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아이, 모범생, 선생님 말씀 잘 듣는, 공부 잘하는,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하는
사춘기가 오는 것도 두려워 할 정도로 엄마아빠 말씀 잘 듣고, 하란대로 잘 따라왔었어.
정체성이 형성되는 12살에 나는 원하지도 않았던 사립초등학교에서
공부에 치이며 살았어.
잘 본 시험의 칭찬보다 못 본 시험의 꾸지람을 먼저 들었고
시험이 끝나면 잘봤던 못봤던 엄마에게 혼날까봐 늘 벌벌 떨었어.
이런 내가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질 수 있었겠어.?
나는 나를 못믿어.
나는 내가 싫어.
이걸 먼저 학습시킨건 내가 아니라,
엄마아빠였다고.
그런데도 나는, 미련하게도 내성적인 아이여서
엄마한테 한마디 반박도 못하고 입을 그냥 닫고 살았어.
참고 살았고, 버티고 살았어.
그나마 내가 의지했던건 아빠였어.
아빠 말이 내겐 진리였고,
그런 아빠를 존경했고 내 롤모델이었고 내 선악판단의 기준이 곧 아빠였어.
학교를 졸업하고 돈때문이었던, 나의 꿈때문이었던
일찍 집을 나와서 생활했어.
사실 나도 몰랐었는데, 나 이악물고 버티고 있었더라고.
열일곱때부터 생판 모르는 사람들하고 일하고, 생활하고
긴장이 안 될리가 있었겠어. 힘들었어.
괜찮은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버텼어.
어제 아빠가 그러더라.
너는 왜 내 말을 다 기준으로 삼냐고.
내 말을 다 따르려고 하지 말고
네 생각으로 네 기준을 갖고 맞다 싶은것만 수용하면 되는거 아니냐고.
왜 그렇게 살아서 너를 힘들게 하냐고
왜 눈치보고, 모두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냐고.
하 씨발.
알아, 아빠가 나를 사랑해서 그런말 하는거.
근데 있잖아,
내가 이때까지 버텼던게
다 아빠때문이었고 아빠덕분이었는데
아빠가 그렇게 말해버리니까
세상이 다 깨져버리더라.
날 이렇게 키운게 누군데.
내가 이렇게 자라고 싶어서 자랐나.
더 열받는건
그래, 다 좋아.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나의 기준을 갖고 생활하겠어.
마음 먹었는데
뭐가 내 기준인지 모르겠더라.
내 생각이 뭔지, 내 감정이 어떤지, 내 기준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겠더라구요.
나 이제 스물둘인데
투표권도 가진 성인인데.
나 왜이럴까요.
왜이러고살까요.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요.
정말로.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서
어떻게 행동하고 반응해야될지도 모르겠어요.
남한테 맞추지 않고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움직인다는게 뭔지 모르겠어요.
시발 나는 왜 모범생이었을까요.
왜 남들이 하란대로 열심히 숨 턱턱막혀가면서 나를 만들었을까요.
얼마나 내 소리를 안 들었으면 이렇게 조금도 들리지가 않는걸까요.
이런 내게 희망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