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적 표현이 가득한 글.
읽지 마십시오.
쓴 사람이 글을 쓸 줄 모르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추상적인 개념에 대해서
구체적인 예시를 전달하면서, 개념화를 도와주는 글은 읽으십시오.
예컨대
류노스케의 글처럼, 예시를 통해서 개념화를 체험하게 해주는 글을 읽으시라는 겁니다.
그것 없이, 단순하게 번뇌, 색욕,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헛방망이만 쥐게 됩니다.
전혀 쓰지도 못할, 감각 자체도 접하지 못한 기호를 들고 있게 된다는 얘깁니다.
이건 당신에게 필요한 겁니다.
어떤 글이든, 그것은 어떤 사람이 겪음을 거치고 난 이후에, 통찰/반성을 하여 언어로 번역을 해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경험의 공유가 없으면 글은 읽을 수가 없습니다. 글 읽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좀 다른 얘기를 해보려고 하는데 밑의 것을 보시죠.
가끔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이런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신혼 부부가 처음으로 부부싸움을 했다고 해봅시다.
남자가 후라이팬을 집어던져서 유리컵이 다 박살났다고 해봅시다.
여자가 깜짝 놀라서 친정으로 도망을 갑니다.
그 다음에 막 이 사건에 대해서 얘기하기 시작합니다. "남편이 미쳤어!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근데
부부 경력 25년차에 해당하는, 부부를 봅시다.
이 부부는 폭행 사건이 좀 많았다고 가정해봅시다.
어느날 둘이 싸워서 남편이 야구빠따를 휘둘러서 장롱이 부서졌다고 해봅시다.
여자도 만만치 않게 드세기 때문에 테이블을 엎어서 부숴버렸다고 해봅시다.
이 때 여자가 친정을 갔다고 해봅시다.
이 여자는 위의 여자와 같을까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면
비슷한 사건을 놓고, 태도는 다르다는 겁니다.
왜?
횟수. 경험의 유형, 반성한 정도. 등에 따라서 차이가 벌어지겠죠.
그래서 25년차 여자의 입장에서, 이 신혼 여자가 "남편이 미쳤어!!" 라고 하는 얘길 듣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생각해봅니다.
한쪽은 놀람의 연속이지만
한쪽은 패턴이 파악되었기 때문에 무미건조하게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글도 이런 것에 해당합니다.
어떤 글은 읽지 않아도 어떤 위치에 있는지 금방 보입니다.
이런 글은 읽는 게 더 피곤합니다. 왜? 내가 밑으로 내려가야되기 때문이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망상을 투영하게 되니까요.
내가 이 사람의 글에 이입하면 내 손해가 됩니다. 왜냐?
쉽게 말해
내가 수학의 천재라고 해봅시다.
근데 지금 초딩 1학년이 수학을 처음 배워서 기쁨에 사무쳐서, 일기를 씁니다.
나는 그것을 내 위치에서 봐야할까요? 초딩 1학년의 '눈높이'에서 봐야할까요?
초딩 1학년에 완전히 이입되어 동화될 수 있을까요?
설령 된다고 해봅시다.
그건 뭘까요?
마스터가 1학년의 수준으로 퇴행하는 것 아닙니까?
위치로 환원시키면, 그 사람은 1학년의 위치에 올라설 뿐입니다.
포지션 게임으로 생각해보시죠.
이것은 그저 내가 초딩 1학년 포지션에 올라섰을 뿐이고,
누군가가 맥락없이 이걸 본다면, 저를 두고 '쟨 초딩1학년 수준이군?'하면서 지시하고 명명할 수도 있습니다.
정리하면
1. 추상적인 표현만 가득한 글 - 읽지 말 것.
2. 딱 봤을 때 초보, 아마추어, 첫경험 설리 가 쓴 글 - 읽지 말 것 (그 전에 발달-단계적으로 변화과정을 정리해둘 것.)
그러면
읽으면 좋을 글
1. 구체적인 예시, 감각으로 잡히게 써놓고, 개념화를 도와주는 글
2.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 쓴 글
3. 메커니즘이 명확하게 잡혀있고, 유형 정리가 잘 되어있는 글.
제 생각에 읽어선 안되는 글은 읽지 않는 게 좋고
읽더라도, 초딩의 일기장을 본다는 생각으로 읽는 게 좋고,
읽으면 좋을 글을 가까이 하되
주변 사람들을 그렇게 글쓰게끔 장려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다행스럽게도
전 세계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저렇게
구체적으로,
메커니즘을 명확하게
써놓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1%에 해당한다는 얘기는 산전수전 거의 다 겪었다는 것이기도 하구요.
류노스케를 예로 들었는데, 그의 책을 보면, 그가 명상을 했을 때, 얼마나 많이 했는지는 보면 알지 않습니까?
명상에 관해선, 번뇌에 관해선 산전수전을 다 겪은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제가 굳이 산전수전 겪지 않아도, 그가 내가 겪을 경로까지 다 밝혀놓았단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물론
최소한 내가 그를 찾게 된 배경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듯이,
나 역시 번뇌에 시달렸어야 하죠.
그래야 경험의 공유가 일어나서, 더 잘 알아보게 될 테니까요.
사람은 처지에 유사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필요한 책은 곧바로 눈에 띕니다.
그리고 수준이 높은 책/글도 금방 눈에 띕니다.
그것은 내가 할법한, 내가 고민을 겪었던, 그런 부분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건드리고 있을 때, 나는 알아봅니다.
그런 글이 좋은 글입니다.
그렇지 못한 글은 집어던지십시요. 읽지 않아도 상관없고, 읽지 않는 게 더 유익합니다.
당신의 현재 '지금-여기'를 내팽겨쳐두고, 마치 다른 어떤 다양한 것이 필요하다 하여 준비하는 거. 그거 좋지 않습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일을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추가된 것
내 삶에 필요한 것을 읽어라. = 내 삶에 필요하지 않은 것은 읽지 말 것.
실존을 다루다 보면, 관념을 다룰 수 밖에 없습니다. 관념을 다루다 보면 인간의 밑바닥을 알고 싶어집니다.
이 때 밑바닥은 인간의 사악한 본능, 이런 것이 아니라, 틀을 말합니다. 정신작용.
다행스럽게도,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런 것을 궁금해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철학, 심리학, 사회학, 등등의 학문이 여기까지 발전되지 않았겠죠.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데, 도움을 주는 사람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 사람이 하이데거라면 그를 가까이 하시고, 비트겐슈타인이라면 그를 가까이 하십시오.
그가 이건희라면 이건희를 가까이 하시고, 그가 소녀시대라면 소녀시대를 가까이 하십시오.
그 사람이 그 누구보다 당신에게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들이 쓴 언어들, 그것들이 가치있는 것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