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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마무리
게시물ID : today_5484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프로배불러
추천 : 7
조회수 : 369회
댓글수 : 23개
등록시간 : 2016/08/22 21:28:58

연대숲 #47284 번째 외침


언어란 참 신기한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노래중 하나인 넬 - 기억을 걷는 시간 의 제목 뜻에는 두가지 해석이 있다네요.

기억 위를 시간이 걷는것과 기억을 시간이 걷어내는 두가지 해석.

전자는 시간이 흘러도 기억이 잊혀지지 않지만 후자는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이 점점 사라지는...

왠지 이제는 그 담담한 가사가 기억을 걷어내고 있다는 사실이 더 슬퍼보인것 같네요.



Re)

* 제목의 '걷는' 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걸어가다, 즉 Walk의 '걷는' 과 걷어내다 의 '걷는' 이 그것. 만약 두 번째 의미라면, 이 곡은 기억을 걸어가는, 또는 추억하는 시간이 아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은 추억들이 잊혀버리는 것을 표현한, 즉 기억을 지워내는 시간에 대한 곡이 된다. -나무위키 펌-


* 넬의 가사는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의미가 되겠지만

'그 사람과 함께한 기억을 추억(걷는)하는 시간'이 될 수도 '시간이 기억을 걷어내야 하지만 오늘도 옛 기억 속에 사는 나'가 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

.

.


해석은 그 사람과 함께한 기억을 추억(기억)하는 시간, 시간이 기억을 걷어내야 하지만 오늘도 옛 기억 속에 사는 나 이 두가지로 했지만..

걷는이라는 표현이 Walk의 걷다, 걷어내다는 의미를 지닌 중의법인 줄은 몰랐다.

어찌 됐든 김종완은 천재다 천재..






연대숲 #47253 번째 외침


"아이쿠"

시골서 제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
아버지께서 가속 페달을 밟으시다가
멀리 보이는 과속방지턱을 보고 놀라서 하신 말씀이다.

그제서야 나는 네비게이션이 있어야할 자리를 봤고,
아버지께 네비게이션은 어따 팔았냐고 농담을 했다.

내가 운전면허를 따겠다고 학원비를 부탁드린게 화근이었다.
내 면허학원비를 위해 아버지께선 네비게이션을,
내 농담은 우연히 찍어맞춘 정답이 되었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 없이, 아버지가 홀로 나를 키우셨다.

일이 바빠 항상 주말에만 오셨던 아버지는
내게 또래 아이들에 비해 많은 용돈을 주시곤 했다.

내가 다니고 싶은 학원이 있을 때면
나 혼자 상담을 받고는 아버지께 전화했다.
그러면 바로 등록해주시곤 했다.

덕분에 나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자유로웠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주머니에 돈이 많았고,
공부를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됐으며,
딱히 통금 시간이랄게 없어서 많이도 놀러다녔다.

이 세가지는 언제나 나의 자랑거리였다.

성인이 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아서
학원도 과외도 찾는 곳이 생기고,
한 달에 이런 일들로 100만원 넘는 돈을 벌었다.

나는 그 돈 덕분에 더욱 자유로웠고,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사고 싶은 것 다 사면서
그렇게 살았다.

그런 나의 삶이었다.

난생 처음 국가장학금을 신청하던 날,
소득분위 산정결과 5분위.
나는 그 5분위의 무게를 글자만으론 잘 알지 못했다.

소득분위 장학금만으로 등록금의 절반이 공제되던 날에도,
나는 5분위의 무게를 공감할 수 없었다.

그저 세상이 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생활은 행복했고, 풍요롭고, 맘먹으면 못할 것이 없었으니까.

오늘 아버지께서 당신의 통신비 2~3천원을 보며
'이건 안써도 되는건데 뭐가 이렇게 비싸냐'하실 때도
그저 아버지가 조금 검소하신 편이라 생각했지만,

나에겐 멀리서 갑자기 나타난 과속방지턱만큼이나
아버지의 네비게이션의 빈자리는 놀랄만한 일이었다.

내가 적성에 맞아 쉽게 번 돈.
그렇게 쉽게 불필요한 곳에 다 써버리고선
즐거우면 됐다며 스스로 만족하던 그 때,
그러고선 아버지께 학원비를 말했던 그 때,

당신께선 필요한 물건을, 없으면 불편한 물건을 파셨다.

그제서야 와닿았던 것이다.
5분위라는 숫자의 무게.
내가 쉽게 쥐어버린, 그리고 다시 놓아버린,
백만이라는 숫자의 무게를.

아버지께 그토록 무거웠던 몇천원의 무게였는데
나는 그 몇백배를 이토록 깃털같이 가볍게 여겼다.

하물며 그러고 오는 차 안에서도
아버지께선 내게
자유롭게 살으라 말씀하셨다.

중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 올라갈
부모님 희망 장래희망을 항상 빈칸으로 두시던 아버지께선
내가 모든 전공과 진로를 정한 다음에서야
당신의 어린 시절 꿈이 로봇공학자였다고,
난 네가 로봇공학자가 되었으면 했다고 말씀하셨다.

세상 가장 가깝게 자라는 아이에게
자유를 선물하려던 아버지는
자신의 옛 꿈을 말하는 것에 그토록 신중하셨다.

아버지께선, 내가 딛고 선 그 자유를 주시기 위해
그동안 아버지의 삶을 팔아오셨던 것이다.

항상 내가 필요하다 할 때면,
군말없이 용돈을 부쳐주시곤 했던 아버지는
내게는 한없이, 돈이 많은 사람처럼 느껴졌었는데,

나는 그제야 주말이면 아버지가 사주시던 치킨 한마리
그 이만원도 안되는 돈의 무게를 알겠더라.

그리고 2주 후,
다시 내 통장에 들어올 내가 버는 돈의 무게도,
내가 공부를 개판으로 해서,
받을 수 없게 되어버린 국가장학금의 무게도.

오늘 밤은 참
생각이 많았던 밤이다.

시간은 충분하다.
내가 아버지의 새 네비게이션을 알아보기에.

내가 다시 아버지의 삶을 사드릴 수 있기를 바라며.


Re)

* 아버지에게 사드릴 네비게이션이, 작성자님이 생각하는, 원하는 길을 잘 안내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yonseibamboo/posts/529599347249424?
https://www.facebook.com/yonseibamboo/posts/528760443999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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