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친구MJ는 전경 출신입니다. 부대 내에서도 진압을 잘 하기로 이름난 유망주였고요. 휴가 나올때마다 제 부모님뿐 아니라 친구 부모님들께도 싹싹한 모범청년이었습니다. 멋진 친구였지만 저와 함께 술자리를 가지면 항상 언성이 높아졌어요. 저는 운동권에서 시위하는 대학생이었고, 친구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시위하는 사람들을 진압하는 전경이었기 때문일까요? 저와 MJ는 서로 피해자라고 우기느라 확실히 시시비비를 가리지 못 했었죠.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얘기를 하다보면 주위 친구들은 항상 의아해했습니다.
제 이야기는 주로 이러했습니다. 1.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집회를 위해 1에서 시작해서 9까지 진행하는 집회를 신고했다. 2. 하지만 정부에서는 이를 거절한다. 3. 불법집회가 된다. 4. 1에서 6까지 진행하는 동안은 아무런 제지가 없었지만 7로 진행하는 길목을 막아서거나 포위한다. 5. 강제해산을 명령하고, 따르지 않으면 강제진압한다.
MJ의 이야기는 이러합니다. 1. 정부에서 거절하면 불법집회라는 것을 알면서도 집회법을 위반하며 실행한다. 2. 그냥 오면 될텐데 죽창이나 쇠파이프를 준비해서 선공한다. 3. 이 과정에서 동료가 다치면 흥분해서 과잉진압하게 된다. 4. 하지만 언론에서는 무조건 전의경들의 잘못으로 비춘다. 5. 실상은 불법집회를 시작한 측의 잘못이다.
듣다못해 중재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이러합니다. 1. 정부에서는 집회를 인정하지 않고 불법집회로 만든다. 2. 죽창이나 쇠파이프를 가져가서 바리케이트나 철조망을 때리고 부수는 것은 그저 '보여주기'다. 3. 이 보여주기 과정에서 훼손되는 것은 정부 기물이기에 파손되면 전의경이 질책당하기에 지킨다. 4. 일부 시위자가 먼저 공격하거나, 일부 전의경들이 과잉 진압하는 등등 일부 소수의 잘못이다. 5. 전의경들은 위에서 시키는대로 할 뿐인데 개개인에게 시시비비를 가리려해서는 안 된다.
저는 여기서 의문을 가졌습니다. 전의경들은 위에서 시키는대로 하는 사람이니 개개인의 잘못은 덮어둬야 하는 걸까요? 나치 부대에서 유태인을 학살한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다큐멘터리를 많이 봤습니다. 실제로 이들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니 무죄일까요? 위에서 시키는대로 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안쓰럽기는 하지만 엄연한 개개인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5월 광주에서 광주민들을 상대로 발포한 군인들도 위에서 시키는대로 빨갱이들을 진압했을 뿐이죠. 하지만 개개인에게도 분명히 잘못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군대에서 가족을 총으로 쏴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그렇게 할 자신이 있습니까?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시켜도 할 수 밖에 없는 군대라지만 자신의 도덕적 잣대에 비춰 행동해야죠. 불합리한 명령이라면 자신의 소신껏 거부할 수도 있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요즘 군대는 예전처럼 묻지마 명령은 안 내리고, 충분한 근거를 대기 전까지 불응하는데 제재하지 않습니다. 제가 제대하기까지 수도없이 갈굼당했지만 하극상으로 영창간 적이 없다는 점을 봐서 군대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 군대에서는 상명하복의 구조가 아니면 조직이 붕괴된다느니 하는 핑계는 대지 말고 생각해보죠. 무기도 없이 촛불만 들고 있는 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전의경들은 위에서 시키는대로 할 수 밖에 없는 피해자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을 조종하는 '윗대가리'를 욕하는 '국민'의 외침이 자신을 향하자, 분노해서 '윗대가리'의 적을 물어뜯는 충견이 됐을 뿐이죠. 충견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강제진압하고 매스컴에 찍히기 보다는 스스로에게 떳떳한 행동을 하고 윗대가리에게 찍히지 않겠습니까?
전의경도 자신의 소신대로 행동할 수만은 없는 소시민이기에 불의도 견딜 수 밖에 없는 점은 이해합니다. 소신대로 행동하고자 하는지라 바빠서 무단횡단하는 어르신들께 충고했다가 욕먹고, 쓸데없는 운동질 하지 말고 공부해서 취업하라는 선배들에게 항의하다가 왕따당하는 제가 주변머리 없는 거죠. 하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몸을 내던지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부끄러워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한 사회 부적격자의 하소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