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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눈치보느라 중국에 反하는 기록을 못했다는 조선의 흔한 기록
게시물ID : humorbest_5474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사일런트힐
추천 : 42
조회수 : 4577회
댓글수 : 8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10/18 18:44:06
원본글 작성시간 : 2012/10/17 22:58:14


세종 3권, 1년(1419 기해 / 명 영락(永樂) 17년) 1월 21일(병인) 3번째기사 
상왕이 태평관에 나아가 사신들에게 위로연을 베풀고 화포를 보여주니 놀라다


(명나라) 사신은 화포(火砲)를 보여 달라 하기로, 하명하여 화붕(火棚)을 설비케 하고, 어둠녘에 사신과 더불어 관문(館門)에 나가 구경하는데 불이 터지니, 유천은 흥미있게 보다가 놀라 들어갔다. 다시 나오기를 두 번이나 했고, 황엄은 놀라지 않는 체하나, 낯빛은 약간 흔들렸다. 상왕은 사신에게 안장 갖춘 말을 선사하니, 황엄은 받고, 유천은 받지 아니하였다. 임금은 지신사 원숙과 내시 노희봉을 보내어 태평관에 가서 상왕을 모시고 돌아오게 하였다. 이날엔 두 차례나 수강궁에 문안하였다.



조선의 화약 기술에 놀란 명나라 사신의 우왕좌왕하는 행동과 자존심 상해하는 미세한 표정까지도 생생이 적어 놓은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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