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촛불모임 다녀 왔습니다...
게시물ID : humordata_4648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coolbrain
추천 : 14
조회수 : 59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08/06/05 00:05:16
오래간만에 꽤 걸으니 많이 피곤하네요... 작은 규모의 촛불집회는 구경하는 정도로 참여한 적 있는데 시청광장에 간 건 처음이었습니다 솔직히 재미없을것 같아서 7시에 도착해서 9시정도까지 참여하다 집에 올 생각이었습니다. 막상 가서 조금 앉아있으려니까 집에 가고 싶은 생각 싹 사라집디다... 제가 꼬셔서 같이 간 동생도 비슷한 감상이더군요 가기로 결정한게 저번 유혈사태때문에 버럭해서 결정한거라 시간이 촉박해 아무 준비도 못하고 갔습니다. 지하철에서 올라오는데 양초와 종이컵 결합하시는 젊은 아가씨 한분과 약간 더 나이들어보이는 남자분 한분이 계십니다. 모르니까 물어 봤습니다. '이거 사는 거에요?'. 그냥 가져가랍니다. 자원봉사하는 분들이었나 봅니다. 우선 동생과 배부터 채우려고 밥을 먹다가 생각하니 날씨도 후덥지근한데 그 계단참에서 쭈그리고 있으려면 많이 더울거 같더군요. 보답삼아서 음료수 사다가 드시고 하시라고 전해드렸습니다. 촛불 켜고 서서 구경합니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하는 노래가 나오는걸 듣고 있는데 옆에서 누가 뭔가를 쑤욱 내밉니다. 잠깐 놀라서 봤더니 양초를 내밀고 있는 청년분입니다. '아, 그렇구나'싶어서 얼른 불을 옮겨붙여 드렸습니다. 서로 미소를 교환합니다. 나만 그러는게 아니라 저기서는 슬슬 할머니에 근접하시는 아주머니가 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에게 불을 옮겨받습니다. 저쪽에서는 아예 할아버지 한분이 젊은 여성분에게 불을 옮겨주고 있습니다.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굉장히 흡족하고 마음이 충만해 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앉아서 자유발언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구호를 따라하고 참여합니다 가만히 타오르는 촛불이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것 같더군요...한가운데 있다 보니까 사방 천지가 종이컵을 통해 스며나오는 촛불빛입니다. 비구름때문에 어둑한 하늘 아래서 은은하게 빛나는 게 내 마음도 가라앉힙니다. 주변을 둘러봅니다. 온갖 촛불들이 다 있습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하신 갓 퇴근한듯 정장을 입고 계신 아저씨. 여고생. 남녀 대학생으로 짐작되는 사람들. 한가족인듯한 단란해 보이는 남녀와 아이. 진지한 얼굴을 하신 노인분. 이뻐서 한번 더 보게 되었던 아가씨. 건설회사 조끼를 입으신 아저씨들. 썬캡을 쓰신 아주머니. 그냥 다 길가다 보면 스쳐지나가고, 동네에서 한번 본것같기도 하고 그런 평범한 분들입니다. 오묘한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하는것... 누가 시켜서 하는게 아닌,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바가 있어서 나오는 사람들이 하는 자유 발언이 참 각양각색이라 재밌습니다. 여고생들에게 감동했습니다. 내가 그들을 이끌어 주지 못할망정 그들에게 이끌림 받은 기분이라 쪽팔리기도 합니다.... 나 고등학교땐 아무생각 없었던거 같은데 ㅠㅠ 운영진이 하나하나 체포당하고 영장이 나와도 전혀 굴할 기색 없는 대책위원회 여러분도 멋집디다. 비가 슬금슬금 내리려 합니다. 사람들 슬금슬금 일어납니다. 비온다고 가는건가 싶었는데 저쪽가서 비옷사서 입고 계십니다. 잠시 후에 누군가 비옷을 나눠 줍니다. 비옷 파시던 아저씨 아주머니들 뻘쭘하시겠다 싶습니다. 청와대 가시고 싶으시겠지만 오늘은 참자고 합니다. 6월 10일날이 6.10항쟁 20주년이라는군요... 100만명 함 모여보자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시청에서 출발해 종로 지나 광화문 지나서 시청으로 돌아오자고 하고 사람들 걷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그냥 걸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샌가 어디선가 구호 선창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내 입은 저절로 뒷구절을 받습니다. 선창하는 사람 보니 왠 아가씨 세명이 웃으며 재미나게 선창합니다. 나도 웃었습니다. 즐겁고 기쁘지 않습니까. 딱히 누가 주도하지도, 나오라고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각양각색의 촛불들이 같은 마음이 되어 모여서 걷는다는게. 애를 안고 가는 아저씨 한분이 내 곁을 스쳐 앞서 걸어갑니다. 아저씨의 어깨 너머로 세살이나 되었나 싶은 여자아이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날 봅니다. 구호를 외치는 와중에 아이를 보고 웃어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굴욕을 겪습니다. 같이간 동생과 지하철 안으로 들어가 화장실에 갔다가 얼른 재합류 하려고 나왔더니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나 방향친데 ㅠㅠ. 동생도 지방에서 살다가 서울온지 얼마 안되었습니다. 의논해 보고 시청으로 돌아간다 했으니 먼저 시청에 가 있기로 합니다. 방향치가 뭘 먼저 가있어... 잠시 후 입에서 '여기가 어디야'가 나옵니다. 그제서야 길가는분에게 여쭤봤더니 반대로 왔습니다. 이놈의 방향치 ㅠㅠ. 다리가 뻐근해질 정도로 걸으며 시청을 향합니다. 도중에 두 번이나 집회 어디서 하냐고 질문 받았습니다. 시청에서 열리는데 지금 다들 한바퀴 도시고 시청으로 돌아가고 있을거라고, 우린 잠시 떨어졌다가 시청으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아, 이중의 굴욕입니다. 사실 나도 헤메는데 나한테 시청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어떡게 해 ㅠㅠ 삼중의 굴욕입니다. 가니까 대책위원회가 하는건 끝났다고 합니다. 근데 사람들 한 1/3만 가고 그냥 있는 사람이 무지 많습니다. 신기합니다. 저쪽에선 한 30대초로 보이는 분과 노인에 근접해 가시는 듯한 분이 토론을 합니다. 계단처럼 생겨서 앉을만한 구조물에는 사람들이 앉아있고 잠시 후 누군가 나와서 무언가 발언을 합니다. 옛날 그리스에서는 시민들이 심포지엄에 모여 정치토론도 하고 철학논의도 하고 그랬다는데 그게 이런 모습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꽤 지난 후에 어디선가 누가 광화문을 연다라 외칩니다. 광화문으로 가잡니다. 딱히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 사이에는 분위기라는게 감돌고 그 사람들의 무리 속에 있으면 그 분위기가 뜻하는 바를 알 수 있는 법입니다. 더 할 뜻이 있는 사람들은 자율적으로 광화문에 가서 마저 하자는 분위깁니다. 집에서 모종의 큰 일이 발생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아버지께서 지병이 발작하셔서 잠시 응급실 다녀오셨다는군요. 다행히 부랴부랴 집에 와 보니 통증이 심할 뿐 건강이나 생명에 지장이 있는건 아니었습니다. 아마 그 일이 아니었던들 저도 광화문까지 가서 이시간까지 안돌아오고 있었을 겁니다. '아 ㅅㅂ 차 끊겼네 집엔 어떻게 가지 ㅠㅠ'하면서.... ps. 사진은 집회참여한게 자랑스러워서 인증샷 한장.. 폰카라 화질은...;;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