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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8. 28. 목요일
파토
도대체 왜 저럴까.
온갖 이유를 들어 유가족이 원하는 형태의 특별법은 만들 수 없다고 버틴다. 헌법이니 법이니 운운하는데 적어도 법조계 일각에서는 문제없다는 해석까지 내려놓은 상태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한다. 절대로 들켜서는 안 되는 비밀이 있는 게 분명해. 그래서 많은 이론들이 등장했다. 잠수함 충돌설에서부터 이명박 세월호 소유설, 일부러 구조하지 않았다는 물론 일부러 사고를 냈다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ㅂㄱㄴ의 잃어버린 7시간.
이런 이야기들 읽어보면 나름 일리가 있고, 회자되는 쪽이든 아니든 뭔가 흑막이 있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그 비밀들을 죽어라 감추려고 새누리와 ㅂㄱㄴ가 이 국민적 비극에 대해서 저렇게 완강한 태도를 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허나,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우원은 (의외로) 음모론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온갖 음모론을 많이 접하다 보니 그럴듯한 이야기들에도 사람들이 놓치기 힘든 허점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거기에 한번 발을 들여 놓으면 여간해서는 빠져나가기 어렵다는 점도 깨닫게 됐다.
물론 세상에는 음모라는 게 존재하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다소 무리로 보이더라도 사안의 배경에 놓인 흑막을 뒤져내는 일도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있다 하더라도 문제의 본질이라기 보다는 지엽적인 것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가 음험한 모략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실체는 대부분 숨겨진 비밀이 아니라 실은 광명천지에 드러나 있는 세상의 모습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우원은 잠수함 충돌이나 잃어버린 7시간보다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저들을 저렇게 만드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대통령을 포함해 특정한 개인이 비난받고 사과하고 책임지는 문제보다 훨씬 무겁고 뿌리 깊은 것이다.
뭘까.
지금 유가족의 주장은 사실상 특별법 제정 하나뿐이다. 그리고 이 특별법의 유가족 안에는 일부 꼴통들이 카톡 등을 통해 퍼트리는 의사자 지정이나 대학입학 특혜 따위는 들어있지도 않다. 특별법 제정 관련해서 중요한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특별위원회를 아래와 같이 만들자는 거다.
이렇듯 피해자 가족들은 특위 구성을 국회추천과 피해자단체 추천인 각 8명씩 동수로 하는 점에 큰 무게를 두고 있다. 여기에 상임위원장을 2:1, 그리고 위원장을 피해자단체 추천인으로 만들자는 주장이다.
반면 새정연과 새누리는 국회 쪽에 월등히 많은 위원을 할당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는데, 가장 최근인 8월 20일의 여야 재합의에서는 진상조사위원회라는 이름하에 새누리 5, 새정연 5, 대법원장/대한변협 4, 유가족 3 의 구도로 정리됐다. 결국 기존 안과 별 다를 것 없거나 오히려 후퇴한 14:3의 구도로, 유가족 입장인 8:8과는 큰 격차가 있다. 유가족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건 당연하다.
그리고 이 합의안에서 드러나는 점은 야당인 새정연조차 유가족안을 실질적으로 대변하고 있지 않은 듯 보인다는 점이다. 가끔 그럴듯한 말도 하는 이재오가 얼마 전 지적했듯이, 유가족의 입장을 제대로 반영하려면 새정연이 유가족하고 함께 안을 만들고 그다음에 그걸 들고 새누리와 협상하는 게 맞다. 아무래도 유가족안이 무리다 싶다면, 새누리가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안을 머리를 맞대고 함께 만들도록 먼저 설득해야 된다. 그런데 그렇게 안 하고 생뚱맞은 합의를 한 후에 유가족에게 비토를 당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유가족의 주장의 두 번째 핵심은, 저렇게 만든 특위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도록 하자는 거다. 수사권과 기소권 부여에 대해 '사법체계를 뒤흔든다', 나아가 '삼권분립에 어긋난다'는 새누리 측 주장까지 나왔는데 어처구니 없는 소리다.
일단,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지는 경찰과 검찰은 둘 다 사법부가 아닌 행정부 소속이라는 점부터 상식적으로 짚고 넘어가자. 행정부에 소속된 이 기관들이 사건을 수사하고 피의자를 기소(재판에 회부)하면 그 사법적 판단을 사법부인 법원이 독자적으로 해서 판결을 내리게 된다. 따라서 수사와 기소의 역할은, 많은 법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입법부인 국회가 특별법을 마련함으로써 위원회에 부여할 수 있고 여기에는 아무런 헌법적, 법률적 모순도 없으며 특별검사제도와 크게 다른 것도 아니다.
그리고 특별한 상황에서 법률을 정비해 사법체계를 다소 변경하는 건 (원한다면) 입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며, 국제적인 예도 얼마든지 있다. 일례로 우원이 영국에서 이경운 사건을 다루면서 크게 참고로 했던 '스티븐 로렌스 사건'이 있었다.
1993년, 런던에서 흑인 청년 스티븐 로렌스가 버스 정류장에서 백인 5명에 의해 살해됐다. 그러나 인종차별주의자였던 담당 경찰들은 용의자 백인 청년들을 옹호하면서 한편으로 유족을 사찰하고 흑색선전을 일삼았고, 그 결과 5명의 용의자가 모두 무죄로 풀려나고 말았다. 살인사건이 있고 희생자가 있고 가해자도 있는데 범인은 없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억울했던 유족들은 포기하지 않고 붙잡고 늘어졌고, 놀랍게도 5년이나 지난 1998년에 재조사가 이뤄진다. 그 결과 런던 경찰들의 부실과 인종차별 등 온갖 문제가 명백히 드러났지만 이번에는 '이중위험'(일사부재리와 비슷) 원칙이 문제가 됐다. 이 사건은 이미 재판이 끝났기 때문에 다시 기소할 수가 없었던 거다.
하지만 진짜 놀랄 일은 이때 벌어졌다. 이를 계기로 영국 의회가 강력범죄에 대한 이중위험 금지 원칙을 폐기함으로써, 장장 천 년이나 된 원칙을 깨 버린 거다. 그 덕에 제대로 된 수사가 이어졌고 2011년 범인들은 마침내 종신형으로 법의 심판을 받았다.
그야말로 사법 체계를 뒤흔들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이 조치가 단 한 사람의 억울한 희생자를 위해 이루어진 거다. 법이 법 자체로서가 아니라 사람을 위해 만들어지고 존재한다는 점을 일깨운 중요한 사건이며, 수백 명의 희생자와 유가족을 만들어낸 세월호 사건에 대한 새누리의 태도와는 전적으로 상반된 모습이다.
고 스티븐 로렌스. 사망 당시 18세.
이 사건을 파헤쳤던 영국 인권 변호사 임란 칸은
당시 이경운 군 사건의 어드바이저 역할을 하고 있어서
우원도 몇 차례 그를 만나 조언을 들었던 바 있다.
특별법 자체와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또 한가지 언급해야 할 상황이 있다. 지난 일요일,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특별법의 합의 문제를 풀기 위해 박영선은 아예 유족들을 참여시켜서 논의하는 3자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새누리에 공식 제안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새누리의 답은 이렇다.
"대의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발상이며, 입법권 침해다."
한 마디로, 법안을 만드는 데 민간인인 유가족은 참여할 자격이 일절 없다는 뜻이다.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면 유가족이 원하는 형태의 법을 만들어 주면 이런 이야기까지 나오지도 않을 텐데, 그것도 물론 할 수 없고 말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쟁점들은 실은 하나의 꼬챙이에 꿰어 들어가는 연관된 사안이다. 특히 맨 마지막 새누리의 말에서 이 꼬챙이의 정체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명백히 드러난다. 그들에게 진실이나 민주주의보다 훨씬 중요한 무엇 말이다.
그건 바로, 권력 그 자체다.
물론 유가족이 원하는 것은 진짜 권력이 아니다. 단지 자식들이 죽은 사건과 관련해서 진실을 한 점 의혹 없이 규명하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사건 당일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정부가 믿음을 주지 못했던 건 주지의 사실이고, 그러다 보니 국회 8, 피해자 8 동수의 인원이 참여한 위원회를 만들어서 검찰이나 대통령의 영향에서 완전히 독립된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져야만 한다는 입장이 된 거다. 아니면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정부에 끌려가 버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구도는 새누리는 물론 새정연조차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바로 빌어먹을 넘의 대의민주제와 입법권, 다시 말해 국회의원인 자신들이 가진 권력에 대한 침해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우리 생각엔 이걸 왜 그런 식으로 생각하나, 싶겠지만 권력을 가진 자들은 이런 문제에 절대 쿨해 질 수 없다. 그건 차별적 특권이 권력의 가장 중요한 속성이기 때문이다.
즉, 이걸 대충 민간인들에게 나눠주는 순간 권력은 더 이상 권력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지배계급은 권력이 그렇게 누수 되는 것을 무엇보다 두려워한다.
이 문제는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이후 선덕여왕이 되는 덕만공주의 정적인 미실의 입을 통해 그야말로 정곡을 찔렀던 바 있다. 몇 년 전에 한번 기사로 다룬 적 있었지만 여기 그 내용을 다시 옮겨 본다.
미실 : 공주님. 세상은 종(縱)으로도 나뉘지만 횡(橫)으로도 나뉩니다.
덕만 : 무슨 말씀이십니까?
미실 : 세상을 종으로 나누면 이렇습니다. 백제인 고구려인 신라인, 또 신라인 안에서는 공주님을 따르는 자들, 이 미실을 따르는 자들. 하지만 세상을 횡으로 나누면 딱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 세상을 횡으로 나누면 공주와 전 같은 편입니다. 우린 지배하는 자입니다. 미실에게서 신권을 빼앗으셨으면 공주님께서 가지세요.
이렇듯, 권력은 자신과 대등한 지위에 있는 정적에게 넘겨 줄망정 백성들에게 나눠 줄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그리고 다소 완화되어 있긴 하지만 권력의 이런 본질은 지금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지금 우리를 비롯해 대부분의 나라들이 채택하고 있는 대의민주제라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혈통으로 이어지고 유지되던 저 시대의 귀족 지배계급이 근대적 부르주아지로 치환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온 대의제의 프로파간다와는 달리 지금 이 순간 일반 국민들은 아무런 실제 권력도 갖고 있지 않다. 지배층을 선출하기 위한 단 한 표의 행사일 뿐인 선거권이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명목으로 포장돼 있을 뿐이다.
우원에게는 미실이 말한 횡선에 대한 입장이 보수와 진보의 기준이다.
저 선에서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고 민초들에게 일절 권력을 허용하지 않겠다면 수구 꼴통이며,
저 횡선을 결국은 없애버려야 한다고 믿는다면 진보다.
따라서 ㅂㄱㄴ가 왜 세월호 유족, 특히 유민 아빠를 절대 만나지 않는지, 새누리당이 왜 특별위원회 구성과 수사권, 기소권 문제에 저토록 고집스러운지, 심지어 새정연조차도 왜 진정 유가족을 대변하지 않고 소극적인 모습을 드러내는지, 이 모든 상황 속에는 바로 저 그림이 들어있다.
유가족이 자식의 죽음으로 아무리 큰 고통을 받고 피눈물로 호소한다 한들, 40일이 넘는 단식으로 죽음을 향해 간다 한들, 이런 세상에서 권력은 공감력이나 인간미보다 훨씬 강하고 고집스럽다. 권력 유지를 위한 댐에 손가락만 한 구멍이 뚫리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 것이 권력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본 영국의 경우처럼, 권력의 정통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비록 한계가 있더라도 이런 문제에 훨씬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 나라에는 정통성은 고사하고 인간에 대한 체면치레도 남아있지 않다. 돌이켜보면 노무현이 모멸 속에서 사실상 제거된 것도 그가 본바탕이 횡선 위의 사람이 아니었고, 나아가 그 선을 없애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횡선 위의 불안한 지배자들에게 그것은 용서할 수 없는 배신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세월호의 비극과 그 처리의 지지부진함이라는 외형 속에 숨은 권력의 비정함을 목도하면서 대의민주제의 명분 뒤에 도사리고 있는 권력의 무한한 욕망을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우원이 보기에는 이게 잠수함이나 ㅂㄱㄴ의 7시간보다 훨씬 무서운 비밀이다. 다만 너무나 거대하면서도 한편 대명천지에 드러나 있기 때문에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뿐이다. 손오공을 가로막고 있는 부처의 손바닥은 어디에나 있지만 너무나 크기 때문에 아예 손바닥으로 보이지 않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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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 @patoworld
편집 :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