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FTA는 중산층과 서민을 배신한 행위"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시도한 것을 반성했다. 노 대통령은 최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연정이 "자만심이 만들어낸 오류"라며 "뼈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연정을 앞장서서 반대한 사람으로서 이 같은 대통령의 소회를 들으니 착잡하기 짝이 없다. 2005년 여름을 달궜던 대연정 논란으로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은 큰 타격을 입었다. 수많은 지지자들이 절망해 등을 돌렸다. 열린우리당의 지지율 폭락과 해체를 가져온 결정적인 계기였다. 대연정이 실현되면 필자도 탈당을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오류였다고 반성한다니 이미 떠나버린 지지자들과 없어져버린 열린우리당은 어쩌란 말인가. 어디 노 대통령의 오류가 대연정 뿐인가? 문제는 참여정부의 신자유주의 철학과 정책이다. 노 대통령의 대연정 구상은 참여정부 저변에 깔린 신자유주의 철학과 정책기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래서 최장집 교수는 노 대통령의 대연정 시도를 "신자유주의 동맹"이라고 규정했다. 신자유주의 경제ㆍ사회정책을 추구하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정치적으로도 연합하자는 것이 대연정 구상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부유층 위한 감세정책은 소비ㆍ투자와 무관 이는 참여정부의 경제ㆍ사회정책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첫 번째 신자유주의 정책은 감세다. 대기업과 부유층의 세금을 줄여 소비를 늘리고 투자를 활성화하자는 논리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선 후보가 주장하는 핵심정책이 바로 이것이다. 참여정부도 같은 논리로 법인세율 2%p와 소득세 1%p를 낮췄다. 지난 8월에는 대선용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소득세를 1조 원 가량 줄였다. 복지 수요로 국가채무는 134조 원에서 300조 원으로 늘리면서도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줄여버린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과 부유층의 세금을 줄인다고 해서 소비와 투자가 활성화되지는 않는다. 지금 대기업은 사내에 유보한 현금이 넘친다. 그런데도 대기업의 생산투자는 예전보다 줄었다. 부유층의 소득도 늘어났다. 그러나 그 숫자가 적은 부유층의 소비에 의한 생산유발계수는 낮다. 그나마 쓴 돈도 외제 명품을 구입하거나, 외국에 나가 쇼핑을 하거나, 외국 펀드에 투자하는 데 쓰고 있다. 또는 부동산 투기를 선도해 국내 땅값을 올렸다. 이런 소비는 내수산업과 경기부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비계수가 높은 서민ㆍ중산층의 소득이 늘어야 내수경기에 보탬이 된다. 시장개방ㆍ규제완화는 재벌과 외국자본 위한 것 두 번째 신자유주의 정책은 규제 완화와 자본시장 개방, 그리고 공기업 민영화다. '규제완화'란 정부가 공공이익이나 국민경제를 명분으로 기업의 활동에 제한을 가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본시장 개방'은 금융기관과 기간산업에 대한 외국인투자제한 같은 규제를 없애고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라는 것이다. 공기업 민영화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 모두 '97년 외환위기 당시 미국 금융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요구했던 것들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IMF의 요구에 충실히 따랐다. 그 결과 10대 선도은행의 외국인 지분은 70~80%가 되었고, 삼성전자, SK, 현대자동차의 외국인 지분도 50%를 넘었다. 민영화된 포스코의 외국인 지분은 60%를 넘는다. 외국 투기자본까지 마음대로 기업을 인수해 단기차익을 남겼다. 외국자본이 들어오고 정부의 규제가 약해지자, 금융기관과 대기업들은 주주이익과 단기실적에 치중했다. 자연히 고용과 투자는 줄었다. 서민경제나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없어진 것이다. 비정규직 양극화 확산시킨 노동유연화 정책 세 번째 신자유주의 정책은 노동시장의 유연화이다. 이 또한 IMF의 핵심 요구다. 신자유주의 가치관의 핵심인 주주가치 실현을 위해서는 노동유연화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주식가치를 위해 단기실적이 중시되면서 정규직 일자리는 최소화돼야 했다. 그 빈자리는 저임금의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 장기투자나 고용문제,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 등 국민경제 전체를 생각하는 관점은 설 자리를 잃었다. 정부도 공기업 민영화와 구조조정 등 공공서비스 시장화에 앞장섰다.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비정규직의 확산이다. 노동계는 2006년을 기준으로 전체 임금노동자 1535만 명 가운데 비정규직이 54.8%(841만 명), 정규직이 45.2%(657만 명)라고 집계하고 있다. 노동부 기준에 따르더라도 비정규직의 비중은 2002년 27.4%에서 2006년 35.5%로 늘어났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도 2000년 73만 원에서 2006년 110만 원으로 벌어졌다. 차별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은 비정규직 해소에 역행하는 비정규직 3법을 통과시켜 이랜드 사태와 코스콤 사태를 자초했다. 저항하는 서민들은 공권력으로 때려잡고 네 번째 신자유주의 정책은 민중에 대한 강력한 공권력 행사다. 지난 10년 동안 신자유주의 경제ㆍ사회정책을 추진한 결과 우리 사회는 급속하게 양극화됐다. 소수 대기업과 선도은행의 주주와 임원들은 큰돈을 벌었다. 반면 중소기업은 더욱 어려워졌고, 중산층과 서민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빈곤층이 2배로 늘어났다. 이처럼 양극화와 빈곤으로 내몰린 노동자, 농민, 비정규직, 서민들의 저항을 강력한 공권력 행사로 때려잡자는 것이 신자유주의 공권력 정책의 핵심이다. 당내 경선에서는 졌지만 한나라당 박근혜 대선 후보의 '줄ㆍ푸ㆍ세' 공약이 신자유주의 정책의 전형이다. 줄ㆍ푸ㆍ세 공약이란 외국자본, 재벌ㆍ대기업집단,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줄이고, 각종 규제를 풀고, 노조 등 이에 반발하는 집단에 대해서는 강력한 공권력을 동원해 사회 기강을 세우자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20년 전 영국 대처 정부의 정책이다. 제조업을 황폐화시키고 고용을 악화시켜 영국 보수당마저도 반성하고 있는 정책을 지금 우리 사회에 적용하자는 것이다. 그동안 참여정부가 해왔던 정책과 무엇이 다른가? 한미 FTA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정판 이 모든 신자유주의 경제ㆍ사회정책의 결정판이 참여정부가 추진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한미 FTA의 본질은 민생과 공공성을 희생시켜 가면서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관세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한국의 법과 제도를 고쳐 한국경제를 미국경제의 하부구조로 통합시키는 것이 한미 FTA의 본질이다. 이를 통해 미국자본은 항구적으로 이익을 보장받고, 한국의 재벌과 특권층은 떡고물을 얻는다. 한미 FTA는 이런 불균등한 국제경제 구조를 제도로 고착화시키는 것이다. 미국자본의 이익을 위해 투자, 서비스, 지적재산권, 의료, 농업, 문화, 상당수 첨단 제조업 등 대부분의 국내산업은 피해를 본다. 농민, 노동자, 중소 자영업자, 경쟁력 약한 중소기업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OECD 개방과 IMF 개방이 가져온 지금의 고통도 견디기 어려운데, 한미 FTA로 훨씬 더 심각한 양극화와 빈곤화를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더구나 한미 FTA는 투자자-국가 제소제(ISD)와 같은 각종 강제조항을 통해 국민의 생명 보호를 위한 정책이나 양극화 해소를 위한 조세정책까지 가로막을 가능성이 크다. 대연정 반성한다면 한미 FTA부터 중단해야 노무현 대통령은 2년 만에 대연정이 오류였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대연정보다 더 치명적인 오류, 즉 한미 FTA를 추진한 오류에 대해서는 아직 말이 없다. 필자는 확신한다. 이대로 한미 FTA가 비준되면 노 대통령은 몇 년 안에 지금보다 더 큰 후회를 하게 될 것이다. 대연정은 열린우리당을 망하게 했지만 한미 FTA는 우리나라를 망하게 할 것이다. 필자가 한미 FTA를 반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은 망했어도 우리나라를 망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1994년 당시 멕시코 대통령이었던 살리나스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멕시코가 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결국 살리나스는 도탄에 빠진 멕시코 민중들의 분노가 두려워 미국에서 망명하다시피 살고 있다. 노 대통령은 살리나스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노 대통령의 반성은 대연정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참여정부가 추진해 온 신자유주의 정책 자체를 반성해야 한다. 노 대통령이 진실로 대연정을 반성한다면 당장 한미 FTA부터 중단해야 한다. 임종인/국회의원(무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