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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신화의 가공과정
게시물ID : religion_55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theist
추천 : 3
조회수 : 879회
댓글수 : 32개
등록시간 : 2011/12/15 21:48:02
<예수신화의 가공과정> ① 짜라투스트라가 새로운 종교를 창립하고,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 메시아, 종말론, 구원론, 묵시문학 등이 주변지역으로 급속히 전파됨. 바빌론 유수 이후 유대인들도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게 됨. ② 점성학에 의거해서 물고기좌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측이 등장함. ③ 시리아, 그리스, 로마제국의 침략을 받은 유대인들은 급속하게 헬라화가 진행됨. 기독교가 등장하기 전부터 메시아 사상을 내포한 수많은 유대 묵시문학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함. 이때, 에세네파와 같은 유대교 영지주의자들도 등장하기 시작함. ④ 미트라교가 조로아스터교를 흡수하고 중근동 지역에서 큰 인기를 끌기 시작. 이 종교는 고대부터 내려왔던 동지축제, 춘분축제 등을 흡수하고, 그리스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디오니소스 의식과 헬라철학도 흡수해버린 괴물종교가 됨. ⑤ 정치적 혼돈 속에서 디아스포라화 된 유대사회에, 사도라고 불리는 자들이 이스라엘에 구세주가 왔었다고 선포하고 다님. 예수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ex: 아볼로, 바울) 구약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며 예수를 증거함. (이들이 증거한 예수는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환상 속의 예수일 가능성이 큼) ⑥ 바울을 비롯한 여러 사도들이 사망한 이후, 바울 서신과 사도들의 편지들이 기록되고 정리되기 시작함. 또, 그 동안 짧은 경구로서만 전해지던 예수이야기가 단편적으로 문서화 되기 시작함.(Q문서) ⑦ 시간이 흐르면서 토요일 안식일 같은 유대습성을 하나 둘씩 버리기 시작한 초대교회는, 서서히 헬레니즘 문화권의 태양신 신화를 차용하기 시작함. 이때쯤 전승으로 내려온 단편적인 예수이야기와 Q문서 등을 통합한 복음서들이 하나 둘씩 등장함. 헬라 철학자 첼수스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기독교가 헬레니즘 문화의 신들을 표절했다고 비난하기도 함. ⑧ 예수신화의 창조자이며 그 신화의 의미를 알고 있는 영지주의자들이 이단으로 배척 받음. 광신적인 자칭 정통파들은 숫자가 많았지만, 영지주의자들은 소수였기에 밀려나기 시작함. ⑨ 정치적으로 혼란기에 있던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함. 태양신 숭배자였던 그의 영향력 아래 기독교는 일요일, 삼위일체설, 크리스마스, 부활절, 십자가 등을 마구잡이로 흡수함. 결국, 예수는 미트라를 흡수한 또 하나의 괴물이 되 버림. 영지주의자들은 반체제적인 자유사상가들 이었기 때문에, 정치와 손을 잡은 자칭 정통파 기독교에게 완전히 밀려나 버림. 이 것이 우리가 얻어낸 예수 신화론의 결론이다. 콘스탄티누스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서 더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바울이 기독교의 제1창립자 라면 콘스탄티누스 기독교의 제2창립자라고 평가할만한 인물이다. AD 331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유세비우스에게 소실되어 없어진 성경들을 수집하도록 명령한다. 그 때 성경 편찬작업이 이루어졌는데 이 때 상당부분의 성경이 첨가, 삭제 또는 개정되었다. 현존하는 5천개의 초기 신약성경 사본 중 4세기 이전의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이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신약 성경의 변형 독본들의 대부분이 이때에 만들어졌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서의 예수상(相)은 이때쯤 완성의 단계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니케아 공의회 1년 후에 콘스탄티누스는 영지주의적 기독교 저서들은 물론이고, 예수에 대해 언급하는 이교도 저자들의 책도 몰수하고 소멸시킬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는 또한 교회에 고정된 수입이 할당되도록 조치하기도 했으며 로마의 주교를 라테란궁에 취임시켰다.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는 단지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허구 속의 가공의 인물일 따름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부처가 기독교의 성자로 둔갑한 일이다. "그리고 로마 카톨릭이 붓다를 중세 시대의 성 여호사밧의 성격으로 성인의 반열에 올린 것은 동양적인 것이 어떻게 서양적인 것으로 변화해 갔는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보기다. 중세기독교에 미친 불교의 영향을 잘 말해 주는 이 유명한 사례는 카톨릭 성자인 발라암과 여호사밧(라틴명은 요아삽 또는 요사팟)의 이야기다. 그 줄거리는 이렇다. 한 왕자가 어떤 인도 왕국의 승계자로 태어났다. 왕자가 탄생하자 나라안의 예언자들이 왕위 계승자로서의 그의 위대한 미래를 예언했다. 그런데 문득 한 현자가 나타나서, 그 왕자는 위대해지긴 하지만 통치자로서가 아니라 기독교 개종자로서 위대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왕자를 보호하고, 또 왕자가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의 부친은 그를 왕궁 안에 가뒀다. 어느 날 잠시 왕궁 밖을 나갔다가 왕자는 절름발이와 장님을 목격하고는 인생의 어두운 면을 알았다. 그런데 그 나라에는 발라암이라는 이름의 수도자가 있었다. 어느 날 이 수도자가 변장을 한 채 왕자 여호사밧을 찾아와 그를 기독교로 개종시켰다. 부친은 귀신 쫓는 마술이나 미녀들을 이용해 왕자를 세속의 삶으로 되돌아오게 하려고 애썼지만 헛수고였다. 성장한 여호사밧은 왕궁을 떠나 수도자 발라암과 함께 광야에서 수행을 했으며, 마침내 성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 여호사밧의 이야기가 고타마 붓다의 생애를 각색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이 이야기를 지은 사람은 붓다의 탄생, 유년지, 그리고 출가에 맞춰 이야기의 뼈대를 맞추었다. 또 네 장면의 목격, 여러 가지 유혹들, 광야에서의 고행 기간 등 모두가 붓다의 이야기의 한 토막이다." [파드마삼바바/ 티벳 死者의 書 / 류시화 편역 / 정신세계사 /P.52] 당시에 동서양으로 뻗어나간 마니교(Manichaeism)에 의해 부처의 이야기가 서양에도 어느정도 알려져 있었다. 시중에 떠도는 부처의 일대기를 적당히 각색하여 기독교의 성자(聖者)로 둔갑시킨 어처구니없는 일을 어떻게 봐야 할까? 사실, 카톨릭 성자 중에 전설 속의 허구인물이거나, 실존인물에 허구의 일대기를 갖다 붙였거나, 심지어 이교도의 성자를 기독교 성자로 둔갑시킨 예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빌라도 총독까지 성자(聖者)로 둔갑시키고 날조문서를 만들어 내던 사람들이 초대교회의 교인과 교부들이었다. 바로 그런 실없는 이야기를 창조해낸 사람들의 손아귀에 있던 성경이, 시간이 흘러 현재 여러분의 손으로 넘어오게 된 것이다. 예수라는 인물이 정말로 실존했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서 속의 예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이다. 복음서 속의 예수는 환상 속의 예수이다! 그가 실존했던지 아니면 실존하지 않았던 허구의 존재이던 간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서 속의 예수는 로마 제국 당시 중근동과 지중해 일대를 풍미했던 수많은 구세주 전설과 헬라철학에 의해 덧붙여지고 가공된 인물이라는 점은 피할 수 없다! (신화를 걷어내면 유대 혁명가같은 예수가 감지된다) 출 처: 자유사상가 원출처: http://urin79.com/zb/utdae/228891Vie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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