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지러움
김문인 과장.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간지러움을 달고 나온 것은 아니다.
이미 그의 나이 45살.
어느덧 가장으로서 자신이 이끌어 갈 가족도 있었으며 직장도 있었다.
사실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수없이 자신의 몸을 혹사시켰지만 그런거야 모든 대한민국 가
장들의 당연지사 할 일 아닌가.
그런 그가 대략 3219번째 야근을 끝마치고 첫차에 몸을 실었을 때 그 간지러움은 시작 되
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간지러움.
‘날벌레라도 붙은건가...’
피곤함에 그런것쯤은 무시할마냥 잠에 빠지려 했으나 간지러움은 더욱 강해졌다.
그저 무시하기엔 참을 수 없는 감정까지 되었을 때 그는 살짝 눈을 떠 손끝을 살펴보았다.
‘아무것도 없는데...왜 이렇게 간지러운거지? 허벅지나 팔부분이 간지러운적은 많지만 이렇
게 손끝이 간지러운적은 또 처음이네. 게다가 간지러움이 점차 커지잖아?’
하는 수 없이 왼손과 오른손으로 번갈아 가며 양손의 손끝을 긁었다.
긁는 동안만은 시원함을 느끼며 간지러움이 약해졌지만 역시나 긁는 행위가 끝나면 다시 간
지러웠다.
한 10분쯤 긁었을까.
다행히도 간지러움은 멈추었고 그는 빨개진 손끝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피곤해서 그런건가? 뭐 별 거 아니겠지.’
그렇게 피곤함에게 누명을 씌인 그는 집에 오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 역시나 평소대로의 출근.
벌써 10년이 넘어가지만 피곤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요즘은 아들놈 학교 때문에 이사를 한 상태라 회사와의 거리는 더욱 멀어졌다.
그에 따라 기상시간은 더욱 앞당겨졌다.
“여보. 나 갔다올게.”
“갔다 와요. 몸조심하고요.”
평소대로의 만원 지하철.
평소대로라는 단어로 인해 이젠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 되어버린 현상이다.
겨우겨우 밀고 만원 지하철에 탑승하게된 그.
왠지 모를 한숨을 내쉬는 그 때, 간지러움은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엔 손끝이 아닌 발끝이었다.
‘아 이런. 왜 간지러운거지? 느낌상 날벌레가 신발속에 기어들어간 것 같진 않은데. 이런 만
원 지하철에서 그것도 하필이면 발이 간지럽다니. 아 미치겠구만.’
점차 강해지는 간지러움에 참지 못한 그는 어쩔 수 없이 중간역에서 내리고 만다.
어떻게 해서 탄 만원 지하철인데.
이러다가 지각이라도 하는건 아닌지.
그렇지만 간지러움이 먼저였다.
‘생각대로 날벌레가 기어들어간건 아닌데.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도대체 왜 간지러
운거지? 에휴. 생각을 말자. 뭐 간지러운게 나만이 느끼는 독특한 감정도 아니고. 어서 회사
나 가야지. 이러다가 늦겠구만.’
서둘러 회사에 도착해보니 다행히 지각은 아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지각해서 부장에게 깨질 생각만 하면 오금이 저린 그였으니까.
“자 다 모였으니 아침 회의 시작하도록 하지. 오늘 회의는...”
2시간의 지루함을 동반한 회의가 겨우 막을 마치자 또 다시 할일은 산더미처럼 쌓여버렸다.
늘 했던 일이라 익숙할만도 한데 역시 힘든건 어쩔 수 없다.
얼핏 들어본말로 이런말이 있었다.
인간은 어떤것에도 적응할 수 있는데 단 한가지 적응하지 못하는게 있단다.
그건 바로 고통.
그에게 이 회사일은 사실상 돈을 얻고 겪는 하나의 고통이었다.
‘할일은 많은데 왜 이리 간지러운거야?’
부장에게 낼 서류를 작성하는 중 간지러움에 펜을 놓고 팔을 긁적거렸다.
팔이 간지러웠던 적은 꽤 많았고, 일하던 도중이라 별 생각없이 그저 긁는 김과장.
하지만 여느때처럼 몇 번 긁으면 사라질 줄 알았던 간지러움은 없어지기는커녕 더욱 커져만
갔다.
일에 집중하던 정신을 모두 팔에 집중해야 할 정도로.
“어머? 김과장님? 왜 그렇게 팔을 긁어대세요? 그러다가 두드러기라도 나면 어쩌실려고요?”
“하핫. 미스정이 내 걱정을 다 해주는건가?”
“김과장님이 안계시면 저희끼리 이 많은 일을 어떻게 다 해요? 아프시면 안되죠.”
“끄응...걱정말게. 내 아파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일하러 회사에 나올테니.”
여전히 긁고만 있는 김과장에게 미스정은 살짝 미소를 보냈고 김과장은 괜히 화가 났다.
안그래도 간지러움에 미칠것만 같은데 저런 불여시까지 내 속을 긁다니.
간지러움은 피부가 벌겋게 달아오를정도로 긁고나서야 사라졌다.
상황이 이정도이니 어쩔 수 없이 김과장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가까운 피부과를 들렀다.
진료를 봤으나 들은 대답은 알수없다가 고작.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이다.
간지러움은 일종의 고통인데 고통중에서 가장 약한 느낌이라고 한다.
그 약한 고통을 느낄만한 이유가 어디에도 없다는 의사의 말.
그러면서 큰 병원으로 가보라 했으니 김과장으로서는 코웃음만 나오는 상황이었다.
안그래도 바쁜 지금 겨우 점심을 굶고서 여기까지 왔는데 듣는 대답이 고작 이런것들이라
니.
그러한 불신의 마음은 간지러움에 대한 방치로 이어졌다.
오후 일마저 끝난 상태.
오늘따라 더욱 일은 더욱 많이 쌓여있다.
아마 밤을 새워서 해야 겨우 끝날 듯 싶다.
김과장은 부장에게 야근 보고를 하였고 한숨을 쉬며 부장방에서 나왔다.
그런데 그 순간 그는 하마터면 넘어질뻔 했다.
수만마리의 개미가 다리를 타고 올라오듯이 가려운게 아닌가?
정말 온힘을 다해 참으려 했으나 간지러움은 정신력 이상의 것이었다.
한 20분 동안을 정신없이 긁어대자 겨우 간지러움이 사라졌다.
간지러움이 사라지자 정신을 차릴 수 있었고 다리를 살펴봤지만 역시나 벌겋게 되었을 뿐
다른 이상은 없었다.
왜 이렇게 간지러운거지? 그것도 오늘 하루에만 도대체 몇 번씩.
여러 가지 의문점이 생겼지만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다행히 그 이후로는 간지러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날밤을 꼬박 새운 다음날.
아직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이른 시간,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던 김과장은 순간 잠이 깨
고 만다.
또 다시 느껴지는 간지러움.
팔과 다리, 이젠 몸통 언저리 부위까지 간지러웠다.
이유없는 간지러움에 이젠 분노까지 느껴졌다.
짜증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들.
하지만 그러한 감정들은 간지러움이라는 거대한 감정에 의해 오래가지 못했다.
손톱으로 계속 긁어댔지만 이번 간지러움은 도통 사라지지가 않는다.
김과장은 미칠것만 같았다.
그저 그런 감정인 간지러움에 이렇게까지 자신이 매달릴줄이야.
미친 듯이 긁어댄 결과 겉살이 벗겨지는 따가움이 있었지만 그 따가움이 있어 그나마 간지
러움이 약간씩 사라져갔다.
30분의 사투끝에 서서히 사라져가는 간지러움...
이미 옷은 반쯤 벗은 상태였고 온몸은 벌겋다 못해 너무 긁어대 피부가 다 일어나있었다.
온몸이 쓰리기 시작했고 박박 긁어댄 손톱도 그렇게 성하지는 못했다.
‘도대체 왜...? 이런 바쁜 시기에 왜...? 내 몸아...도대체 왜 이러는거냐...’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정도.
간지러움과의 사투로 인해 버려진 30분이 있었지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출근 시간까지 그대로 곯아떨어졌을테니까.
아직 출근 시간까지는 3시간의 시간이 남았다.
지금부터 열심히 나머지 남은 일들을 하면 대충 마무리가 될 듯 싶다.
다시 시작되는 피곤의 작업들.
일이 거의 마무리가 되어갈때쯤 다시 한번 찾아왔다.
이 간지러움이라는 무서운 놈이.
매우 빨랐다.
처음과는 틀리게 온몸이 미칠 듯이 간지럽게 되는 시간까지가 매우 빨랐다.
참기 위해 별 짓을 다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또 다시 미친 듯이 온몸을 긁어대기 시작하는 김과장.
조금만 더하면 일이 마무리 되고 약간은 쉴 수 있을텐데.
조금만 더하면...되는데...
왜 하필 지금같은 때에...
손톱으로 살점이 떨어져나갈만큼 힘을 주어 긁었지만 간지러움은 더욱 커져만 갔다.
온몸에 개미가 들끓는 듯한 느낌.
더 이상 눈에 뵈는게 없었다.
신발, 자, 책으로 긁어보았지만 부질 없는 짓.
그 때 눈에 띄는 게 있었다.
바로 펜.
이미 미친듯한 간지러움앞에 반쯤 정신이 나간 김과장은 뾰족한 펜을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펜을 들어 사정없이 몸을 긁기 시작한다.
무수한 펜자국에 난자당한 피부들.
온몸이 벌겋게 펜자국이 났지만 김과장은 멈추지 않았다.
“아악...제발!!! 제발 좀!!! 멈춰!!! 멈춰달라고!!!”
거의 미친듯한 절규를 외쳐대는 김과장은 자신의 몸에게 배신감마저 느꼈다.
어째서 나를 이렇게도 괴롭히는건지.
자신의 주인인 나를!!!
서서히 줄어드는 간지러움.
그 순간 어디선가 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힘들게 하지마...늘 너의 뜻을 따랐지만...더 이상은 안돼...힘들어...힘들고 싶지 않아...이건
경고야...힘들게 한 경고라고...더 이상은...안돼...』
김과장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시간도 겨우 6시.
아직 출근 시간까지는 1시간이나 남은 상태다.
‘그럼 지금 들리는 이 속삭임은 뭐지? 어디서 나는 소리지?’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소름이 돋은 순간 다시 한번 속삭임이 들려왔다.
『너와 함께 하며...너의 지시를 받았지만...더 이상은...안되겠어...못참겠다고...힘들어...더욱
힘들게 하면...참지 않아...이젠...참지 않아...』
‘서...설마? 내 몸이 말하는건가?’
확신할수도 믿기지도 않았지만 분명했다.
직감적으로 자신의 몸이 속삭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간지러웠던 것은 내 몸이 내게 경고를 하려고 했던...? 말도 안돼. 그래. 내가 너
무 피곤해서 헛것을 듣고 있나 보다. 그래. 말도 안되지. 내 몸이 나에게 속삭일리 없잖아.’
『마지막 경고야...이제 더 이상은...안돼...힘들어...힘들어...힘들어...』
김과장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믿어지지 않았다.
이런 현실이 이런 상황이 믿겨지지도 믿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뭔가?
몸 스스로가 너무나 힘든 나머지 자신에게 항의라도 한다는 것 아닌가?
인정할 수 없는 납득하기 힘든 상황이다.
‘웃기고 있네. 뭐? 마지막 경고? 내가 움직이라면 움직여야지. 무슨 반항이라도 하겠다는거
야? 이게 다 쓸데없는 일인 것 같아? 나를 위한것이고 우리 가족을 위한것이라고. 그저 놀
고먹고 그러면 돈이 나와? 돈이 나오냐고? 말도 안되는 웃기는 소리야. 그리고 너따위에겐
반항할 권리가 없어. 어차피 지시는 내가 하니까.’
몸과 대화하는 자체도 웃겼지만 그보단 그깟 이정도로 힘들어하는 자신의 몸이 더 웃겼다.
마지막 경고?
김과장은 비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점차 간지러움은 사라졌고 정신을 추스린 김과장은 책상에 앉았다.
펜을 집어들고는 남은 일을 하기 위해 서류 뭉치를 한곳으로 모으는 김과장.
서류를 모으던 김과장은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는 자신의 팔을 흔들어 보았다.
너무나도 잘 움직이는 팔.
“경고라고? 내 몸가지고 내가 움직이겠다는데 뭔 소리를 지껄이는거야? 웃기고 있네...하
핫.”
한참을 미친 듯이 웃어대던 김과장은 이내 웃음을 멈추고는 남은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가까스로 출근 시간전까지는 완성할수 있으리라.
얼마나 지났을까.
김과장은 뭔가 알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뭐야? 또 몸이 반항하는건가? 이런 젠장. 욕이 다 나오는구만. 그래. 그까짓 간지러움. 별것
도 아니라고. 그딴 것으로 나를 협박하려고? 긁어주면 그만 아냐? 그래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고!!!’
화가 났다.
자신의 권위에 반항하려하는 이 몸뚱아리에게 엄청난 분노를 느꼈다.
그런 가운데 서서히 느껴지는 이상한 느낌.
그런데 지금까지의 간지러움과는 뭔가 틀렸다.
어느곳이 굉장히 간지러웠는데 알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디지? 미칠 것만 같아...도대체 어디냐고? 이까짓 간지러움 그저 긁기만 하면 될
텐데...도대체 어디냐고!!!’
강해지는 간지러움.
미칠 듯한 간지러움으로 변했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어디가 간지러운지 알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심장.
생전 느껴보지 못한 곳의 간지러움.
너무나도 낯설었기에 더욱 참기 힘들었다.
미친 듯이 무언가를 찾는 김과장.
이미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지막히 웃고 있는 김과장의 손에는 어느샌가 빛을 발하는 커터칼이 들려져 있었다.
출처
웃대 - clipclover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