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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께 들은 6.25 이야기
게시물ID : military_2323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일마레따
추천 : 12
조회수 : 56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6/05 15:14:11

광주광역시에 살고 있는 오유남입니다.

 

어젠 퇴근 후 집에 가보니 어머님께서 와 계시더군요. 와이프가 교육을 갔던터라

 

어머님께서 집에 오셔서 내일 모레 40인 당신 아들놈하고 손주녀석들 저녁 차려줄려고 오신 모양이었습니다.

 

갈치구이, 모굿대 된장국, 상치쌈으로 저녁을 먹다가 문득 달력을 보니 유월 이십오일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래서 어머님께 육이오 때의 이야기를 여쭤봤습니다. 대화체로 쓰겠습니다.

 

참고로 어머님께서는 46년생이십니다.

 

 

나 : 어머니. 어머니도 육이오 겪어보셨죠?

 

엄니 : 내가 46년 생인께 당연히 겪었제 왜 그냐?

 

나 : 그냥 궁금해서요

 

엄니 : 그때가 내가 요 ㅅㅇ이(제 딸이름)만 했을껐인디. 월매나 추웠으믄 할무니(어머님의 친할머니)가

 

얼어죽지 말으라고 누비옷을 똥똥하게 지어갔고 입혔당께. 글안해도 뚱뚱했는디 더 뚱뚱해져선

 

굴러댕겼제 큭큭큭

 

나 : ...

 

엄니 : 그때 피난갈때 기억난다잉. 앞에는 니 외할아버지 뒤에는 지금 큰외숙 왼손에는 큰이모

 

오른손에 막내이모를 잡고 난 뒤에서 걸어갔었제.

 

나 : 외할머니가 어머니 손을 안잡아줬어요?

 

엄니 : 뚱뚱하다고 안잡드리고..

 

나 : ...

 

나 : 그런데, 피난은 어디로 가셨어요?

 

엄니 : 피난이라고 해봤자 기냥 인적드문 산속으로 들어갔다가 눈치봐서 다시 마을로 들어오고

 

했었제. 그때 엄청 추워서 사람들이 이불 들쳐업고 가던 모습이 눈에 선하구마잉

 

한번은 깔끄막(비탈길) 언저리를 엄니 손을 잡고 마을로 돌아가다가 앞에서 중국군인들이

 

오길래 그냥 깔끄막 언저리에 웅크리고 있었제. 근데 내가 그때 홍역을 앓고 있었쓰야

 

홍역걸리믄 기침은 오지게 안허냐. 근디 내가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고 기침을 삭혔당께

 

중국군인들이 뒤만 돌아보믄 걸리는 것이었는디 다행이 안걸리고 그랬써야

 

글고 나서 엄니가 내 머리를 쓰다듬음시롱

 

"아따 우리 ㅇㅅ이(어머니 성함)가 살라고 용케 참았네잉"

 

이랬당께.

 

한번은 피난가다가 나만 할머니 댁에 맡겨놨었던걸로 기억이 되는디

 

마을사람인가가 찾아와갔꼬 막 할아버지 어디갔냐고 느그 큰외숙 어디갔냐고

 

총부리를 들이댐시롱 할머니 가슴팍을 쿡쿡 밀드랑께

 

할머니는 "그만하쇼 그만하쇼. 아따 그만하쇼"라고 말허고

 

난 할머니 치마뒤에 숨어갔고 눈치만 보고 그랬는데

 

결국 집 여기저기 뒤져보고 가더라더니.

 

나 : 그 마을분도 알고 계시던 사람이었어요?

 

엄니 : 할머니가 이름까지 말함서 아제 아제 했응께 그랬을 것이여

 

나 : (보도연맹?)...

 

엄니 : 우리 마을을 그래도 괜챦았었제. 저그 옆 마을에서는 백명인가가 죽었응께

 

나 : 백명이나요?

 

엄니 : 전쟁끝나고 사람들이 산비탈에 하도 나물이 좋게 되는곳이 있다고 해서 나물캐러 갔다가

 

사람 해골뼈를 보고는 기겁을 했다고 했었시야

 

들은 야그론 전쟁통에 그쪽 마을사람들을 그 산비탈에 날라리(일렬로) 세워 놓고 드르륵 총질을 했다고 하더만

 

나 : 아...

 

엄니 : 암튼 난 지금도 그 중국군이 각반모양을 잊지를 못한당께 (이러시며 방바닥에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각반모양을

 

그리셨습니다)

 

---

 

대화를 마치고 제가 한다고 해도 한사코 설겆이를 하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당신께서 겪으셨을 그 비극의 한장면이 그려지더군요.

 

천진난만하게 밥을 먹는 아들녀석과 딸아이의 모습을 보고는

 

이 아이들이 이렇게 평화롭게 밥을 먹는 이시간이 그런 비극적인 역사를 바탕으로,

 

때론 극복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나저나

 

모굿대 된장국 맛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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