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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제령 사무소 1
게시물ID : panic_490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미스키튼
추천 : 31
조회수 : 2344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05/31 17:40:13

요 근래 한 달간 빠진 살이 10kg은 족히 넘는 것 같다.
여자들은 살이 빠지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지만, 나만큼은 예외다.
40킬로도 못 넘기는 나의 키는 169이다. 사실 170이지만, 너무 커 보인다는 느낌이 싫어서 늘 169라고 말하고 다닌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살짝 날씬한 정상 체형이었는데, 졸업식을 앞두고 친구들과 졸업 여행을 다녀온 후로 서서히 계속 살이 빠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규칙적으로 빠지던 살이 최근 한 달을 중심으로 더욱 갑자기 훌쩍 빠져버렸다.
처음에야 살이 빠진다는 즐거움으로 공포를 느낄 순 없었지만 지금은 너무 무섭다.

 

엊그제 친구에게서 같이 찜질방을 가자는 전화를 받았다. 친구는 이번 주말에 모처럼 친구들끼리 모여서 수다도 떨면서 살도 빼자며 신나게 떠들어 댔지만, 나는 살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달리 거절할 핑계가 없어서, 그냥 간다고 했다.

 

‘따르르르르-‘
시계의 자명종이 시끄럽게 울린다. 살이 급격히 빠진 탓인지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너무 힘들다. 똑바로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어 몸을 돌려 엎드린 채 팔꿈치로 침대를 받치고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는데 팔꿈치가 시큰거린다. 마치 칼로 뼈를 도려내는 느낌이다. 겨우 몸을 일으켜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는데 옷감이 마치 면도날처럼 내 몸을 스쳤다. 게다가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져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핸드폰과 지갑을 챙겨 주머니에 넣었을 때는 그 쪽으로 몸이 휘청거렸다. 그래서 지갑에서 돈만 꺼내 주머니에 다시 넣고, 핸드폰은 그냥 두고 가기로 했다.

 

우리 집에서 찜질방까지의 거리는 버스로 두 정거장이었다. 친구들은 모두 동창이라 거의 비슷한 동네에 모여 살았고 그러다 보니 만나는 곳도 거의 집 근처로 한정되어 있었다. 버스에 타려는데 다리가 맘처럼 움직여주질 않았다. 간신히 계단을 올라서 요금을 내고 그냥 문 가까이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내 뒤로 여자들 몇 명이 더 탔는데, 여름이라 가슴이 파인 옷을 입고 있었다. 그 사이로 흘끗 비치는 살을 보고 나도 모르게 군침을 흘렸다.

 

“야야~ 니가 제일 늦게 왔다야!”
“얼굴 보기 힘드네~ 어머, 살이 더 빠진 거야?”
정거장에서 내려서 찜질방까지 오는데 20분이나 걸렸다. 평소라면 오는데 오 분도 안 걸리는 시간이지만 오늘따라 너무 힘들다. 몸이 무너져간다는 기분이 들었다. 대충 웃음으로 인사를 얼버무리고 찜질방에 들어가려고 다들 옷을 갈아 입는데, 평소엔 몰랐는데 친구들의 몸이 너무 맛있게 보였다. 나는 너무 배가 고팠고, 그들의 살은 너무나 탐스러웠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비명소리가 기분 좋게 귀를 찌른다. 나는 옆에서 옷을 갈아입던 윤정이의 가슴에 손톱을 쑤셔 넣었다. 먹지 않고서는 참을 수가 없었다. 무작정 뜯어내 입으로 가져갔다. 황홀한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가슴을 다 뜯고 배와 팔, 엉덩이, 어디든 살이 붙어있는 곳은 다 뜯어냈다. 마치 몇 년 만에 밥을 먹는 사람처럼 걸신이 들린 듯 먹어댔다. 내 배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너무나 만족스럽게 다 소화를 시켜냈다. 도망을 가려는 윤정이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한 손으로 열심히 계속 살을 발라냈다.

 

*

 

“……….그래서.. 그날의 소동은 따님께서 벌이신 일이었군요.”
“ …네…”
“ 지금 따님께서는 어디 계시죠?”
“ 병원에.. 보내기엔 세간의 눈이 너무 많아.. 이 집 다락방을 방음 개조 해서 그곳에서 지내게 해 두었습니다.”
“ 우선 따님을 만나봐야 그 다음 진전이 있겠군요.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이 집은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별로 느낌이 좋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보통 일반 고급 빌라처럼 보이고, 외관이나 내관 모두 훌륭한 인테리어와 밝은 실내, 그리고 값비싼 고가구가 조화를 이루어 별 다섯 개짜리 호텔 스위트룸 보다 더 고급스럽게 느껴지긴 했지만.. 온 집안을 음기가 지배하고 있었다. 사실 웬만하면 이런 일은 맡고 싶진 않았지만, 의뢰금의 액수를 생각하면 거절 할 수 없었다. 이런 집은 내 입막음을 위해서라도 돈을 후하게 줄 것이 확실하니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도중에도 바닥에 무겁게 가라앉은 음기는 계속 내 발목에 채이고 있었다. 아마 집 식구들 중에 발길에 음기가 채여 휘감는 느낌을 받은 사람은 분명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 뼛속을 통과하는 소름 돋는 기운을 느끼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여기서 계속 살고 있진 않을 테니까 말이다.

 

두 개의 층을 합치고 내부를 복층으로 다시 개조해 실제로 쓰이는 층은 모두 합쳐 3층이었다. 현관을 들어서면 오른편으로 쭉 올라가는 나무 계단이 보이고 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중간에 2층으로 통하는 짧은 복도가 있었고 계속 올라가서 3층에 들어서니 짧은 복도가 두 갈래로 갈려 있었다. 한쪽은 이 집 아이들이 쓰는 작업실 - 화실과 서재를 겸했다. - 이 있었고 다른 한쪽은 비스듬히 두 계단 정도로 올라가게 되어 있어서 그 곳이 다락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 곳인가요?”
“네. 하지만 들어가려면 우선 그 아이를 잠재우는 게 훨씬 나을 겁니다. 잠시만요..”
그 아버지라는 남자는 작은 스프레이 병을 흔들어 딴 후, 문 옆에 만들어 놓은 작은 배식 창구로 굴려 넣었다.
“굳이 이러실 필요까진 없을 것 같은데요..”
“……….”

입을 꾹 다문 채 방문을 뚫어지듯 응시하는 남자의 눈빛은 마치 사냥터에 나선 사람처럼 비장했다.

 

그 사람이 말하지 않아도, 난 이미 충분히 그 아이의 상황을 짐작했다. 나무문은 이미 많은 피로 물들어 군데군데 얼룩이 배었고 문 틈에는 손톱으로 긁어서 만들었는지 작은 구멍이 있었다.

그리고 나를 응시하는 그 아이의 눈동자도 보였다.

 

그 눈과 마주치고 있길 수초간. 갑자기 그 아이의 눈이 감기며 구멍에서 눈이 사라졌다.

 

“후…..”
그 아이가 잠든 순간, 내 발목을 잡아 끌던 음기도 반쯤은 사그라 들었다.

 

“들어가시죠.”
남자는 아직도 긴장을 풀지 않은 얼굴로 문을 열었다.

 

“은지야. 아빠다.”
새삼스레 아빠라고 말하는 투가 아이러니 했지만, 그냥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남자는 쓰러져있는 아이에게 가서 목구멍으로 억지로 약을 털어 넣었다. 아마도 저건 루미날이겠지. 철저하게 하는 모습이 아마 그 동안 저 아이에게 톡톡히 당한 모양이었다.
아이가 의식이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 한 다음, 남자는 창문으로 가서 블라인드를 열었다. 세상에.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마를 수가 있지. 뼈란 뼈는 다 드러나 있었고 내장의 윤곽까지 드러나 보였다. 아이는 알몸이었는데 전혀 성인의 몸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이 지경입니다. 벌써 몇 번이나 탈출 시도를 했고, 그때마다 늘 집안의 누군가를 먹으려고 하지요.”

 

빛이 들어와 방안의 윤곽은 뚜렷해졌다. 낡은 매트리스와 보푸라기가 잔뜩 일어있는 국방색 담요. 아무리 귀신 들린 애라곤 하지만 이런 잠자리는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심결에 매트리스를 살짝 눌러보니 축축한 습기 냄새와 진한 피 냄새가 어우러져 피어 올랐다. 벽지는 핏물과 배설물로 얼룩이 져 있었고 벽 곳곳에는 길게 늘어진 핏자국이 있었다. 아마도 손톱으로 무작정 긁은 모양이었다. 욕지기가 나오려 했으나 꾹 참고 아이의 몸 구석구석을 살폈다. 얼굴, 몸, 다리…… 어느 한군데 영이 들어와 씌운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물린 흔적도, 흔한 생채기 하나 없었다. 너무 깨끗하다 보니 오히려 더 의심이 갈 지경이었다.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보았다. 역시 흔적은 없었다.

 

“이번 일은 아주 재미있겠군요.”
“정상으로의 회복은 가능한 겁니까?”
“확답은 할 수 없지만 80% 이상의 가능성은 보이네요.”
“성공만 해주신다면, 보수는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흠……”

아무리 봐도 이건 빙의였다.
하지만 들어간 흔적이 없으니 어떤 녀석이 씌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도박을 해야겠다.

 

“필요한 게 있습니다. 준비시켜 주실 수 있지요?”
“물론입니다.”
“오늘 지금, 이 아이의 지난 일 년간의 행적에 관한 세세한 기록을 담은 서류를 주시고, 내일까지 사람 한 명을 준비시켜주세요.”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을..?”
“대충 죽여도 뒤탈 없을 사람 말입니다.”

 

*

 

나는 뛰어난 영능력자가 아니다. 어느 날부터 귀신이 눈에 하나 둘 보기 시작하면서, 내 특유의 자신만만한 성격, 겁내지 않는 배짱, 그리고 영을 보는 능력이 맞물려 일종의 ‘후천적 노력에 의한 영능력자’가 되었다. 유전적으로 보나 생활로 보나 내가 영능력자가 될만한 자질은 눈곱만큼도 없었으니, 이 길에 들어선 건 100% 우연이라고 봐도 좋다. 아니, 필연인가?


하지만 의외로 나에게 적성이 잘 맞았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격으로 인해 나는 영능력에 의지하기 보단 현실적 감각으로 영을 다뤘기 때문에 이 일은 거의 사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게다가 요즘 사람들은 별것도 아닌 쓰레기 잡령을 가지고 호들갑 떨기를 좋아해서 쉽게 쫓아주고 생색내며 돈 벌기엔 이보다 더 좋은 직업은 없었다.

 

“이은지…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학을 앞둔 새내기 아가씨…”
프로 파일에 따르면, 은지는 졸업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당시 살이 빠진다고 신나 했었고, 그리고 친구들과 어울려 잘 놀러 다니기도 했고, 대학 입학식을 앞둔 달에 발작(은지의 아버지는 그 사건을 발작이라 불렀다)을 일으켰다……는 게 대충의 간략한 내용이었다. 그 최초의 발작 사건 이후로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사람에게 달려들어 뜯는 발작을 거의 규칙적으로 일으켰고, 여러 번 의사들에게 의뢰를 했었으나 모두가 한두 군데를 뜯긴 채 도망을 가서 결국 몇 달이 넘게 방치 된 채 있다가 나에게 의뢰가 맡겨진 것이었다.

“깨끗하게 발라 먹었군.”
파일에 클립으로 그 ‘발작 사건’의 사진이 끼워져 있었다. 정육점에서 아무리 소를 부위별로 잘 발라내어도 저 정도로 잘 바르진 못할 거 같았다. 확실히 은지에게 붙어있는 영은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서류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았지만 의심 가는 부분은 졸업 여행뿐이었다. 행선지는 서해의 한 섬이라고만 되어 있을 뿐 자세한 언급은 없었다. 그에 대해 조사를 하려 해도 같이 동행했던 친구 둘 중 하나는 은지가 먹어버렸고 다른 하나는 그 모습을 보고 정신이 나가버렸기 때문에 더더욱 장소는 알 길이 없어졌다.
“흠…… 정말 도박을 해야겠군.”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지만, 나는 그 영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확률은 반반이겠지.

수화기를 들어 절친한 친구인 은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뚜르르르르-

…..오늘따라 신호음이 길게 느껴지네.
“여보세요?”
“나야.”
“어, 어쩐 일이야? 물건들은 저번 보름에 받아갔잖아?”
“그게 좀 모자랄 것 같아. 내일 당장 써야 하는데. 혹시 저번 달 물량 중에 남는 거 좀 있을까?”
“글쎄.. 좀 찾아봐야겠는데? 아니다, 우선 와봐. 같이 찾지 뭐.”

 

은수의 표면적 직업은 종교 관련 물건을 다루는 유통 업자다. 불교, 천주교, 기독교, 샤머니즘 등등을 가리지 않고 불상, 동상, 묵주, 염주, 부적 등등 갖은 종교적 물건을 대량 유통시키는데, 그 중에선 장물이라 불리는 신기 들린 물건들이 종종 나온다. 은수는 어릴 때부터 약간의 영능력이 있었는데, 그 능력으로 신기 들린 물건들을 가려서 나 같은 영능력자에게만 따로 파는 것이다. 물론 보통 사람에게도 팔 수는 있겠지만, 판다 해도 일반인은 그 물건의 신기를 이기지 못하고 어떻게든 결국엔 버리게 되어 물건 속의 신기는 떠도는 잡령이 되어버리는 게 다반사고, 결국 그런 잡령들이 내 일거리가 되어준다. 이 세계는 이렇게 괴이한 먹이 사슬로 연결되어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서 와”
여느 때처럼 은수가 창고 뒷문을 열어 두었다. 낡은 책 냄새가 풍겨왔다.
“오늘은 좀 바빴어. 옛날 종교 서적들이 많이 들어왔거든. 소매점에 넘겨야 하는데…… 영 아까워서 그냥 내가 다 가져버릴까 고민 중이었어.”
“그냥 네가 가지고 나중에 나에게도 빌려주는 건 어때?”
“뭐, 것도 좋고. 차 마실래?”
“좋지. 아무거나 대충 줘.”
적막한 창고에 찻물 따르는 소리가 울렸다.

“……그러니까.. 상대가 어떤 놈인지도 모르고 지금 대충 덤벼본다는 말이지?”
“대충은 아냐. 준비는 단단히 하려고.”
“그렇게 한가지 욕구에 매달리는 놈들이 생각도 없고 무식해서 더 위험하다는 거 몰라?”
“……….”
“하긴. 넌 돈이라면 사족을 못쓰니까.”
“그러니까 금줄 좋은 걸 싸게 팔란 말야.”
“못살아 정말…… 차 다 마시면 줄게. 대신, 그거 가져오는 거 잊지마.”

 

은수가 준 금줄은 상급의 좋은 물건 이었다. 늘 좋은 물건을 주긴 하지만 한 달치 물건을 다 산후에 좋은걸 주는 일은 드물었다. 보통 가게에 유통되는 물건 중에 신기가 들린 물건이 들어올 확률은 전체 물량의 5% 정도도 안되었다. 그래서 한 달 동안 그 5%의 물건들을 모아야 겨우 팔 정도의 분량이 나오기 때문에 주로 마지막 보름날 물건을 팔고는 한 달간은 팔지 않는다. 팔더라도 파나마나 한 싸구려 물건들이기 때문에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사는 것이다. 아마 이 금줄은 ‘비상금’같은 용도로 숨겨둔 것 같았다. 예상외의 좋은 물건을 받았더니 절로 기합이 들어갔다.

 

*

 

뚜르르르르- 뚜르르르르-

전화벨이 계속 울려댔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전 10시가 넘어있었다.
“아… 누구야…”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낚아챘더니 수화기만 들리고 몸통은 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져 부서지는 소리를 냈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준비는 다 되었습니다. 언제쯤 오실 예정이십니까?”
“아… 이따 오후 두 시쯤.. 갈게요..”
“네. 그럼 시간 맞춰 준비 해 놓겠습니다.”

 

안 떠지는 눈을 비벼 뜨고 대충 씻은 다음 가는 길에 한번 더 훑어 볼 요량으로 프로 파일을 들고 차에 탔다.

 

텅!

 

시동을 거는 데 묵직한 굉음과 함께 무언가 조수석으로 달려들어와 계속 부딪혔다.
“뭐, 뭐야 도대체!”
자세히 보니 열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 남자애였다. 머리에 피가 나도록 계속 조수석 유리에 머리를 박아대며 손톱을 긁어대고 있었다. 멀리서 발견한 경비원이 황급히 뛰어와 아이를 잡고 말렸지만 오히려 아이가 경비원의 팔을 뜯어 먹어버리는 바람에 일만 커졌다. 그 아이는 즐기고 있었다. 경비원의 팔뚝 살을 뜯어먹으면서 약간은 얌전해졌고, 심지어는 만족스러운 미소까지 지었다. 비명을 지르며 아이를 때리던 경비원은 아이가 입맛을 다시며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는 얼굴이 하얘지며 도망을 갔다.

“잠깐… 혹시 저 애..?”

 

뭔가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나는 핸드폰으로 은지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네. 이석훈입니다.”
“은지 아버님! 은지는 지금 뭘 하고 있죠?”
“은지요? 지금 제가 마취제로 재워놓았는데요. 아직 오시려면 멀었나요?”

 

맙소사. 설마 여기 저기 붙어서 옮겨 다니는 식인귀인건가?

 

“지금 갑니다. 금방 가요”
나는 황급히 전화를 끊고 시동을 걸었다.
멀리서 꼬마 아이가 한 손에는 경비원의 살을 뜯으며 뛰어오고 있었다.
“좋아, 나를 노린다 이거지……”
시동을 걸고 최대 속도로 엑셀을 밟으며 은지네로 향했다. 점심때라 그런지 약간은 차가 막혀서 중간중간 차를 세울 때마다 새로운 얼굴의 사람들이 번갈아 나를 뜯어먹으려 달려왔다.
“젠장할. 어디 누가 이기나 해보자. 내가 이정도 깡도 없이 이 일을 하는 줄 알았냐!”

앞 유리에 튀긴 피로 운전이 힘들 지경이 되자, 겨우 은지네 도착할 수 있었다. 저 멀리서 뛰어오던 옷에 피칠갑을 한 중년 남성이 풀썩 쓰러졌다. 아마 지금쯤 은지가 깨어있겠지.
“본격 대결을 하자 이거지..”

 

딩동-

“누구세요?”
“제령 사무소에서 왔습니다.”
“아, 사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어서 들어오세요”

 

음기는 여전히 발에 채인다. 아니, 전보다 더 짙어진 것 같다.
가정부의 안내로 다락으로 올라가려는데 마른 기침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다.
“누가 편찮으신가 봐요?”
“아, 저희 사장님 어머님이세요. 원래는 정정하셨는데 요 며칠 사이에 갑자기 흰머리가 느시고 어제부터는 몸이 아프시다며 계속 자리보전하고 계시네요. 은지아가씨를 참 이뻐하셨는데……”
“잠시만요, 그 분 방으로 안내 좀 해주시겠어요?”

 

가정부가 안내한 방은 2층의 맨 안쪽, 복도 끝에 있었다. 다가갈수록 마른기침 소리는 짙어졌다.
문 앞에 서자 방안에서 흘러 나오는 퀘퀘한 냄새로 머리가 멍할 지경이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예상대로 잡령과 음기가 범벅이 돼서 모여 있었다. 짙은 색 커튼이 쳐져 있어 방안은 어두웠다.

“네 이년!!!!!!!!!!”
그 노인은 나를 보자마자 소리를 질러댔다
“저 잡년이 감히 내 손녀를!!!!”
“꺄아아아아아악”
노인이 나를 잡기 위해 일어서면서 가정부에 걸려 넘어졌다. 그 노인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였다. 아마도 스스로 은지의 무서운 ‘식욕’을 위해 몸을 희생했겠지. 몸 곳곳의 뼈대가 하얗게 드러나 기괴함을 더했고 같이 넘어진 가정부 위로 피가 흘러내렸다. 방에 들어오기 전에 금줄을 쳤어야 했는데. 후회해봤자 소용없지만. 나는 재빠르게 넘어진 노인 위로 금줄을 둘러 묶었다. 얼결에 가정부도 같이 묶였지만 일이 끝나면 다 해결될 일이니까 재빨리 방을 빠져 나왔다.

 

이미 전에 왔던 터라 쉽게 다락을 찾았다. 문 앞에는 은지 아버지와 다른 한 사람-오늘의 희생양-이 서 있었다. 문 앞에 꽁초들이 수북이 있는 걸로 봐서는 꽤나 초조한 모양이었다.
“은지가 깨어났어요.”
“네. 알고 있었습니다.”
“저…저는 은지를 위해서라면.. 저기.. 뭐라도..”
웬 샌님 같은 남자가 갑자기 껴들며 말을 끊었다. 이게 무슨 사랑을 위한 희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 내 자네만 믿네.”
“서…성공하면.. 저번에 말씀하신…그…그저…은..”
“음. 내 약속하지.”
은지 아버지가 무얼 약속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그 사람은 이 사람이 결국 죽을 거라고 예상을 하고 큰 약속을 한 듯싶었다. 난 크게 한숨을 내쉬고, 부적을 꺼내 금줄에 틈틈이 감아 다락문 위편에 걸고 내 양 손목에 부적을 꼬아 감았다. 이 조치가 식인귀에 효능이 있는지 확신은 없지만, 최소한의 도움은 되어 줄 것이다.

 

“자, 문을 열겠습니다, 하나.. 둘.. 셋!! ”

 

셋 소리와 함께 벌컥 문을 열었다. 여는 순간 안에서 도저히 토악질을 참을 수 없게 만드는 진한 피 내음과 미끈한 창자들이 미끄러져 나왔다. 안은 여전히 어두웠고, 방 모퉁이에 은지가 눈을 번뜩이며 살점들을 주어먹고 있었다.


“배가 고파… 배가 고파…”


하루 사이에 엄청나게 살이 쪄버린 은지는 계속 손톱으로 바닥에 흩어진 살점들을 긁어 모아 먹고 있었다.


“우..우욱”
아무리 이런걸 일로 하는 나지만, 정말 토악질이 날 지경이다.
“배가 고파… 배가 고파….”
“젠장! 어서 죽어버려! 이 식인귀 새끼!!!”

 

나는 비위가 틀려 손에 들고 있던 성수를 마구 뿌려댔다. 은수는 이렇게 마구잡이로 기준 없이 각종 종교 물품을 다 쓰는 날 보고 그러다 부작용으로 죽어버릴 거라고 했지만, 나는 어쩔 수가 없다. 정통 영능력자가 아니니까. 내 스스로의 개발해서 만든 방법밖에 길이 없었다.

 

“배가 고프다니까!!!!!”

 

은지는 나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은지 아버지와 눈짓을 한 후, 그 남자를 앞으로 들이 밀었다.
은지가 뜯어먹기 위해 달려오는데 정수리에 또 하나의 얼굴이 나타나 뜯어먹을 준비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저거다!’


나는 잽싸게 오른 손으로 정수리 바로 위에 어려있는 기운을 낚아챘다.
“아아!”
발목이 시큰거렸다. 그래도 놓칠 수 없어 손목을 비틀어 머리에서 그 기운을 뽑아냈다. 기운이 뽑히면서 은지의 몸은 다시 어제처럼 말라갔다.
“배가 고프단 말이야!!!!!”
“아! 젠장..”
오른손으로 너무 힘을 쓴 탓인지 오른쪽 손목을 감고 있던 꼰 부적들이 작은 불꽃과 함께 타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뜨거움을 참을 수 없어 왼손을 옮겨 양손으로 기운을 잡아 끌었다.


몇 분을 씨름 한 끝에, 결국 영이 나왔다. 나는 손목에 남아있는 부적을 펴서 영을 감쌌고, 그 영은 힘을 잃고 눈에 띄게 작아져 버렸다.
내 오른 손은 화상을 입은 것처럼 까맣게 그을려 있었지만 부적 덕택인지 크게 아프지는 않았다.

 

“아마 이 녀석은 은지의 몸에 기생하면서 살을 먹다가 부족하니까 밖으로 나온 것 같습니다.”
내 손에 있는 부적으로 돌돌 말린 작은 오재미 크기의 식인귀를 가리키며 말했다.
은지의 아버지는 연신 나에게 감사했지만,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아마도 옆에 있는 저 남자와 한 약속 때문인 것 같다.
무슨 약속인지는 모르지만, 아마 꽤나 난처한 모양이었다.

 

“은지에게 맛있는 음식 많이 챙겨주시고, 수고비는 계좌로 넣어주세요.”

 

여전히 허리를 굽실거리며 고마워 하는 은지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나는 집을 나섰다.
한참을 가다가 문득 은지 할머니와 가정부가 떠올랐지만, 굳이 돌아갈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내가 감은 금줄 자체는 귀신이 사라진 이상 손쉽게 풀 수 있는 물건이니까.

 

*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은수는 열심히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야, 네가 말한 거 가져왔어.”
“오오, 고마워!”
“다음에 또 일 있을 땐 알지?”
“그럼!”

 

은수는 고마워하며 벽장에서 붉은색 망토를 꺼내 둘러 입고 도마와 영도를 꺼내 내가 건네 준 오재미 모양의 식인귀를 잘라 한 조각씩 옆에 쌓아둔 영물에 봉인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이번 달도 넉넉하게 채우겠어.”

 

이 것이 바로 나의 동업자 은수가 가게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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