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서 시위가 진행되고 있을 시각에 집에서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는 데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행동한다고 반드시 역사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나 행동하지 않으면 역사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신의 시간과 기회비용을 투자해 직접 행동에 나선 수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표하며 마음으로 응원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이 큰 틀에서 같고, 따라서 그들의 행동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나는 무임승차자가 되기에, 그래서 부끄럽다. '오늘은 몸이 안 좋아서'라던가 '예전에 두어 번 나갔으니까'등의 핑계를 대며 스스로 위안하고 있지만, 그래도 여기저기서 시위가 진행되고 있을 시각에 집에서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는 데에, 그래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ㅡ 그러나 '미친 소'는 없다
문제의 핵심은 광우병이 아니다. 광우병이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이것이 사람들을 떨쳐 일어나게 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키워드라는 점과,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또한 물타기에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미친 소'는 없다.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이미지로서의 '미친 소'는 없다. 나는 '미친 소는 없다'고 믿는다. 나는 차라리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로또 1등 당첨되어 돈 찾으러 가다가 벼락맞아 죽을 확률'이라는 정인교(이하 인명에 호칭 생략)의 말이, 'SRM 제거하면 광우병 걸린 소를 먹어도 안전'하다는 심재철의 말이 그나마 진실에 좀 더 가깝다고 본다. 그러나 나는 "그렇다면 당신은 'SRM이 제거된 광우병 걸린 소'의 고기를 먹겠는가?" 라는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말과 행동이 다른 위선자이며 거짓말쟁이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광우병 파동과 관련하여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봤을 '사전예방의 원칙'에 따른 행동이기 때문이다. 때문에,'대체로 안전할 것으로 생각되나 100%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면서 국제 수준의 최소한의 안전 기준(30개월 미만, SRM 제거 등)마저도 설정하지 않은 이번 쇠고기 협상은 '사전예방의 원칙'에 어긋난다. 또한, 이른바 '검역 주권'과 관련된 내용들(도축장 선정, 미국에서 BSE 발생시의 대처)에 있어서 협상단으로 대표되는 정부는 '사전예방의 원칙'에 대한 개념이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그 원칙을 지킬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래서 이번 쇠고기 협상이 잘못된 협상이라고 생각하며, 장관의 고시 강행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민건강에 있어서 핵심적인 원칙에 대한 개념이 없는 정부, 그리고 그러한 정부의 수준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협상 결과. 이것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다. 물론, 광우병 위험성에 대한 논란에서 한우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안다. 그러나, '한우의 위험성과 관련하여 미국 소에 대처하는 우리의 바람직한 자세' 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글에서 너무나도 많이 언급되었을 테니, 그리고 내가 하려는 이야기의 핵심이 아니니 여기서는 생략한다.
ㅡ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하는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한 광우병이, 만약, '조금씩 기력이 쇠해지며 병이 몸을 잠식함에 따라 서서히 죽어가는, 하지만 정신적인 능력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며 가끔 놀라운 영감을 주기도 하는, 그리고 치료법은 없지만 아주 가끔 저절로 치유되기도 하는' 그런 병이었다면, 지금 보고 있는 것과 같은 대규모 시위는 가능할까? '불사의 프리온, 미국소는 미친소, 한국인은 광우병에 약해'가 아니라 '미국 쇠고기 먹고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낮지만 총체적으로 문제가 많은 협정'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면 지금 보고 있는 것과 같은 대규모 시위는 가능할까? 대다수의 사람들을 행동하게 하는 구호, 마음에 확 와 닿으며 외치기도 쉬운 구호와 진실에 가까운 과학적 사실과의 괴리. 각자는 여기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전국 곳곳의 '광장'에 운집한 사람들을 '선동에 놀아난 사람들'로 규정하고, '배후세력'을 찾아 소탕하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그들이 말하는 것이 과학적인 사실이 아니므로?
우리는 언제나 모든 정보에 대한 접근이 가능한 상황에 있는가? 우리는 언제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는 정보를 찾고 그 정보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가? 우리는 언제나 그렇게 얻은 정보에 입각하여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가? 정보에 대한 완벽한 접근성, 정보에 대한 완벽한 해석 능력, 완벽하게 합리적인 판단력. 경제학에서 완전경쟁 시장 모델을 그릴 때나 가정할 법한ㅡ즉 현실에 존재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ㅡ전제들을 왜 대중에 요구하는가?
그래서 정부 및 대통령, 집권여당 그리고 그들과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그래서 선동이고, 그래서 배후세력을 잡아내면 당신들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현 상황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는가? 대통령이 기독교인이니 성경에 나오는 표현을 인용하여 묻는다. '진리가 그들을 자유케 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음은 오히려 당신들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른바 '잃어버린 10년'내내 자행되었던 반대를 위한 반대, 말바꾸기, 언론에 의한 사실 왜곡사례, 그리고 대선과 총선의 결과를 통해 '진리만으로는 그 누구도 자유롭게 할 수 없음'은 당신들이 더욱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도대체 당신들의 행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당신들이 하는 것은 괜찮으나 반대세력이 하는 것은 안 되는가? 그렇다면 당신들의 이중잣대부터 집어치워라. 아니면, 이제 선동은 좋지 않은 것이란 생각이 드는가? 그렇다면 당신들의 행태에 대한 반성부터 하고 비판하라. 어느 쪽이든 당신들은 선동 운운할 자격이 없다.
ㅡ '순수함'이란 무엇인가?
네이버 백과사전에는 '선동'이 '문서나 언동으로 대중의 감정을 부채질하여 일정한 행동대열에 참여하도록 고무·격려하는 행위'로 정의되어 있다. 수만의 사람들이 같은 시각에 한 장소에 모여 같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어떤 의미에서건 선동은 필수이리라. 그러나, 일부 언론에서 최근의 촛불집회가 순수하지 못하다고 평가하기에 앞에서 '당신들'로 지칭한 사람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이 말하는 '순수함'이란 무엇인가? 어떠한 제안자도, 주도세력도 없이 모이는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이명박과 집권여당의 다른 모든 정치행위를 배제하고 오로지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개정 반대만을 외치는 것을 의미하는가? 집단의 의견을 효율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그리고 가장 큰 효과를 위하여, 또한 안전과 질서 유지를 위해서도 지도부를 구축하고 조직을 형성하여 행동을 주도하는 집단은 필요하다. 또한, 무개념 포퓰리즘 정치집단이 아닌 이상 특정 집단의 정치행위에는 모든 행위를 관통하는 해당 집단의 일관된 이념적 지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요즈음의 집회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재협상' 외에도 '의보 민영화 반대', '대운하 반대', 더 나아가 '이명박 탄핵'의 외침까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집회가 순수함을 잃고 변질되었다고 말하나, 이는 자연스러운 변화일 뿐이다. 집권세력의 이념적 지향이 변하지 않는 이상, 쇠고기만을 막는다 하더라도 비슷한 사건들이 계속 터질 것이기에, 시위대가 외치는 구호의 변화는 당연하며, 그렇게 변화해야만 한다.
ㅡ 선동이면, 처벌해 봐!
그렇기에, 앞에서 '당신들'로 지칭한 사람들에게 단락을 바꾸어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선동은 잘못인가? 우리나라 형법에는 선전, 선동에 대한 처벌을 규정하는 조항이 있으나 그것은 내란 내지는 국가전복을 기도했을 경우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처리해야 하는가? 촛불시위는 내란 내지 국가전복을 기도하는 것이므로 사법처리할 수 있는가? 나는 선동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의한 것이든, 나와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의한 것이든 그것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한 데 모으는 데 필요한 중요한 수단이기에. 진리는 나를 포함한 모두를 절대로 자유롭게 하지 못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더 많은 정보를 찾고, 그것을 토대로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내공과 시간이 허락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것을 알리려 노력할 것이다. 선동은 자유이나, 그것에 동참할지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은 결국 자신이 가진 정보와 판단력을 바탕으로 그 자신이 내리는 것이기에. 그래서, 선동이라느니, 배후세력이 있으며 처벌해야 한다느니 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당신들과 같은 목소리를 내는 어떤 국회의원이 남긴 명언. 5월 16일의 국회 본회의장을 빛낸 그 아름다운 명언을 빌어 대답하겠다.
"선동이면, 처벌해 봐!"
ㅡ 마치며
그러나, 정치판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해석, 여과하여 전달할 주체들은 선동과 거리를 두라. 편법과 날치기가 존재하지만 국회에는 절차가 있고, 법에는 논리가 있기 때문에. 쇠고기 협상은 이미 지나갔으나 우리의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붙어볼 만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그 때가 오면 나가 논리로 싸워서 이기라. 그리고 법으로 막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