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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게문학] [bgm] 몰락한 왕의 검.txt
게시물ID : lol_5520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인현석
추천 : 8
조회수 : 775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4/09/28 14:10:58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TB5bL



아니, 서늘했다기보다는 차가웠다. 금방 잠에서 일어나 피곤한 얼굴로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맞았다.

그리고는 이내 얼굴을 감싸쥐었다. 이제 가을이라는게 확연히 느껴지는 아침이였다.

어제 세벽 3시정도에 솔랭연습을 마치고 곧바로 침대에 누워 잠에 빠져들었다. 지금이 7시니까, 고작 4시간을 잔것이였다. 그럼에도 잠이 몰려온다거나 피곤하지는 않았다. 몸이 찌뿌둥하지도 않았다. 아침부터 간단하게 샤워를 한뒤에 아침을 먹기전에 솔랭한판을 돌리기위해 컴퓨터를 켰다.


람이 서늘했다.


롤 클라이언트가 켜지고, 좀 기다리자 곧이어 큐가 잡혔다. 밴이 마치고 신드라를 픽하려는데 어째서인지 조금 더 위에있는 레넥톤이 자신의 눈에 비쳤다.

남은 픽 시간은 20초. 한참이나 남아있었다. 레넥톤을 픽하고 탑을 외치려는데 챗창에서의 팀원들은 미드캐리를 바라는 말투였다. 이윽고 별 생각없이 신드라를 픽했다. 하지만 게임플레이를 하는 와중에도 계속 레넥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럼에도 게임은 무난하게 흘러갔다. 어느순간 적팀에게 흐름이 넘어가나 싶더니 신드라의 딜러진에게 꽂아지는 기절과 이어지는 궁극기로 상대 딜러진의 순삭으로 다시 게임 분위기가 자신들에게 넘어오더니, 그대로 바론과 억제기를 밀고는 게임이 끝났다.


게임을 마치고는 침대에 다시 누웠다.

스마트폰을 켜자 인터넷 사이트들이 모두 롤드컵으로 한창이였다.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작년 이맘때쯤, 모든 롤 관련 커뮤니티들이 자신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롤 하는기계라느니, 자신의 하품, 북미솔랭성적. 그런 사소한것들로 모두 채워져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이제는 돌아갈수없는 과거였다.

다시 잡기에는 팀원들도 달라졌고, 자신도 알게모르게 실력이 조금 떨어진것 같았다.

만약에 돌아갈수 있다면, 그때로 돌아갈수 있다면.

나는, 페이커로 있을수 있을까?


*


"...그래, 봇에 새로 들어올 애들 면접 같이 안보겠다, 이거지?"


"네. 죄송해요 코치님"


김정균이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상혁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것은 아니였다. 19살, 고3이라는 나이에 한 게임에서 최고의 경지에 다다르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다. 전세계의 강팀들이 모이는곳에서, 자신의 팀으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과연 이 아이는 그 승리를 다시 손으로 잡아볼수 있을까. 그때 손에 잡았던것은 어린아이가 잡았던 나비마냥 덧없이 날아가 버릴것이였을까.

마음속에서는 그 팀이 무너진것처럼 느껴질것이였다. 하나의 제국, 되돌아갈수없는 영광을 거머쥐어버렸던 무너져버린 제국.


그 제국의 왕이였던 페이커, 이상혁.

본래 하늘이 내려준것은 인간이 가지기 쉽지않은 법이였다. 끝내 다른사람의 손에 들어갈수밖에 없는것. 그게 비극의 시작인 모양인것처럼.


"그러면 일단 아침부터 먹자. 오늘 밥 하는 아줌마가 늦잠을 자서 그런가. 아침이 좀 늦네"


김정균이 어느정도 분위기를 풀자 상혁도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래. 원래라면 이런 웃음을 지을 아이였다. 이제 갓 대학교 신입생티를 벗으며 새로 여자친구도 사겨보고, 좋아하는 연예인인 아이유 콘서트도 가보고. 그러다가 어쩌다가 간 pc방에서 자신의 티어를 보고 친구들이 놀라는것도 보고. 그렇게 살아갈 아이였을텐데.


잘못한걸까, 란 생각은 꼬치에게 들지않았다.

어쩌면 악독하다란 말을 들을지도 몰랐다. 그런 말을 떠올릴때면 한 남자가 떠올랐다. 악역이 될수밖에 없었던 한 남자가. 자신의 팀에 원딜을 버리고 그 팀의 원딜이 되었고, 그 남자는 다시는 롤판에 오지않았다. 악역은 그대로 사라져야 모든 원한을 지울수있는 법이였다. 그렇게 그는 롤계의 악동이 되었고, 마지막 악역이 되었다.


이왕이면 자신도, 될수있다면 그런 악역처럼 되어 이 아이를 다시 항상 웃음을 짓는 아이로 돌려놓고 싶었다.


*


두명이 빠져나간 숙소는 쓸쓸했다. 빈자리가 더욱 커보이지는 않았다. 짐들은 모두 빠져나가지 않아 아직까지도 남아있었고 자주 놀러오고 있었으니까.

다시 롤을 켰다. 밴을 마치고 픽을 해야했을때 또 다시 레넥톤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 아침부터 머리에서 자꾸 생각났는데, 이제는 거슬려서 참을수가 없었다. 

깔끔하게 탑을 외치고 레넥톤을 픽하자 팀원들이 약간은 아쉬운 기색을 비쳤다.


게임이 곧 시작되고, 1렙에서 상대 탑인 마오카이와 싸우면서 곧바로 퍼블을 먹었다. 그뒤로 마오카이를 두번정도 솔킬을 더 내면서 탱템을 갈 생각은 일체하지않고는 그냥 곧바로 굶주린 히드라를 사버렸다.

그러자 욕심이 생겼다. 그는 미드라이너였다. 바람같이 적의 진영에 들어가 상대딜러들을 무력화 시키는 미드라이너. 어느순간인가 템창에는 야만의 몽둥이와 흡혈의 낫 하나가 더 구비되어 있었다.


야만의 몽둥이를 지금 업그레이드 시킬필요는 없어보였다. 그렇다고 흡혈의 낫으로 상위템을 올리자니 애매했다. 지크의 전령을 가서 탱과 딜을 적절히 갖출까하고 마우스를 가져갔다.


그때, 한가지 아이템이 페이커의 눈에 들어왔다.


어째선지 웃음이 흘러나왔다. 한동안 아이템을 사지도않고서 혼자남은 연습실에서 미친듯이 웃었다.

웃음이 그치지가 않았다. 한참이나 웃었다. 미친듯이 웃다가 거짓말처럼 웃음을 멈췄다. 웃음에 새어나온 눈물이 그의 옷깃에 묻어있었다. 그리고 흡혈의 낫을 상위템으로 올렸다.


'몰락한 왕의 검'


어쩌면 레넥톤으로 가기 적합하지 않은 아이템일지도 몰랐다.

오히려 그랬기에 이 아이템을 선택했다.

지금까지 자신은 자신에게 맞지않는, 어울리지도 않는 옷을 입고있었다. 어린아이가 아버지의 양복을 꺼내입은 격이였다.


왕의 옷을 꺼내입었던 한 소년. 어쩌먼 자신은 왕이였다.


제국의 왕. 하지만 그 제국은 몰락했다. 망해버린 제국의 끝에서는 웃음을 지을수없는 법이였다.

새로운 제국을 지을수도 없을것이였다.

하지만 한가지는 알수있었다. 자신은 몰락한 왕이였다. 지금 삶에서 좋은 순간은 이미 지나가버렸다. 한 여름의 좋은 볕을 잡아 둘 수 없는 것과 같았다.


그럼에도, 몰락했음에도 자신은 왕이다. 쓰러지지않는, 그 무엇에도 굴복하지 않는 왕 말이다.

왕의 이야기는 끝나도 괜찮다. 이제는 자신의 꿈이 더 중요한 이야기가 시작될꺼니까..


이때까지 자신은 반대로 살아왔었다.

내꿈을 설명하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내 삶을 설명하기 위해서 꿈을 꾸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자신의 꿈을 설명하기 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그 삶에서는 다시 왕이 될수 있을까. 그런 확답은 나오지않았지만 웃음을 지었다.


사람은 피보다 눈물을 보았을때 더욱 잔인해지는 법이였다.

그러니까.


웃자, 몰락해버린 제국에서. 몰락해버린 왕일지라도.



몰락한 왕의 검을 흐트려 잡은채, 찾아올 봄을 위해서 웃음을 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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