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는 듯한 여름이었습니다.
기말 고사 기간에...일찍 찾아온 더위로 죽을 맛이었어요.
밤이 되도 전혀 식지 않는 기온 덕분에 공부에 집중이 안 돼서 머리 끝까지 짜증이 나 있었습니다.
룸메이트들은 (3명) 다들 도서관에 있겠다고 했고,
저는 찬물로 씻고 하려고 집에 일찍 들어왔습니다.
집에 오면 씻고 옷 이라도 벗을 수 있으니까 좀 낫겠다 싶었거든요.
잠 들면 망하지만...
그렇게 집에 와서 시험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더워서 창문도 열어 두었습니다.
잠을 깨려고 친구들과 돈을 모아 사둔 커피를 마시면서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커피로 잠을 깨우려 했지만 누적 된 시험 피로로 졸음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도서관에 있을 걸...'
자정이 좀 지날 무렵...친구들이 아직 돌아오질 않고 있었습니다.
'졸린다...왜 이렇게 안 와..'
"영기야~ 영기 안에 있니?"
골목 창가에서 같은 방 친구를 부르는 소리가 나더라구요. (별로 안 친한 친구...)
'이 늦은 시간에 누구지?? 영기 좋아하는 여자인가??'
(전화 말고는 아무 통신 수단이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
" 영기야... ... 엄마야..."
'아...? 영기 어머니?'
엄마라는 소리에 얼른 창을 내다 봤습니다.
저희 자취방은 골목으로 사람들 얼굴 높이에 창이 하나 있었거든요.
창가에는 한 아주머니가 보였습니다.
다행히... ...사진으로 얼굴 본 기억도 나더라구요..
"영기 어머니세요?? 안녕하세요. 영기 친구입니다."
"우리 영기는?'
"지금 도서관에 있어요..."
"... ... ......"
"이제 올 시간 다 됐어요... ..."
"책 좀 받아줘..?"
"예??"
"전공책..."
"무거울텐데...어떻게 들고 오셨어요??"
(대부분 전공서적은 엄청 두꺼움...)
'솥 됐다...가지러 가야 되나...? 이 새끼는 왜 이렇게 안와... '
" 한권... 줄께... "
이 말에 갑자기 의욕이 생겼습니다.
전공서적은 값이 만만치 않거든요...
그래서 아주머니를 따라 나섰습니다.
골목으로 나갔더니 이미 한참 앞서 가시더라구요.
대충 어디쯤에 놔두셨을 지 상상이 되더라구요...(오르막길 시작하는 입구)
그래서 멀찍이 따라갔습니다.
친구 어머니라도 잘 모르는 사람이라 어색하게 같이 가는건 싫었거든요.
그런데 뒤에서 누가 부르더라구요.
"범~ 어디가? 나 열쇠 없어!!"
친구가 집 문앞에서 골목 내려가는 나를 불러 세웠습니다.
"문 좀 열어주고 가면 안돼??"
"알았어..."
어차피 아주머니 가는 길도 알겠다 싶어서 문 열어 주러 다시 올라 갔습니다.
"너 이 시간에 어딜 가냐?"
"영기 어머니가 오셨거든, 책 좀 맡아 달라고 하셔서.."
"뭐?"
"저기 내려가는 아주머니가...영기 어머니야 너도 같이 갈래?"
"저 여자가 영기 어머니라고?? 야..문 열어...빨리!!!"
"왜 그래??"
"병신아...영기 어머니 작년에 돌아가셨잖아!!
아씨... 저거 올라 온다...얼른 열어!!!!!!"
그때가 되어서야 저 얼굴을 어디서 봤는지 생각 나더군요.
영정사진에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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