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1일 6차 투자활성화 대책이 발표되었다. 지난 4차 투자활성화 대책에서 한층 더 나아간 의료민영화 정책들로 가득하다.
항상 그래왔듯 정부는 이번 대책이 외국인 환자 유치 등 ‘의료서비스산업 육성’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대형병원과 보험자본, 제약자본의 이윤 창출을 위해 국내 의료체계의 공공성을 파괴하는 제도들일 뿐이다.
이번 글에서는 민간보험사의 해외환자 유치업 허용 정책에 초점을 맞춰 분석하고 비판하겠다.
현행 의료법 제27조 3항은 ‘영리를 목적으로 환자를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소개·알선·유인하는 행위 및 이를 사주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환자에게 진료비 할인 혜택, 금품 제공, 교통편의 등을 제공하면서 특정 의료기관으로 유인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외국인환자를 유치하는 경우는 예외적으로 허용해주고 있지만, 이마저도 ‘보험회사, 상호회사, 보험설계사, 보험대리점 또는 보험중개사는 외국인환자를 유치하기 위한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민간의료보험상품을 취급하는 보험회사가 병원과 관계를 맺고 환자를 소개·알선·유인할 경우 생길 수 있는 여러 심각한 부작용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2013년 5월 국내 또는 외국 보험사와 계약을 체결한 외국인 환자에 대한 보험사 유치행위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다행히 이 법안은 국회 본회의 상정을 논의하던 중 의료법의 공공성을 훼손한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아직까지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언뜻 들어서는 민간보험사가 해외환자를 유치하는 일이 왜 의료공공성을 파괴하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이제부터 숨겨진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파헤쳐보도록 하자.
보험-병원 직불 계약은 국민건강보험을 약화시키기 위한 포석
민간보험사의 해외환자 유치업 허용은 국민건강보험을 약화시키고 당연지정제를 무력화하여 민간보험사가 국민건강보험을 대체하기 위한 포석이다.
민간보험이 국민건강보험을 대체하기 위해선 선행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국민건강보험이 가진 환자 진료정보를 민간보험도 공유하는 것이다. 민간보험사가 환자의 진료정보를 소유하면 보험 가입자의 성별, 나이, 직업 등에 따라 향후 지출하게 될 의료비를 예측할 수 있게 되고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게 될 사람에게는 고액의 보험금을 요구하거나 가입을 거절할 수 있다.
또한, 보험-병원 간 직불 계약을 통해 민간보험사-의료기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보험과 병원의 직불 계약은 보험의 병원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시켜 사실상 보험회사가 병원의 의료행위를 심사하고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이번 6차 투자활성화 대책에는 이러한 선행조건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공공기관들이 보유한 국민건강 관련 통계를 연계하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연구목적 등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정책이 들어 있다. 또한 보험-병원 간 직불 계약을 위해 환자 유인‧알선행위 예외조항에 보험사의 해외환자 유치를 포함시키려고 하고 있다.
민간보험사의 해외환자 유치업이 허용된다고 가정해보자. 한국 병원에서 치료를 원하는 외국인이 한국의 민간보험회사와 계약을 맺고 돈을 지불하면 민간보험회사가 병원에 직접 진료비를 납부하게 것이다.
이런 과정들이 일반화되고 나면 민간보험사들은 해외환자 대상일 때 아무 문제가 없었다며 내국인 상대로도 진료비 직불 계약을 체결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정치적 압력을 넣을 것이다. 내국인까지 보험-병원 간 직불 계약이 허용되면 민간보험사는 이제 국민건강보험이 가진 정보와 권한을 똑같이 가지게 된다.
민간보험사는 병원과 직접 거래가 가능해진 이후에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에 대해 본격적인 문제제기를 할 것이다.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면 병원이 국민건강보험과 계약 맺지 않고 민간보험사와 계약을 맺는 것이 가능해진다.
예컨대 삼성생명이 삼성병원 및 계열병원과 독점계약을 맺고 소속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보험상품을 출시하는 것이다. 이 경우 삼성병원에서 치료받고 싶은 환자들은 모두 삼성생명에 가입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보험사는 의료기관 네트워크를 형성해 나갈 것이다. 그러면 삼성생명 가입자들은 이미 삼성병원에서 모든 의료혜택을 받고 있으므로 국민건강보험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병원-보험 간 직불 계약에서 시작하여 당연지정제 폐지까지 연결되는 이 시나리오를 만들어낸 것은 다름 아닌 삼성생명이다. 2005년, 삼성생명에서 유출된 ‘민영건강보험의 현황과 발전방향’이란 자료는 민간의료보험이 어떤 식으로 발전해야 국민건강보험을 대체할 수 있을지 경로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외국인 먼저, 추후 내국인 확대’는 익히 알려진 정부의 전략
정부가 보험사의 해외환자 유치업을 허용하려고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2009년에 의료법을 개정하면서 민간보험사의 해외환자 유치를 허용하려고 시도했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미국식 의료의 직전 단계라는 문제제기가 있어 개정안에서 빠지게 되었다.
이번에도 같은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이 있었지만 정부는 외국인 대상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과거들을 짚어볼 때 보건복지부의 의견을 신뢰하긴 어렵다.
2002년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 제정 당시에도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허용 조항이 논란에 휩싸이자 복지부는 “의료기관, 약국은 ‘내국인을 대상으로 의료·약업을 할 수 없다’(제23조 7항)고 돼 있고, 이를 어길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처벌 조항도 있어 큰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채 3년도 지나지 않은 2005년 1월에 내국인 대상 진료 금지 조항을 삭제하고 영리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허용한 바가 있다. 민간보험사 환자 유치도 이번에는 외국인 대상이지만 이를 디딤돌 삼아 이후에 내국인까지 허용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건강보험 파괴하는 정부에 맞서자!
6차 투자활성화 대책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은 박근혜 정부의 의료민영화에 대한 변함없는 의지다. 더구나 정부의 의료민영화 전략은 의료공급체계, 즉 병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의료제공체계인 건강보험에까지 나아가고 있다.
의료민영화 논란이 불거졌을 때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보험은 민영화시키지 않겠다.”라고 했지만 이 말은 오히려 “국민건강보험은 ‘하루아침에’ 민영화시키지 않겠다.”라는 것처럼 들린다. 이제는 영리자회사, 영리병원에 대한 반대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민간보험 활성화 정책에 대한 반대 투쟁도 병행되어야 한다. 보험사의 해외환자 유치 허용 정책을 막아내고 국민건강보험을 지켜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