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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8. 08. 금요일
물뚝심송
비대위 체제로 들어선 새정치민주연합 국민공감혁신위원회(사실상 비대위)의 박영선 대표는 돌연 새누리당의 이완구 원내대표와 함께 세월호 특별법에 관한 합의를 해치워 버렸다. 그냥 합의를 한 수준이 아니라 진짜로 해치운 수준이다.
어찌보면 재보선의 참패로부터 자연스럽게 예상 가능했던 수순일지도 모른다. 대세는 기울었고, 되는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예측, 세월호는 '피로감'이라는 되도 않는 핑계로 언론에서 사라질 것이며 정치권은 간장이 녹아 내리는 고통을 겪고 있는 유가족들을 외면하게 될 것이라는 잔인하면서도 자기비하적인 예상은 이미 나와 있었다.
그 슬픈 예감이 세월호 관련법 여야 합의라는 비참한 현실로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차마 인정하기 어려웠을 뿐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박영선 대표는 지금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인가?
국회가 존재하는 이유
국회의 존재 이유는 입법이다. 국회는 국민을 대표하는 1인 헌법 기관인 국회의원들이 모여 국민이 필요로 하는 사회적 규칙, 즉 법들을 만들고 고치는 일을 하는 기관이다. 그게 존재이유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350만이 넘는 국민들이 서명한 세월호 특별법안, 유가족들과 국민대책회의, 대한변협이 함께 만들어낸 그 법안을 철저히 외면한 것은 국회의 본질적 임무를 도외시한 업무태만이다.
법리적인 의미, 현실적인 어려움, 그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그렇게 많은 국민들이 한 번 들여다 보기라도 해 달라고 애처롭게 요구를 하고 있는 바로 그 법안을 여야간 특별법 협상을 하는 테이블에 올리지도 않았다는 것은 절대 합리화 될 수가 없다.
이 현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 나라의 국회는 국민들이 원하는 법안을 만드는 일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일부라고? 소수라고? 오천만 인구에 유권자의 수는 사천만이다. 사천만 유권자 중에 350만이면 10%에 육박하는 유권자들의 의견이 담긴 것이다. 그런 무게감 있는 주장과 의견, 흔하게 나오지도 않는 그런 의사표현은 가장 먼저 받아들여야 할 국회로부터 완벽하게 묵살당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세월호 사건에 대한 조사를 기존의 권력 계통에서 완전히 분리된 조직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지고 한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결과를 가져오길래 저들은 공청회 한 번 거치지도 않고 그냥 묵살해버렸을까?
피해 보상이나 각종 특혜만을 언급하며 마치 유가족들이 '자식 팔아 팔자 고치려'는 무뢰배 집단인 것처럼 몰아가면서도 수사권, 기소권을 별도로 보장해 줄 수는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도 설명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국회는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날려 버렸다.
야당이 존재하는 이유
어떤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국가 권력과 정부 여당이 350만의 서명이 담긴 세월호 특별법을 묵살하려고 한다면, 이 문제를 손에 들고 맨 앞 줄에 서서 싸우고 알리고 관철해 내야 할 임무는 야당에게 주어지게 된다.
의석수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다는 핑계는 대지 말자. 법안을 맘대로 만들 수 있는 과반의 의석을 가진 정당은 이미 야당이 아니라 여당이다. 야당은 본질적으로 의석이 모자라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야당이 잘못된 국가 권력과 정부 여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싸우고 알리는 것이다. 여당의 독주를 모든 법적 절차를 동원해 지연시키고, 지금 국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국민들에게 알려 여론을 일으켜 여당을 압박해야 하는 것이다. 이게 야당이 해야 할 일이다.
만에 하나, 유가족들의 요구가 잘못된 것이며 비현실적인 것이라면 그 때에는 야당이 먼저 나서서 유가족들을 진심으로 설득해야 한다. 물론 지금은 그런 상황도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야당의원들은 유가족들의 요구에 동의하고 있었고, 그 내용을 여당에게 또 정부에게 나아가 국가 권력을 대상으로 설득하고 관철시키겠다고 철석 같이 약속을 했던 상황이었다. 그 모든 위로와 약속의 말들은 선거용 사탕발림이었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것인가?
오로지 야당만을 믿고 자신들의 진심을 보여주기 위해 이 무더위 속에서 길가에 앉아 단식 투쟁을 하다가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는 피해자 부모들을 이런 식으로 배신해서는 안 된다. 그 유가족들에게 공감하고 어떻게 해서든 그 분들을 위로하고자 하는 수백만의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이런 식으로 묵살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되기 힘들다.
현재의 야당은 이렇게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없애 버린 것이며, 그런 행동의 제 일선에는 박영선 대표가 서 있다. 박영선 의원은 앞으로 정치할 생각이 없으신가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이런 행동을 하신단 말인가.
우리 모두는 인간이다
정치고 사회고 가치고 모든 것을 떠나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당신들 중 상당수는 자식 키우는 부모들일 것이다.
열 달 동안 내 배 아파서 낳아 놓은 아이가 이제 겨우 걸음마를 떼더니 교복입고 학교 다니는 모습을 보며 저것이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부모 품을 떠나 어엿한 어른이 되겠구나 하던 것이 어제 같은데, 그런 생때 같은 자식들을 바다에 집어 넣고 아무 손도 못 쓰게 하고 수장시키는 모습을 눈앞에 보게 만든 바로 그 악마 같은 놈이 누구인지 알려나 달라는 그 피 맺힌 목소리를 이런 식으로 배신하면 안 되는 것이다.
겨우 누군지도 모를 다 썩어가는 해골 하나 던져두고 그게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고 범인이라고 들이미는 이 국가 권력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돌아서라는 건지, 나부터도 눈앞이 막막해진다. 이른 아침에 교복을 차려입고 몰려가는 여고생들의 뒷모습만 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야만 하는 세상이다.
우리 모두는 피가 돌고 가슴이 뜨거운 인간일진대, 어쩌자고 인간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조차 없는 세상을 만들어 우리의 자식들에게 물려주려고 하고 있다는 말인가?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막아 내기는커녕, 도대체 이런 사건이 벌어지는 이유가 뭔지 도대체 어떤 놈이 잘못해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인지 확인하는 것조차 절대 안 된다며 막고 있는 그 위대하고 엄청난 가치는 무엇이냐는 말이다.
그게 돈이건 권력이건 관심도 없다. 당신들에게는 그게 그렇게 중요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저 나와 내 가족이 안전하고 소박하게 이 땅 위에서 숨쉬고 살아갈 수 있는 자유조차 허락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 악마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계약 파기를 요구한다
내가 이 사회에 태어난 것은 나의 선택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다른 사회로 떠나지 않고 이 사회에 머물러 살아가기로 결정하는 것은 나의 의지에 따른 일이며 이 사회와 나와의 계약이다.
그 계약에 의해 나는 이 국가에 세금을 내고 이 국가를 위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스스로 교육받고 이 사회를 위해 일을 하고 있으며 이 사회가 나에게 강요하는 법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대신 이 사회는 나의 국적을 인정해주고, 나의 참정권을 보장해 주어야 하며, 나와 내 가족이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도록 안전을 보장을 해 줘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서로 동의했던 계약조건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 계약 조건하에 존재하고 작동해야 할 조직들이 존재의 이유를 상실해 가고 있다. 야당이 존재할 가치를 잃어 버렸으며, 국회가 스스로의 의무를 저버리면서 존재할 이유를 거부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식이라면 계약이 더 이상 유지될 이유가 없다.
복잡한 이유와 그물처럼 얽혀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들이밀어도 좋다. 다 좋으니까 지금 당장 이 사회가 정상적으로 가동될 수 있다는 확신을 보여줄 것을 요구한다.
야당은 야당의 역할을 하고, 국회는 국회의 역할을 하며, 정부는 정부의 역할을 하고 국가 최고 권력은 7시간 동안이나 실종되는 따위의 허무 맹랑한 짓거리를 당장 중단하고 본연의 임무로 돌아올 것을 요구한다. 이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스스로의 존재이유를 가지고 있음을 입증하고 각자 조직에게 주어진 의무를 이행할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계약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요구사항일 뿐이다. 이게 지켜지지 않는다면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계약을 파기할 것을 요구하고 싶다는 말이다.
니들이 계약 조건을 안 지키는데 왜 나보고는 지키라고 하냔 말이다.
물뚝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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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