갈 듯 하더니 결국 버스를 타지 않고 셋이 모여 택시를 타고 가게되었다.
이날이야말로 구로동 안에서 난봉꾼 노릇을 하는 최과장에게는 오래간만에도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그녀가 게찌개 노래를 부른지 벌써 달포가 넘었다.
집구석에서 밥도 잘 안해먹는 형편이니 물론 찌개 따윈 끓여본 적이 없다.
... 구태여 끓이려면 못 할 바도 아니로되 그녀는 가정식이란 놈은 끓여봤자 다 못먹고 버리게 되므로 돈낭비라는 자기의 신조에 어디까지 충실하였다.

따라서 매일같이 매식을 하여 게찌개라는 걸 먹은지 10년은 넘은걸 보니 중증은 중증인 듯.
최과장의 게걸거림이 이대도록 심해지기는 열흘 전에 여우굴에 모여 게찌개 잔치를 하자는 작당 때문이다.

(중략)

메신저에서 동행을 물색하는 최과장의 눈엔 고준희 머리에 뒤축 높은 구두를 신고 ‘망토’까지 두른 기생 퇴물인 듯, 난봉 직장인인 듯한 A의 모양이 띄었다. 그는 슬근슬근 그 여자의 곁으로 다가들었다.
“아씨, 버스를 함께 아니 타시랍시오?”
그 직장인인지 뭔지가 한참은 매우 태깔을 빼며 입술을 꼭다문 채 최과장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최과장은 구걸하는 거지나 무엇같이 연해연방 그의 기색을 살피며,
“실장님, 얌전히 따라가겠습니다. 어쩌실랍니까” 하고 추근추근하게도 A의 메신저에 수작을 부렸다.
“왜 이래, 남 귀치 않게.”
소리를 벽력같이 지르고는 돌아선다. 최과장은 어랍시요, 하고 물러섰다.

(중략)

여우굴은 훈훈하고 뜨뜻하였다.
게찌개 끓이는 솥뚜껑을 열 적마다 뭉게뭉게 떠오르는 흰 김, 김치냉장고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도라지며, 고사리며, 멸치며, 오이…
이 너저분하게 늘어놓인 안주 탁자에 최과장은 갑자기 속이 쓰려서 견딜 수 없었다. 마음대로 할 양이면 거기 있는 모든 먹음 먹이를 모조리 깡그리 집어삼켜도 시원치 않았다. 하되 배고픈 이는 위선 분량 많은 꽃게 두 대접을 쪼이기로 하고 게찌개를 한 그릇 청하였다.
주린 창자는 음식맛을 보더니 더욱더욱 비어지며 자꾸자꾸 들이라들이라 하였다.
순식간에 꽃게와 애호박 든 찌개 한 그릇을 그냥 물같이 들이켜고 말았다.
둘째 그릇을 받아들었을제 차게 식히던 소주 곱빼기 두 잔이 더웠다. 
A와 같이 마시자 원원히 비었던 속이라 찌르르 하고 창자에 퍼지며 얼굴이 화끈하였다. 눌러 곱배기 한 잔을 또 마셨다.
최과장의 눈은 벌써 개개 풀리기 시작하였다. 밥상에 얹힌 오이 두 개를 숭덩숭덩 썰어서 볼을 불룩거리며 또 곱빼기 두 잔을 부어라 하였다.
여우는 의아한 듯이 최과장을 보며,
“여보게, 또 붓다니, 벌써 우리가 넉 잔씩 먹었네, 패트가 두 병일세.”
라고 주의시켰다.
“아따 이놈아, 패트 두 병이 그리 끔찍하냐. 오늘 내가 집밥을 먹고 있어, 집밥을! 참 오늘 운수가 좋았느니.”

(중략)

곱배기 두 잔은 또 부어질 겨를도 없이 말려가고 말았다.
최과장은 입술과 술잔에 붙은 술을 빨아들이고 나서 매우 만족한 듯이,
“또 부어, 또 부어.”
라고 외쳤다. 
(후략)

 

 

 

 

 

지난 금욜에 진수성찬을 누린 후 다시 불가촉천민으로 복귀.

점심은 삶은 감자와 참외를 아삭아삭 먹은 후 저녁에 닭도리와 소주를 한 잔 해야지. 

 


 

 독거여성들의 저녁술상.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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