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위안부 할머니의 일기 中에서
게시물ID : bestofbest_5485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원숭이혐오
추천 : 282
조회수 : 41813회
댓글수 : 0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1/08/21 11:39:33
원본글 작성시간 : 2011/08/20 23:42:45
"천황폐하를 위해 몸을 받치면 좋은 대우를 받는다" 하루밤에 10~15명의 군인을 상대해야 했다,그리고, 임신, 아직"쓸만 한데" 하는 생각에 자궁째 태아를 들어낸다, "일본 때문에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옛 생각이 떠올라 눈물이 납니다" 8월 27일, 칼을 찬 군인이,"군인 백명을 상대할 수 있는 자가 누군가" 하고 물었다, 그 때 손을 들지 않은 15명의 여성은 다른 여성에 대한 본보기로 죽였다, 발가벗은 여성을 군인이 머리와 발을 잡아 못을 박은 판자 위에 굴렸다, 분수처럼 피가 솟고 살덩이가 못판에 너덜거렸다, 그때의 기분은 하늘과 땅이 온통 뒤집어 진 것 같았다, 라고 정씨는 표현했다, 군인들은 죽은 여성의 머리를 넣어 삶았다, 그리고 나무칼을 휘두르며 그들에게 억지로 마시도록 했다, 1933년 12월 1일에는 한 여성이 장교가 철봉을 자궁에 꽂아서 죽여버렸다, 다음해 2월 4일에는 매독에 걸린 사실을 신고하지 않아 장교에게 병을 옮겼다는 이유로 한 여성은 잔인하게,,, 일본군이 벌겋게 달군 철막대를 자궁에 넣었고 여자는 즉사했다 뽑아낸 막대에는 검게 탄 살점이 달려 있었다, 문신을 온몸에 걸쳐 새겨졌다, 군인들은 처음부터 죽일 셈으로 여자들에게 문신을 했다, 마차에 실려온 여성들을 들에 팽개치는 모습을 멀리서 보고있던 중국인 남자가 일본인이 사라진 뒤 그나마 아직 숨이 붙어 있던 여자 두명을 옮겨 약 두달간 간호애 줬다, 정씨는 기적으로 살아 남았던 것이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요 하며 의자의 앉아 있는 내 팔 (기자) 을 꼭쥐며 울부짖듯 소리를 질렀다,눈 앞에 있는 일본인이 자신을 극한까지 학대한 일본병사와 겹쳐 보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를 동정하지마라, 내 조국이 나를 버리던 그때부터 나는 누구의 동정 따위를 원하며 살아온 것이 아니다, 나에게 카메라를 비추지 마라, 내 육신이 비록 너널하지만 너희들이 아무 곳이나 들이대며 플래쉬를 터틀릴 그런 삶은 아니였다 고향이라고 찾아 왔건만 ,,마치 나의 의도한 죄인 처럼 바라 보는 주변 고향 사람들 내가 이꼴을 보여주려고 지금까지 살아 왔던가,,,, -위안부 할머니의 일기 中에서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