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고 어렸던 아버지 내가 코흘리개 촌동네 꼬맹이였을때 우리 착한 어머니 가슴에 대못을 박았더랬지 사업은 망하고 빚더미에 올라 하루에도 열두번도 빚쟁이들에게 빨간 딱지 붙여버린다는 협박이 끊이지 않았지 도망쳐버리듯 내려온 외할머니댁은 뜨겁고 질척질척하고 답답한 여름. 빚은 여전히 꼬리표처럼 줄줄 따라다니고 매일매일 전화에 대고 엄마 아부지 없어요 거짓말을 했다. 어리고 철없는 아빠는 할머니 앞에서 칼부림이든 뭐든 서슴지 않았고 어린 우리의 눈에도 선녀같이 착한 우리 엄마 눈에 눈물 마를 날이 없었지 그래도 할머니는 "잘될끼다.. 느네 아부지가 정신만 똑바로 챙기모 된다" 포기하지 말라고 그 여섯 자매를 키워낸 손으로 내 어깨를 두드려 주셨다. 아버지는 일따윈 자식따윈 나몰라라 매일 누워서 속옷차림으로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티비 보는게 일이었고 빚 독촉은 하루가 다르게 쌓이고 학교에서는 왜 급식비를 안들고 오냐고 담임이 어리고 아무것도 몰랐던 나를 다그쳤었지.
드라이기를 물고 있는 것처럼 답답한 호흡속에 살았지 눈물 마를 날 없이 싸워대는 부모님을 보면서 새벽에 숨죽이며 어깨 떨며 눈물 흘리던 나를 조용히 다독이던 할머니 "잘 될끼다. 잘 될끼니까.. 쪼매만 참아라." 주름살 깊게 팬 이마, 항상 고뇌에 찬 두 눈은 그날따라 총총 눈물이 고여 있었지 잠자리로 이끄는 손길에 말없이 목까지 덮어주신 이불. 별도 달도 안보이고 캄캄했던 밤이 하얗게 새벽 동이 터오고 부지런한 닭이 아침인사를 할때까지도 할머니는 굽은 등이 아플거면서 그렇게 앉아 계셨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