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베오베에 간 글 중 김어준이 포스코를 6개월 다니다가 때려친 이유를 쓰고 멋지다고 한 글을 보았다. 그 내용은 포스코에서 전날 회식을 03:00까지 하고 07:00까지 나오라고 한 다음 '내가 왜 일찍 오라고 했는지 아냐. 힘들고 피곤할 때일수록 오히려 정신을 차리고 새벽에 이렇게 와서 일하는 자세 때문에 내가 이사까지 왔다' 라고 하는 이사가 너무 작아보여서 그만두었다는 것이었다. 일부 반대 의견도 있었으나 다수의 의견은 김어준을 옹호하는 것 같았다. 그 논거는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았다. 1. 30시간 앉아만 있는 것보다 3시간 집중해서 일하는 것이 좋다. 2. 이사의 마인드는 후진국 마인드에 불과하다. 3. 개인의 영달과 안위보다 추구해야 할 더 큰 가치가 있었다. 4. 인생의 가치를 왜 직장에서 찾는가? 5. 그는 회사에 충성하는 동안 가족과의 행복, 대인관계 등 모든 것을 포기했을 것이다. 6. 잘못된 환경안에서 노력하여 적응하는 것이 자부심인 사람과 잘못된 환경을 고치려 하는 것이 자부심인 사람을 비교하면 후자가 더 가치있다고 보인다.
이 정도의 논거인 듯 하다. 그 중 대다수의 논거는 1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맞는 말이다. 예전 박정희 시대에는 분명히 그러한 정신이 필수불가결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충분히 성장을 한 상태이고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지위, 명예, 부보다는 가족과의 친밀, 개인의 취미 등을 통하여 자신들의 행복을 찾아나간다. 한국이 선진국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또한 나머지 근거들 역시 생각하기에 따라 충분히 타당한 논거들이다.
그렇지만 내 생각엔 저건 개인의 가치관의 차이인 듯 싶다. 나중에는 거의 "일만 모르는 기계부품일 뿐, 불쌍한 사람" 으로 몰아가던데, 나는 "이사가 옳다" 라고 할 수는 없으나 대다수의 주장은 조금 문제가 있다고 본다.
우선 논거 1번을 보면 겉보기엔 참 그럴싸하다. 맞는 말이다. 내가 본 인간의 뇌효율 그래프에서도 4시간 연속 책을 읽는 사람보다 1시간 일하고 10분 쉬고 1시간 일하고 10분 쉬는 사람이 훨씬 효율이 좋았다. 본인 역시 수능을 쳐서 대학에 진학하였고 공부방법에 대해 생각해보았는데 정말 나에겐 고마운 그래프이자 이론이었다. 놀 기회를 제공하는것 아닌가? 그런데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1시간 공부하고 10분 쉬고 다시 공부한다? 쉽지 않다. 10분만 쉬는게 쉽지가 않다는 뜻이다. 늘 컴퓨터 앞에 앉아 20분쯤 인터넷서핑하고 일어나기 싫은 거 일부러 엉덩이 일으켜서 가서 앉아있으면 잔상만 남아 돈다. 산책을 한다? 좋다. 해보았으나 별로 쉬는 느낌도 안 들고 머리도 딱히 맑아지는지 몰랐다. 오히려 다시 공부하기 싫다 이 생각만 계속 들었다. 반면 공부를 3~4시간 한 자리에 진득히 앉아서 한 경우 관성 때문에 공부하기가 더 쉬웠다. 물론 나중에 가면 능률은 떨어졌겠지. 하지만 알게 모르게 화장실 가는 등등 쉬는 시간이 계속 나오고 가장 중요한 건, 안하는 것보다는 나았다.(오유를 보면 "그래서 님은 공부 잘했어요? 못했을거 같은데" 이런 말이 달릴거 같아서 미리 말해두는데, 성적이 나쁘진 않았다) "힘들고 고단한 때일수록 정신을 차려라" 보다 "효율을 중시하라" 는 말이 달콤하다. 왜냐하면 쉴 구실을 제공해 주니까. 하지만 회사는 타 회사와 경쟁을 하고 있고 그런 모든 사원의 편의를 다 봐줘서 "이러니까 넌 쉬어 그래야 능률이 더 오르지" 라고 한다면 그 회사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과연 저러한 회식을 매일 하고 매일 아침 일찍 나오라고 했을지 의문이 든다. 오히려 그 시간까지 같이 회식하고 김어준보다 일찍 나와 저 훈계를 한 성실한 이사가 저렇게까지 하며 김어준에게 훈계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근무 태도에 문제가 있어서는 아니었을까?
논거 2번은 구글을 가장 대표적인 예로 내세운다. 그들의 근무환경은 실로 환상적이라 회사원들의 환상을 사는 것 같다. 하나만 묻고 싶다. "그러면 당신들에게 구글직원들만큼의 편의와 월급을 제공하면 그 정도의 업무를 해낼수 있는가?" 그럴수 있다면, 구글에 입사하면 될 것이다. 아무 문제가 없다. 선진국을 향해 가고 있는 국가에서 미리부터 선진국 근무 환경부터 요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성실한 것이 후진국마인드이고 근무시간중에 메신저돌리다가 점심시간 꽉꽉 채우고 상사 가자마자 칼퇴근 하는 것이 선진국 마인드인가?
논거 3번은 도대체 저 글중 어디에서 김어준이 새로운 가치를 추구한다는지 알 길이 없다. 아예 지문 밖에서 추론해버리는데, 일화는 일화 그대로 해석해야지 그 사람이 추진하고 있는 일이 마음에 든다 하여 일화마저 미화시켜버리면 곤란하다. 당신은 저 사람이 김어준이 아닌 甲이었더라도 그렇게 말했을 것인가?
논거 4번에 대해서는 "왜?" 라고 묻고 싶다. 질문자에게 있어서는 직장은 "진짜 일하기 싫어 죽겠는데, 목구멍이 포도청이지. 자식들 교육시켜야지 마누라 생활비 줘야지..."정도의 공간인가? 그런 식으로 직장을 생각한다면 삶이 참 가시밭길일 것이다.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직장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재밌게 살아야지 왜 직장에서 인생의 가치를 찾으려 하면 안되는가?
논거5번은 이런 논리이다. " 저 여자애는 몸매도 좋고 얼굴도 이쁘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애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거 같이 보여. 집도 엄청 부잣집이네? 부잣집인데 어떻게 가난한 집 아이들을 이해할 수가 있지? 그러므로 저 애는 지금 가식을 떠는 거야. 그러므로 성격은 못된 아이네" 함부로 재단하지 말기 바란다. 본인이 아주 잘 아는 중년남성 중 대기업 상무까지 올라갔던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대기업 임원진 이상은 모두 업무량에 시달려 가족에게 0점짜리 아버지인가? 내가 아는 그사람은 전혀 그렇지 않다. 딸 둘이 있는데 그녀들 모두 아버지를 존경하며 아내에게도 인정받고 퇴직한 후에도 몇개월 간 전 직장 동료들의 술자리약속전화로 매우 바쁘게 살았다. 심지어 그를 상무에서 옷벗게 하여 그 자리에 대신 간 그 사람이 1년이 안되어 횡령혐의로 옷벗었다는 사실까지 모두 알려주었다. 사실 한가지 만으로 너무 많은 유추를 하는 것 역시 별로 안 좋은 습관인 듯 하다.
논거 6번 역시 지문 외의 응답이다. 김어준이 그래서 직장인들의 쉴 권리를 증진하기 위해 일하였다는 말이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실제로 그리하였는가? 그는 그냥 본인의 쉴 권리를 위해 회사를 사퇴했을 뿐이다. 미화시키지 말자.
본인 역시 김어준 씨가 쓴 "닥치고정치"라는 책을 소지하고 있고 나꼼수의 정화작용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이에 의해서 그의 일화마저 곡해하여 해석하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을 것이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여 승승장구하는 과정이 본인의 삶에 있어 큰 행복을 주는지, 그것이 아닌 직장 외의 무궁무진한 요소에서 재미를 얻는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자신이 주장하는 바와 다르다 하여 틀리다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인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