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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들려주신 이야기.2.
게시물ID : humorbest_5449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안달루시아
추천 : 21
조회수 : 3178회
댓글수 : 1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10/14 10:48:15
원본글 작성시간 : 2012/10/13 22:28:12

 1편에 이어 두번째 쓰는글인데 (바로 이어 3편도 올릴게요 ㅎㅎ)

조만간 올리겠다 해놓고...일에 치여 이제야 올리네요...

 

추석때 집에오신 어르신들과 송편 만들며

어릴적 이야기를 많이들 해주셨는데

사촌동생은 밤에 악몽까지 꾸고ㅋㅋ

뭐 그랬던 내용입니다. 직접 겪으셧다해서 생동감있게 들었구요.

잘 봐주세요 ㅎㅎ

 

 

'2편' 

 

1950년대 중반, 먹을게 없던 집은 한두집이 아니였음.

특히 보릿고개라 해서 수확기를 앞둔 소작을 두는 집이나,

 

농사를 많이 짓는 부농들은 제외하고

 

그 밑에서 일해 먹고사는 사람들이나 품팔아 겨우겨우 생계를 잇던

사람들은 8월 부터면 하루하루가 고비였음.

 

먹는걸 제때에 못먹다보니 굶어죽는 애들도 한둘이 아니였고, 버섯 잘못먹고 미쳤다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입 하나 줄이려고 자식까지 죽이는 부모들도 많았다고 함.

 

매일 풀죽이나 시래기죽, 또는 산에 나는 '으름,상수리,도토리,버섯,산나물' 등과 함께 지내셧고,

 

하루 한끼니 먹는게 일상이였던 삼촌들에게는 살던 집 가까이에 농氏라는 성을 가진 아재가 한분 계셧는데

팽이도 만들어주고 연이며 눈썰매까지 못만드는게 없는 공예가이셨음.

(희안하게도 팽이며 제기등을 만들면 어린아이들에게만 나눠주었는데 만드는 동안에는 불경?시조!? 같은걸 읊으셨다고 함.)

 

여튼 그렇게 평화롭게 지내던때, 작은 삼촌은 그 때 갓 9살이 되어 국민학교에 입학했고,

농씨아재의 큰아들이 11살이였는데 자전거로 삼촌을 태우고 같이 등하교를 했음.

 

옛날에 한두살쯤이야 큰 나이차이도 아니고 그냥 친구처럼 서슴없이 지내던 때라서

매일같이 밤 늦게까지 학교에서 놀다가 집에 오는길이 무서워 학교에서 같이 잠도 자고 그랬는데

 

농씨아재 큰 아들이 중학교에 가면서는 혼자서 편도 10리가 넘는 학교를 다니게 된거임.

 

삼촌은 그때 나이가 13살??정도 였는데 지금에 우리와 비교하면 헬쑥하고, 피골이 상접한 모양으로 얼마나 외소했겠음?

 

작은 삼촌은 아버지 형제에 비추어보면 깡이 장난이아님. 지금도 보면 풍채가 좋아서 산소가는길에 같은 차에 타면 엄청 든든함^^

쓰레기같이 운전하는 자에게는 핵주먹을... 흠...

(운전석밖으로 왼손을 꺼내놓고 흔들면서 4차로에서 1차로로 끼어든... 무식하게 생긴놈을 추월하며 가래침을 퉤....... 나머지는 상상에;;)

 

하지만 이랫던 삼촌도 그때는 비쩍마른 송아지마냥 애달프기 짝이없던 어린아이였을뿐...

혼자 학교를 다니게 된 삼촌에게 할머니가 하는 말씀이.

 

'농씨네 큰머슴아가랑 같이 안가제?'

'네'

'일찍오도록 혀, 글고 당겨오믄 동생들 누가 챙겨야 것어? 어메는 나갓다 올랑기 차려논거 먹고 배고프믄 감자 몇알 내놧응게 암시롱안혀'

'네'

 

씩씩한 대답과 함께 삼촌은 그 날도 학교에서 놀다가 깜깜한 밤이 되서야 집 생각이 났다고 함....

학교에서 자는것도 농씨아들이랑 같이있을때의 이야기, 혼자서 어떻게 학교를 지키겠음?

 

결국에 큰 마음 먹고 뚜벅뚜벅 한시간 길을 걷기 시작했고,

 

예나지금이나 깜깜한 비포장 도로길을 걷다보면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에도 얼마나 크게 놀람?

지나가는 사람도, 인기척도, 불 빛 한점 없는 시골에서 해는 저물어 그저 감각으로 집을 가는 수밖에 없었던 시절임.

 

5분여 걷는 길가에는 도깨비를 모셔두는 정말 정말 조그마한 사당한채가 언덕 위에 있었고 그 길 옆으로는 오색천으로

자갈,바위,깨진도기등등을 에워싸고 있는 형태가 있었는데,

 

동네 어른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술에 취한 어떤 사람은 그 사당에서 도깨비와 씨름을 했고, 지는 바람에 거기에 널부러져 자면서 한 꿈을 꾸었다 함.

 

어린 아이들이 자기를 밧줄로 묶어서 큰 독(항아리)에 집어넣으려고 애를 쓰는데 때마침 닭이 울어서 잠에서 깨보니

도깨비와 씨름했던 흔적은 물론 자기 몸을 묶으려 했던 지푸라기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는 거임.

 

 

그 길을 작은삼촌은 용기내어 휘파람까지 곁들여 지나치던 찰나.

 

 

 

 

 

'같이 놀자..'

'같이,,,  놀자...'

'너 팽이 만드는 농씨 큰아들이랑 친구잖아... 우리도 팽이 주라... 같이 놀자....'

 

 

삼촌은

'분명 이건 사람목소리가 아니다...' 느끼고는 정말 눈물 콧물 침 다 흘리며 집으로 가는 방향으로 죽을 힘을 다해 뛰어

 

한참을 달리고 또 달려서 마을어귀까지 어찌어찌 오긴했는데

마을 입구에 서있는 당산나무를 보고 그대로 혼절...!? 이때부터는

다음날 쯔음?? 됬다 싶어 눈을 뜰때까지의 기억을 하지 못하심ㅠ

 

어찌됐건 편안한 마음에 잠에서 껜 삼촌은 집이겠거니 하고 눈을 뜨던 그때

 

 

 

 

 

 

 

'잘 잤어?? 어서 놀자~'

'일어났으면 이제 놀자 이히히힣'

'우리는 세명이고 너는 혼자니까 니가 술래다^^ 이히히'

 

 

 

이 뒤로는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안나셨는데

다음날 학교도 못갈정도로 삼촌은 크게 아프셧고 소식을 들은 농씨아저씨가 팽이와 연, 제기를 사당에 모셔두고 당산나무 잎파리로

삼촌을 때리면서 할머니한테 하시는 말씀이

 

'이렇게 해야 죽은아그들이 안불쌍한겨, 그래야 떨어져 나가지, 암...

영 거시기 하믄 동짓날 꼭 팥죽하고 돼지고기, 묵한접시를 사당앞에 한상에 차려 모셔 보소.

 

글고 (삼촌 가명:) 경민이 너는 술래가 됬다 했던 아가들 목소리로 '다 찾았다' 라고 세번 하그라.'

 

 

...

 

이렇게 마치게 되는데요

 

이야기인즉, 옛날에는 어린아이들이 굶어 죽으면 어디 묻을만한 마땅한 땅이 없어서 인적이드문 그런 산에 아기시체를

 

장독에 담아 지푸라기로 묶고 위에는 헌옷이나 돌 등을 채워 묻어버리거나 했는데 (애장터는 돌, 독깨진 조각등이 많음)

 

시골마을에서 죽는 애기들이 너무 많다보니 병에걸려 제때 치료받지 못해 죽는아이 (전염병등은 특히 심각해서 장독에 넣어

버리면 전염성이 없어질까 하여 장독에 넣었다는 유래도 있음은 물론) 굶어죽은 아이,...를 버리는 곳을 '애장터' 라 칭했으며,

 

그 작은 사당은 도깨비가 머무는 곳인데 해코지 하는 그런 도깨비가 아니였지만 매일같이 울어대는 아이 혼령들 덕에

(이름도 없는 어린 아이들은 도깨비가 놀아주거나 그랬다는데...) 지나가는 마을 사람을 붙잡고 씨름을 걸어서 지는 사람한테는 아이들하고

놀게도 하고, 나이가 비슷해보이는 어린애들은 놀래켜서 데려다가 놀아주게 했다는 그런 소설같은 이야기였습니다.

 

 

끗^^

 

 

아차 그리고 1편 썻던건데 다시 올려볼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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