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뒷북주의 미드보다 재밌는 한상률게이트 이야기
게시물ID : sisa_5455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마곗돈둑들
추천 : 14
조회수 : 842회
댓글수 : 22개
등록시간 : 2014/08/19 11:21:23
인트로
 
2009년 11월 18일 새벽 0시가 약간 넘은시각 “전 국세청 국장 안원구”와 그의 아내 “홍혜경”은 그의 담당 변호사 사무실앞에서 괴한 4명의 습격을 받습니다. 당시 안원구는 서류가방을 하나 들고 있었는데 그는 괴한들이 다가오자 자신의 가방을 변호사에 넘기고 가방을 받은 변호사는 재빨리 건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괴한들은 담당변호사로부터 가방을 뺐들기 위해 바로 뒤쫓아 가지만 결국 가방을 뺏지 못하고 안원구만 차에 태우고 유유히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날 아침 뉴스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뜹니다.
 
 

 
 
 
<그렇습니다. 그 괴한들은 검찰 수사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괴한들은 검찰이었습니다. 그런데 안원구가 그렇게 긴급 구속된 이후 세간에는 이상한 소문이 떠돌고 있었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그림강매혐의는 훼이크고, 사실은 안원구가 감히 건드려서는 안될 인물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에 구속되었다는 소문이 그것입니다. (어익후…감히 그분을….ㄷㄷ 전 감히 이름도 함부로 못 올리겠습니다…;;;;)
 
아무리 쥐가 구석에 몰리면 냥이도 문다 쥐만, 안원구가 발에 쥐 나도록 뛰어봤자 그분에 비해 가진 건 쥐꼬리만큼도 없으니, 쥐 죽은듯이 가만히 있거나, 냥이 앞의 쥐 신세처럼 쥐쥐 쳐야되는 건데, 쥐뿔도 모르고 언젠가 쥐구멍에 볕 들 줄 알고, 쥐롤하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훅 가게 생겼으니 안원구도 참 불쌍하기 그쥐 없습니다. (전 감히 그분 이름 얘기 못합니다..)
 
그런데 안원국 국장이 구속된 이후 이야기는 예상외로 급박하게 흘러갑니다. 아내 홍혜경씨가 언론 및 야당과 접촉하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점점 야릇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민족정론을 표방하는 언론사에서 한명숙 전 총리 건을 터트려, 이 얘기는 좀 뒤로 밀려난듯 하지만 왠지 저는 이 상황에서 폭풍전야의 고요함이 느껴집니다. 뭐 이유야 어찌되었든 상황이 이렇다면 이쯤에서 한번쯤 중간정리를 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자 그럼 일단 그림 하나보고 이야기 시작하겠습니다.
 
 


<학동마을> 고 최욱경 38×45.5㎝, 캔버스에 아크릴, 1984
 
학동마을입니다.붉은 원색의 바탕에 거친 붓 놀림을 통해 추상화된 자연을 표현한 작품으로 작가가 자살하기 1년 전에 그린작품이라고 합니다. 추상적 표현으로 자기를 초월하려 한 작가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데 솔직히 그런 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불행 하게도, 이 그림이 세상에 알려진 건 추상화된 자연 때문이 아니라 추악화된 인간의 욕심 때문 이었습니다.


장면 #1 한상률과 전군표
 
2007년, 당시 국세청 청장이었던 전군표는 서울시내 한 식당의 부부끼리 식사자리에서 당시 국세청의 차장이었던 한상률에게 선물을 하나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와는 상관없이 그해 11월 전군표는 전 부산지방국세청장 정상곤으로부터 인사청탁 대가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됩니다. 그 후 자리가 빈 국세청장의 자리는 당시 차장이었던 한상률이 임명되었습니다.
 

 

그리고 전군표는 2008년 말 징역 3년6월에 추징금 7천여 만원의 확정 판결로 현재 복역 중입니다. (*1)
 
겉으로 보면 그냥 뇌물사건 같지만 여기에는 여러가지 상황이 깔려있습니다.
한상률이 국세청의 대장이 된 건 전군표가 구속된 직후인 2007년 11월이었습니다. 17대 대통령선거가 그해 12월에 있었고, 당시 대세는 한창 국밥을 말아 드시던 지금의 가카 쪽으로 급히 쏠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국세청장으로 임명된다는 건 3개월짜리 인턴직이나 다름없는 것 이었습니다. 한상률의 입장에서는 가만히 있으면 3개월 후부터 국세청장이 되는 것이었는데 3개월 후에 짤리게 생겼습니다. (이런 ㅆㅂㅂ) 당시 참여정부 민정수석실 한 관계자는 “한상률신임 국세청장이 11월30일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받을 때부터 3개월짜리 청장이라는 말이 나왔다”(*2) 라고 합니다.
 
 
 
장면 #2 한상률과 안원구
 
안원구는 대구출신에 당시 대구지방국세청 청장으로 국세청 내부의 평가도 좋았고 고속 승진으로 승승장구 중 이었습니다.
대구지역에서만 16~17년 정도 공직생활을 해서 TK의 실세들과도 친분이 두터웠다고 합니다. 이런 안원구가 당시 한상률의 연임을 위해, 다음정권의 실세나 다름없는 박영준(당시 이상득의원 보좌관, 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이지형(이상득의원 아들, 외국계 투자회사)및 이상득(당시 국회부의장, 가카의 형)등을 만나 한상률이 이전정권과 관계없다고 옹호하고 그의 유임을 논의했다고 합니다.(*3)
 

 
 

여기서 누가 먼저 서로에게 접근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한상률이 먼저 접근 했을 수도, 안원구가 먼저 한상률에게 접근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한상률은 짤리지 않기 위해서는 안원구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안원구도 간디와 같은 인도주의 정신으로 도와주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미 국세청은 가카가 대통령 후보였던 시절 [가카 및 그 주변의 재산과 탈새 의혹]을 사찰했고 또 이와 관련해 이른바 “MB파일”에 대한 소문까지 돌면서 국세청장의 교체는 사실상 확실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새 정권이 들어서고 3개월짜리 청장이라고 했던 한상률은 2008년 3월 MB정권 초대 국세청장으로 유임을 하게 됩니다. 그가 새 정권과 코드를 맞추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는지는 며느리도 모를 껍니다.
 
 
 
장면 #3 한상률과 박연차 그리고 가카
 
촛불에 대한 강경진압이 심해지던 2008년 7월, 국세청은 전격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기업으로 알려진 부산의 태광실업과 정산개발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합니다. 태광실업은 재계 620위권 규모의 신발공장으로 그때의 수사를 두고 당시 한 국세청 관계자는 “관할서인 부산지방청을 놔두고 서울청 조사4국이 한 중소기업을 6개월 동안 샅샅이 조사한다는 것은 청장의 의지 없이는 불가능”이라 했습니다. (*4)
그리고 당시 한상률 국세청장은 세무조사 상황에 대한 보고를 민정수석실을 패스하고 가카에게 직통으로 보고 했다고 합니다.(*5)
 

 
다급해진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은 천신일(세중나모회장)과 추부길(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을 통해 세무조사 무마를 위한 로비를 펼칩니다.
천신일은 박연차와 의형제 사이이고 한상률 국세청장과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 ceo과정 동문으로 막역한 사이라 수 십 차례 한 청장에게 전화하여 세무조사 무마를 청탁했습니다.(*6) 추부길은 이상득의원을 만나 박연차 회장의 구명을 청탁했습니다.
이과 관련해 이상득의원은 추 비서관과만난 적도 없다고 했지만 이후 이는 거짓으로 밝혀졌습니다. (*7)
추부길은 현재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2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 중입니다.
 
이거 뭔가 일이 커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한상률이 가카와 코드를 맞추기 위한 충성심에 알아서 시작했는지, 촛불 이후 점점 커지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인기 때문에 청와대에서 직접 지시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만 한가지는 여렴풋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현 정권하에서 국세청이 전직 대통령 및 그 주변에 대해 기획적으로 세무 조사를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박연차 회장은 이 과정에서 (자의든 타의든)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번 정권에 협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느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벌써 “MB파일”, “국세청장 연임로비”, “표적세무조사및 대통령 직통보고”, “세무조사무마 로비” 등 굴직 굴직한 얘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중 하나만 골라도 대형떡밥인데 이 정도면 거의 황금어장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장면 #4 한상률과 학동마을
 
여기서 잠시 2007년으로 돌아가 장면 #1 로 가보겠습니다. 한상률이 국세청 차장이고 전군표 국세청 청장이었을 당시 식사자리에서 선물(학동마을)과 함께 전했던 것은 당시 한상률의 차기 청장 라이벌인 K차장을 떨어뜨려 달라는 말 한마디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가장 유력후보였던 K차장은 떨어 졌습니다.(*8))
 
이후 2009년 1월 전군표 청장의 부인 이미정씨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07년 한상률과 식사했을 당시 그로부터 인사청탁 목적으로 그림(학동마을)을 받았다”라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전군표 전전 국세청장 및 한상률 전 국세청장은 학동마을을 본적도 없다고 잡아 땠지만 이후 거짓임이 밝혀졌습니다. (*9) 
 
안 그래도 2008년 연말, 경주까지 내려가서 강석호(한나라당 의원, 이상득의원 측근), 신모씨(가카의 동서)등 경주 포항지역 유력인사들과 로비성 골프회동 파문까지 (*10) 시끄러운 터라 한상률은 더 이상 버티는게 힘들어 졌습니다.
결국 그는 2009년 1월16일 국세청장 자리를 사퇴하고, 돌연 3월 15일 미국으로 출국했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2007년 남을 찌르려고 보낸 그림이 2년 후 자신을 지르는 칼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가 미국으로 갔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는 그의 기획출국설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나이 65에 연구생 자격으로 미국 유학길이라니…공부에는 끝이없군요…;;)
 
그림로비 및 세무조사무마 혐의로 조사 받아야 되는 사람을 외국으로 보낸 것도 이상하지만 그가 미국으로 간 다음, 그가 이끌던 “박연차 사건”의 바톤은 검찰이 이어받아 조사차원을 넘어서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후의 전개에 대해서는 대부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여기서 왜 한상률을 외국으로 보냈는가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분분 하지만 사람들은 한상률이 가진 두 개의 칼자루 때문이 아닌 가하고 생각합니다. (결국 정부도 함부로 한상률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는 능?)
첫번째 칼자루는
한상률이 앞으로는 그렇게 사바사바 하면서도 뒤로는 MB가 대권후보시절 국세청에서 조사한 “MB파일” 이라는 칼자루를 꽉 쥐고 있었다는것입니다. (실제 대선직후 대통령 최 측근 정두언 의원은 한 청장에게 MB파일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라고 했습니다. (*11)
두번째 칼자루는
태광실업 표적조사에 대해 한상률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정권의 입장에서는 노무현을 털기 위해서는 박연차를 쪼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한상률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괜히 한상률 카드를 썼다가, 야당이 그보다 한 끗발 높은 한상률의 “그림로비 패”나 “세무조사무마 로비 패” 같은 것을 꺼내면 독박을 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위협을 느낀 한상률이 두 개의 칼자루 중 하나만 휘두르다 빗 맞기 만해도 현 정권 및 가카의 형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가카는 패 돌리기 분야에 있어서는 거의 타짜 수준입니다. 가카는 이전에도 자신의 비리를 폭로한 전 비서관 김유찬을 해외로 보낸 적이 있습니다. (여보~가카한테 여행사 하나 차려드려야겠어요…아니면 하우스?)
 
정권의 입장에서는 한상률은 터트릴 수도 없고, 가지고 있자니 너무 위험한 폭탄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한상률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는 미국으로 보내졌고, 앞으로도 한동안은 열리지 않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두 명의 대통령을 보냈고, 이 이야기는 서서히 잊혀지는 듯 했습니다
 

장면 #5 한상률과 안원구 (인트로는 복선이라능..)
 
2009년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불기 시작할 무렵 국세청국장 안원구는 언론과의 접촉을 시도하며 국세청 내부의 비리를 폭로하려 했습니다. 
이미 친분이 있었던 월간조선 쪽과의 인터뷰를 마쳤고, 11월18일 신동아와 인터뷰가 예정된 날 새벽, 검찰 의해 전격 체포됩니다.
그리고 월간조선과의 인터뷰는 결국 기사화 되지 못합니다.(출처_홍혜경 인터뷰 중,  한겨레/시사인/오마이뉴스 및 기타언론 참고)
 
이후 그의 부인 홍혜경(가인 갤러리 대표)은 민주당과 담당변호사를 통해 안원구의 레포트의 내용 일부를 언론에 공개하게 됩니다.
현재까지 그들이 폭로한 내용을 추려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12)
 
1.  전군표 전전 국세청창의 부인이 홍혜경(가인갤러리대표) 에게 학동마을을 가져와 한상률로 부터  받은 건데 얼마쯤 나가냐고 감정을 의뢰  했다고 함 (이전 그림로비 파문 때 밝힌 내용)
2.    한 청장이 유임되고 난 후 국세청 차장을 시켜줄 테니, 정권실세에게 가져다 줄 돈 10억이 필요하다. 7억은 내가 준비할 테니  안 국장에게 3억 원을 요구했다고 폭로, 안원구 불응함. 이후 서울지방 국세청 국장으로 3단계 강등됨.(여기서 실세는 가카의 형)
3.    한 전 청장이 2008년 7월26일 안 국장을 호출해 “태광실업 베트남법인 계좌를 조사중이니 협조를 바란다”라고 부탁, 안원국이 자신의 업무와 관련 없는 일인데, 왜 그러냐고 묻자 “태광실업 세무조사와 관련해 대통령과 1주일에 2번씩 독대보고를 하고 있으니 이번 조사에 협력하면 이 사실을 대통령께 보고해 인사를 통해 명예를 회복시켜 주겠다”며 조사 참여를 설득함
4.     안 국장은 예전 대구국세청장 시절 포스코 건설 정기 세무조사 과정에서 도곡동 땅의 실 소유주가 MB 라는 문건을 확인한 적이 있음 (이것이 문서화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음)
5.     2009년 7월 경 국세청 간부로부터 “청와대를 포함한 위의 뜻이니 국세청 산하 기업사장으로 가라고 사퇴종용”의 내용이 담긴 전화 녹취록 공개, (이후 이 간부는 임성균 국세청 감사관으로 밝혀짐)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습니다. 상황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안국장은 한상율의 3억원 요구 거절 후 (아마 이때부터 둘 사이가 틀어졌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국세청내의 파워 게임에서 밀리는 것을 느낍니다. 이 후 그에게 사퇴압력까지 가해지자 그는, 나중을 대비해 그가 만난 사람들과의 국세청 및 정권의 비리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안원구는 그것을 가지고 2009년 가을 언론과 접촉하다 11월 어느 날 밤중에 돌연 구속됩니다. 이에 발끈한 그의 부인 홍혜경은 민주당을 통해 그 동안의 기록을 폭로해 버리면서 사실상 정부 및 국세청과 전면전을 선포해 버립니다. 
   이러면서 상황은 안원구와 한상률의 대결구도가 민주당과 MB정권&한나라당의 대결구도로 바뀌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 기록은 그의 부인 홍헤경씨의 인터뷰에 따르면 아직 일부만 공개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정도면 한상률 게이트는 그냥 폭탄이 아니라 핵폭탄 급입니다. 이미 공개 된 기록들만 봐도 하나같이 그 내용이 굴직굴직 합니다. 
그리고 이번 안원구 레포트로 인해, 여태껏 허공에 소문으로만 둥둥 떠다니던 한상률 게이트 사건들의 조각들이 하나하나씩 맞춰지면서, 하나의 큰 그림이 완성되어가고 있습니다.
 
   안원구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상률은 인사 청탁 및 표적세무조사로 인해 국세청장을 연임할 수 있었으며 여기에는 모든 일은 형으로 통한다던 “만사형통”의 주인공 “가카의 형”과 표적수사의 대상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얽히게 됩니다. 
   그리고 가카의 “도곡동 땅”과 관련한 “MB파일의 실체” 여부와 한상률의 미국 “계획 도피 설”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도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이거 정말 까도 까도 계속 나오니 일이 너무 커져버려서 어디서부터 정리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삼국지도 아니고 등장인물은 왜 이렇게 많고, 사실관계들은 왜 이렇게 얽혀있는지….., 미국 드라마 음모론도 아니고 추상화 하나로 시작했는데  국세청 비리는 뭐고 전직 대통령은 뭐고 우리 가카는 또 뭐란 말이지?
글을 쓰고있는 저도 헷깔립니다…;;;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 이라 했습니다. 본 텍스트의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해 그림 하나 준비했습니다. 주변 인물들은 뺀다고 뺐지만 이야기가 워낙 블록버스터 급이라 복잡해 보일 수도 있으니 양해 부탁 드립니다. (혹시 저같이 만화책에 나오는 사람이 5명만 넘어도 첫 페이지의 등장인물 소개랑 번갈아 가면서 봐야 되는 지능을 가진 분들에게 권합니다.) 자 그럼, 그림 한번 훑어보시고 마무리 들어가겠습니다.
 
 
 

 




관전 포인트
 
이 이야기는 분명 작정하고 파헤치면 뭔가 나올 법도 한데 아직 방송이나 신문에서는 별 소식이 없습니다.
한편으로 이야기가 지금처럼 루즈 해지면, 우리 같이 구경하는 사람입장에서는, 좀더 흥미로운 관전을 위해 문제를 단순화시켜 포인트를 파악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지금까지와 그리고 앞으로의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 관전포인트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그리고 이 포인트의 중심에는 공교롭게도 전직과 현직의 두 대통령이 얽혀있습니다.
 
뽀인트1 - 노무현
 
한상률은 임명될 당시 누가봐도 3개월짜리 청장이었습니다. 이전 정권에 의해 임명된 사실이 그랬고, 정연주 전 KBS사장의 해임에서도 알 수있듯이, MB정부는 이전 정부의 인사에 대해 심한 거부반응을 보이며, 사람부터 제도까지 이전 정부와 관련된 모든걸 교체하길 원했습니다.
 이중 가카의 왕권강화에 결정적 역활을 하는 4대 권력기관 (국정원, 경찰청, 검찰청, 국세청)의 대장자리는 두말 할 나위도 없었습니다.
그런 국세청장의 자리를 고소영도 아니고 가카와 특별히 친분도 없던 한상률은 결국 지켜냈습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촛불이 끓어오르며 모두가 내각의 교체를 요구할 때에도 한상률은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5초만 생각해 봅시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았나;; 슈퍼내츄럴?;; 응?.;;)
 
노무현 전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을 때 참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습니다. 당시 그가 정치적으로 타살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수없이 많았지만, 이를 뒷받침 할 만한 구체적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여기에 한상률 퍼즐을 끼워봅시다. 이번에 밝혀진 한상률의 “기획된 세무조사”와 “대통령 독대보고” 사실은 그가 정치적으로 타살되었다는 주장의 결정적이고, 아주 구체적인 증거입니다. 거기다 안원국 국장에게 “(태광실업) 세무조사에 협력만 잘하면 대통령께 보고해서 승진시켜준다니..” 이는 가카는 가만히 있는데 한상률 혼자 과도한 충성심에 딸랑거린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말이 많았던 노무현의 죽음과 관련한 첫 번째 단추가, 이제야 채워졌습니다.
 
그리고 이는 현 정권이 국가권력기관을 어떻게 오.남용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느 날 한상률이 갑자기 죽을병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아 ““이왕 죽을 거 같이 죽자””라 생각하고 한국에 와서 폭탄 드랍 하지 않는 한, 아무래도 앞으로 한국땅에서 그의 얼굴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일이 커지면 BBK때 처럼, 불러놓고 형식적인 수사반장 놀이할지도 모릅니다.)
 
 
뽀인트2 - 가카
 
제가 볼 때 우리 가카는 육십 억분의 일 의 사나이 “에밀뉘어놓고 효도를” 이 와서 한번 걸리면 못나온다는 “얼음 파운딩”을 한다고 해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을 분입니다. 육십 억분의 일이 뭡니까, 아무리 쪽수에는 장사 없다지만 수백만의 촛불이 광화문을 뒤덮을 때도 그는 홀로 청와대 뒷산에 올라 반짝이는 불빛들을 보며 잠시 감상에 젖을 줄 아는…, 그런 호연지기를 가진 분 입니다.
(이런 무결점의 맷집을 가진 남자.. “아.. 신이시여…이 남자 욕심 내도 될까요??”)
 
그런 그에게도 건드려선 안될 약점이 있는데 그건 이번에 안원구가 끄집어 낸 도곡동 땅입니다.
이거 얘기하면 또 길어질지 모르니 대체 도곡동 땅이 뭔지 간단히 한번 알아봅시다.
 
1985년 가카의 처남 김재정씨와, 친형 이상은씨는 도곡동의 약1300평의 땅을 현대건설(당시 현대건설 사장은 가카)과 개인 소유자로부터 사 들이게 됩니다. 이때의 매입가격은 15억인데, 이로부터 10년 후   
1995년, 이 땅은 263억원에 포스코(당시 포항제철)에 팔리게 됩니다. 10년이라는 세월을 감안하더라도 약 250억 정도의  엄청난 차익을 남긴 성공적인 투기였습니다.
1993년 가카가 국회의원시절, 공직자윤리법 강화 때부터 이 땅은 가카의 발목을 붙잡기 시작했고,
2007년 가카가 이 땅에 지대로 걸려 넘어질 뻔 한적이 있는데 한나라당 내에서 박근혜 후보와 대통령후보 경선 중 박근혜 캠프 쪽의 서청원(전 한나라당 대표)의원이, 김만제 전 포항제철 회장한테 들었다면서 이명박 후보가 국회의원 때인 1993년 즈음 세 번이나 자신을 찾아와 “도곡동 땅이 자기 땅인데 좀 사달라고 부탁’ 했었다고 폭로해 버립니다.(*13)
2007년 8월 16일 가카는 이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도곡동 땅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내 땅이 아니다”라며 박근혜 캠프 쪽에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을 요구 했습니다.(*14)
2007년 12월 능력있는 서울중앙지검은 수사결과를 발표하지만 “이상은의 도곡동 땅 일부는 분명 다른 사람 것이긴 한데, 그 주인이 누군쥐…아니;; 누군지는 잘 모르겠고, 암튼 그 사람이 가카는 절대 아니다.” 라는 발표 이후로 이 이야기는 흐지부지해져 버립니다.(*15) (당시 정동기 대검차장은 이후 능력을 인정받아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냅니다.)
 
자 그럼 안원구의 발언에 주목해 봅시다. 가카께서 친히 기자회견까지 열어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내땅이 아니”라고 했건만 안원구는 “도곡동 땅이 가카꺼라는 증거 문서를 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분명 구라를 치고 있다는 얘기인데, 누가 구라를 치고 있는지는 여러분 각자의 판단에 맡깁니다. 전 개인적으로 아래 몇 가지의 이유로 안원구가 구라를 치고 있는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l      일단 잠시 밖을 보니 지금 하늘이 괜찮은 걸로 봐서 가카가 구라를 치고있는 건 아니라고 믿습니다.
 
l 안원구가 긴급 체포되었던 이유도 언론에 땅 얘기 노출 땜에 그렇다지만, 안원구는 수 십 년간 공직생활을 한 간부공무원으로 신원이 확실한데다, 이미 출국금지 명령까지 내려진 상태라 검찰이 밤 중에 갑자기 들이닥쳐 체포한 것은 다 안원구가 신원을 속이고 해외로 밀항을 할 정도로 흄악범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믿고 싶습니다.
 
l 도곡동 땅을 판 돈이 BBK 의 투자자금으로 흘러갔다는 의혹이 있는데, 다시 이 얘기가 방송을 타면 자칫 사람들이 발음이 비슷한통닭이 생각나는 바람에 통닭소비량이 늘어나, 제가 좋아하는 치킨 값이 오를 까봐 걱정입니다. (치맥은 진리이니깐요 양념후라이드반반으로...;;;)
    아…그러고 보니 안원구는 이미 BBK와 연관이 되어버렸군요…이번 안원구사건 담당자는 지난 BBK를 수사했던 김기동 검사입니다.
 
l     그리고 만약 안원구의 말대로 도곡동 땅이 가카의 것이 맞고 이것을 증명할 수 있는 문서가 존재해,  세상에 밝혀지게 된다면  정말 청와대가 아무리 잘 막아도 최소 대국민 사과는 해야 될 것이고, 이거 자칫 잘못하면 제가 주위사람들한테 떡 돌릴 일이 생길지도 모르게 됩니다. 떡값 땜에 가벼워질 제 지갑이 걱정스러워라도, 구라는 안원구가 치는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이 정도면 한상률 게이트는 괜찮은 떡밥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 문은 사람들이 하도 들락 날락 거려, 문 단속조차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원래 큰 물고기를 잡으려면 떡밥이 좋아야 하는데 이정도 떡밥은 설치만 잘 하면, 두달 후, 설 치르고, 몇 달 후, 지방선거 연설 치를 때 쯤 되면, 물 에서 설치는 어류는 물론, 땅 위에서 설치는 설치류도 잡을 수 있썰 치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효성비자금사건” ”공성진 게이트”등 시즌 2, 3이 연달아 터질지도 모릅니다.
(위 사건들도 궁금하시면 썰치[search]해보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정말 하고 싶은 말 한마디만 하고 끝내겠습니다.. 막판에 이런 얘기해서 죄송하지만,
이 이야기가 정말 공상 빤타지 스토리로만 남고,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이대로 유야무야 잊혀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어질 거라는 괜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계속 지켜 보고만 계신다면,
이를 막기 위한 청와대와 가카, 그리고 검찰 및 한나라당의 환상의 콜라보도 중요한 “관전 뽀인트” 중에 하나이니깐요.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가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입니다. 그분이 국밥을 말아먹는지, 國밥을 말아먹는지 지켜보고 관심 가져줍시다. 이게다 우리가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짓입니다.
 
 
한상률게이트 이야기
(중반까지의 스토리) 끝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