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살아있다
원주 귀래 사랑의 집 장아무개 씨에게 징역 3년 6개월이 선고됐다.
4일 이른 10시 30분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서 법원은 기소한 내용 대부분을 인정한다고 이같이 판결했다.
이날 공판에서 담당 판사는 △냉동고에 사체를 10년 이상 방치한 사체유기죄 △문신 등 상해죄 △감금, 삭발, 남녀 구분 없는 공동생활, 의사결정 배제, 교육받을 권리 침해 등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2중의 주민등록 등 사기·사문서위조·위조사문서행사 △미신고시설 ‘하나님의 복지법인 사랑의 집’ 운영에 대한 사회복지사업법 위반 등에 대해 유죄를 판결했다.
단, 폭행죄에 대해서는 피해자 3명 중 장성오 씨의 진술능력은 떨어진다고 판단해 장성민 씨의 진술을 주된 근거로 삼아 일부 유죄,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1심 판결에 대해 원주 귀래 사랑의 집 사건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아래 원주대책위)는 “법원의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라면서 선고 공판이 끝난 뒤 원주지원 앞에서 ‘원주 귀래 사랑의 집 사건 판결에 따른 대책위 입장 표명 기자회견’을 열었다.
▲경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이형숙 대표 |
이날 기자회견에서 경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이형숙 대표는 “헌법에서 명시한 인간의 권리가 과연 법으로 존중되고 있는지 묻고 싶다”라며 “아무리 공소시효가 지났더라도 장 씨에게 벌할 수 있는 것이 고작 3년 6개월인가”라며 분노를 표했다.
이 대표는 “이게 판사가 말하는 보편적 권리인가”라며 “장애인이라 자기표현 할 줄 모른다며 (장성오 씨 진술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 자리에 장 씨에게 폭행당하고 고통 받은 사람이 분명히 있는데 왜 그것은 인정하지 않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표는 “장 씨는 웃으며 법정을 나갔다”라면서 “우리와 같은 약자는 누구에게 기대고 누구에게 희망을 품고 싸워야 하나. 이젠 우리 식대로 싸우자.”라고 강조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사무국장은 “이번 재판도 비장애인 중심의 판단으로 이뤄졌다. 지적장애인 스스로 언제, 어떻게 고통당했는지 증명하고 기억해내야 했다.”라면서 “현행법 기준으로 장애인의 삶을 재단하고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이번에도 확인했다.”라고 이번 판결을 규탄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사무국장 |
박김 사무국장은 “판사 입에서 분명히 악의적, 고의적, 지속적이라는 말이 나왔고 지적장애인의 특성에 관해서도 이야기하는 듯했지만, 결과는 3년 6개월”이라며 “장 씨는 오늘 웃었고 우리는 오늘 울었다. 대체 누가 웃어야 하고 누가 울어야 하나.”라고 되물었다.
“장 씨는 오늘 웃었고 우리는 오늘 울었다. 대체 누가 웃어야 하고 누가 울어야 하나.”라고 되물었다.
박김 사무국장은 “이것이 이 사건만으로 끝나는 일이겠는가”라면서 “이 사건으로 장 씨가 3년 6개월 형을 치르고 나면 웃는 자들은 누구겠는가. 오직 시설 밖에 갈 수 없는 장애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장애인의 삶을 유린하고 있는 사람들이 웃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김 사무국장은 “원주시와 이 사회는 장애인을 위해 무슨 일을 했나”라면서 “독버섯처럼 장애인의 피를 먹고 자란 장 씨를 그냥 둘 수 없다. 현행법으로 할 수 없다면 우리는 또 다른 싸움으로라도 장 씨를 처벌하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여 비판했다.
원주대책위는 성명서에서 “우리는 어떠한 형벌로도 장 씨의 죄를 다 물을 수 없다고 본다. 그러나 장 씨에게 선고된 형은 너무나도 부족하다.”라면서 “장 씨는 장애아를 가진 부모의 마음을 속여 장애아를 수십 명이나 모집하고도 증언으로 확보된 사람만 8명의 장애아를 죽이거나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했고, 모진 고문과 학대를 가하였고, 부모도 만나지 못하게 했다. 이러한 인면수심의 파렴치한 장 씨에게 오늘 선고 결과는 너무도 관대할 뿐”이라고 밝혔다.
대책위는 “장 씨 사건을 통해 사법부의 인권 감수성을 기대하는 판결이 나오기를 촉구하였지만, 이번 판결은 검찰 및 사법부의 장애인에 대한 낮은 인권 수준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것”이라며 국가의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책위는 “검찰은 장 씨가 정당한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항소하기를 강력히 요구한다”라면서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제대로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장애인에 대한 복지가 가족의 문제로 치부하게 된다면 제2, 제3의 사랑의 집 사건은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 씨의 선고를 전해 들은 한 장애인 활동가가 분노에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
이번 선고에 대해 장애인계는 분노와 참담함을 금치 못했다.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명애 대표는 “이번 판결이 ‘장애인은 살지 말라, 장애인은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아 너무 화가 났다”라며 “힘없이 살아야 하는 이 현실이 정말 너무 싫다”라고 밝혔다.
박 대표는 “오늘 피자집 아르바이트 여대생 성폭행 사망사건에 대해 법원이 징역 9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항소심에서 피자가게 사장에게 징역 7년으로 감형한 뉴스를 들었다”라며 “나쁜 사람을 벌하지 않는 법이 대체 무슨 소용 있으며, 힘없는 사람은 늘 당해야만 하는지 정말 물어보고 싶다”라고 전했다.
박 대표는 “이러면서 무슨 법치국가고 법이 살아 있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라면서 “그런 사람을 벌할 수 있는 잣대가 없다는 게 너무 억울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노가 솟구친다”라고 밝혔다.
민들레장애인야간학교 박길연 교장 또한 이번 사건에 대해 “더는 무슨 말을 한다는 게 구차할 정도”라며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다”라고 전했다.
박 교장은 “그 안에서 생활한 장애인들의 삶을 (장 씨는) 송두리째 빼앗아 갔다”라며 “이는 살인죄에 가까운데 어떻게 고작 3년 6개월 형을 내릴 수 있단 말인가”라고 분노했다.
박 교장은 “그 안의 거주인을 사람으로 생각하고 내린 판결인가”라며 “그들이 장애인이 아닌 일반 시민이었어도 이 정도의 형을 내릴 수 있었을까 되묻지 않을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박 교장은 “사랑의 집 사건 피해자들의 삶은 누가 보상하고 책임질 것인가”라면서 “이번 사건에 대해 장애인과 시민사회단체는 함께 대응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선고로 사체유기죄가 인정되면서 10년째 병원 냉동고에 방치된 장성희 씨의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됐다. 원주대책위 임소연 활동가는 “7월 안에 약식으로라도 조속히 장례를 치를 것”이라며 “이번 선고에 대해 대책위는 항소를 준비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