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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카가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게시물ID : humorbest_5470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러병진아
추천 : 52
조회수 : 4158회
댓글수 : 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10/18 00:12:45
원본글 작성시간 : 2012/10/17 23:00:13

 

 

얼마전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데, 친구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나는 가카가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라고 말입니다.

이명박 가카의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구속과 재판 과정의 사진은 매우 유명한 사진인지라 친구에게 "우리는 가카를 믿어야 한다."라고 말하긴 했는데...

저도 가카의 민주화 운동 관련 사건의 진실이 매우 궁금해지더군요.

심지어 이번에 공개된 위키리크스의 내용에도 이명박 가카의 감동적인 현대 입사에 대한 내용도 들어있더군요.

 

 

[뉴스타운] 박정희, 정주영에 “MB조심하라”했는데...


위키리크스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주영 현대 회장에게 이명박에 대해 '잘 지켜봐라'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사실은 '이명박을 조심하라'라는 말뜻이었는데, 정주영이 잘 못 알아듣고 '이명박을 잘봐줘라.. 즉 잘 돌봐줘라'로 오해해서 현대에서 고속 승진을 했다는 비화가 있다며 당시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보낸 외교전문에서 밝힌 내용입니다.

그래서 더욱 의혹이 증폭되는 가운데, 이번 <나는 꼼수다> 19회에서 '이명박 가카의 민주화 운동' 관련한 꼼수를 아주 낱낱히 이야기해주더군요.

정리해보았습니다.

 


공식적은 학력은 이렇습니다.

1954년 영흥초등학교 졸업

1957년 포항중학교 졸업

1960년 동지상업고 야간 졸업

1961년 고려대학 입학

1965년 고려대 경영학 학사(즉 고려대를 졸업했다는 말임)

1998년 한국체육대 명예박사

1999년 조지워싱턴대 객원연구원

2004년 국립 유라시아대 명예박사 및 서강대 경영학 명예박사

 


그런데 고려대 부분만 살펴보면 좀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1960년 동지상업고 야간을 졸업한 분이 갑자기 1961년에 고려대에 입학합니다.

당시 야간학교를 다녔다는 것은 공부를 못했다거나 날라리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집안이 어려워서 학비가 싼 야간학교를 다니며 직장생활을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랬는데 갑자기 대학교 입학?? 당시에도 대학은 우골탑이라고 불릴 정도였고 포항에서 다니려면 하숙비에 생활비에 만만치 않았을텐데...

뭐.. 암튼..

1961년 고려대에 입학한 이명박 가카께서는 1964년 6.3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 재판을 받게 됩니다.

이때 6.3시위는 6.3항쟁이라고도 불리는데 1964년 6월 박정희 정권의 한일협상에 반대하여 일어난 학생 주도의 민주화 운동입니다.

박정희 정권은 1964년 6월 3일 계엄령을 선포하고 한일국교정상화회담 반대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합니다. 그리고 이 계엄령은 7월 29일 해제됩니다. 
 


6.3시위로 체포된 이명박 가카는 이후 재판을 받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6개월만에 출소하게 됩니다.

다른 시위 가담자는 매우 오랫동안 복역하게 되지요.

심지어 1964년은 매우 엄혹한 시절이라 당시 인혁당 사건이 있었고 인혁당 사건 관련자 8명이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되었다가 바로 재판,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은지 24시간만에 사형이 된 초유의 사법살인이 자행된 때이기도 합니다.

이후 인혁당 사건은 조작사건으로 밝혀졌으나 박정희의 딸 박근혜에 이에 대해 인혁당 유가족에게 사과조차 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런 시절에 가벼운 징역살이를 하고 6개월만에 출소했다는 것부터다 매우 의심쩍은 일이라지요.

게다가 당시 함께 민주화 운동을 했던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명박 가카는 원래 시위를 주도하던 사람이 아닌데, 어느날 갑자기 보니 시위를 주도하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라는 증언도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당시 고대학보에서 이명박 가카께서 한 말이 대박이라지요.


"

한일협정에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건 아니다

반대하면 우리 경제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매판자본과 일본자본의 예속이 우려된다

지금 미국의 원조가 끊어지고 있는데 미국과 일본의 관계는 돈독해지고 있다.

그래서 일본과 국교정상화를 해서 미국 쪽의 원조를 우리쪽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

 

여기서 전봉주 전 의원이 한마디 거들었지요.

자신이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에 갑자기 튀어나와서 학생회장 하려고 깝치던 놈들이 얼마후 보니 '안기부' 들어가 있더라.. 뭐 이런 이야기...

게다가 당시 돌던 루머 중에는 '미국 및 일본과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중앙 정보국이 대학생들의 데모를 방조, 부추킴 했다는 말이 있다더라... 하는 말도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암튼 출소한 후 취직을 하지 못하던 이명박 가카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눈물의 감동 편지를 보냅니다.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잡혀갔는데 출소 후 취직이 안된다.. 뭐.. 이런 하소연 편지였던듯 싶습니다.

그 편지내용이 너무도 절절하게 감동적이었던지 청년 이명박에게 청와대 비서관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하네요.

"젊은이가 자기 힘으로 살려고 하는데 나라가 길을 막으려면 한 국가가 젊은이에 영원히 빚을 지는 것이다."

아.. 졸라 감동..

 

 

1965년 박정희 가카의 배려로 당시 굴지의 건설기업인 현대에 입사한 이명박은 이후 기관지확장증 폐결핵으로 면제를 받습니다.

여기서도 살짝 의문인 것이 원래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잡혀가면 출소하자마자 군대에 끌려가는데, 이명박 가카는 취직을 하게 되지요.

게다가 당시 기업에 입사하려면 군필 아니면 군면제가 확실해야 입사할 수 있었음에도 이명박 가카는 현대 입사 후에 같은 해에 면제 판정을 받게 됩니다..

심지어 현대에 입사하고나서 고려대 졸업까지 합니다.. 아.. 이건 또 뭐지..

가카께서 현대에 입사하고나서 학교를 졸업하는게 말이 안되는 이유가 가카는 그해 6.3시위로 구속 수감되어 기말고사를 보지 못했고 재판과 이후 수감 6개월 등등으로 인해 그 해의 학점은 나올래야 나올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1학기 기말고사, 2학기 수업출석이 모자라고,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안본 사람이 졸업을 했다???

좀 아리까리한 부분이지요.

그리고 박정희 가카의 '이명박을 잘 지켜봐라'라는 언명을 오해한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의 덕분인지 1969년 입사 5년만에 이사로 승진하게 됩니다.

그때 이명박 가카의 나이는 고작 29세...

그래서 당시 현대에서는 이명박 가카가 ***의 숨겨진 아들이 아닌가 하는 소문까지 돌았을 정도라고 합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그리고 1977년 5월부터 청와대 영빈관을 짓기 시작하셨다고 하지요.

박정희 가카의 언명 때문인지 이명박 가카가 현대에 입사한 후 5년 동안 매달 현대에서 중앙정보부로 이명박 가카에 대한 동태보고를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결국 이 모든게 '오해' 때문에 벌어진 일... 이라는 걸까요?

아.. 그래서 이명박 가카는 '오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신 것이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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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autumn4121/memo/90154633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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