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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축복과 신의 축복을 받은 전설의 군함 엔터프라이즈
게시물ID : military_234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달빛하늘늘
추천 : 5
조회수 : 1080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06/07 17:11:54

미국에서 엔터프라이즈 의 이름을 버릴수 없는 건

세계 2차 대전으로 올라갑니다.

렉싱턴, 새라토가, 요크타운, 호넷, 와스프, 엔터프라이즈

이 6개의 항공모함은 세계2차 대전의 양상을 봐꿀 정도의 위엄이 있었음

 

출저 : 엔하 위키

 

 

1941년 12월 2일, 웨이크 섬에 비행기를 배달하고 돌아오던 엔터프라이즈호는 진주만으로 돌아온다. 원래대로라면 12월 6일에 입항했어야 하는데, 오다가 폭풍을 만나 일정이 하루 늦어진다. 그리고 일본은 12월 7일에 진주만 공습을 감행했고, 진주만은 피바다가 되었다.


일본군의 공습소식을 들은 엔터프라이즈는 서쪽에서 진주만으로 접근중이었고, 남쪽에서 일본 함대를 찾아 공격하는 임무를 받았지만 일본 함대는 북서쪽에 있어서 허탕을 친다. 어쨌든 엔터프라이즈가 진주만에 없었던 것은 일본군에게 있어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가 되었는데, 이유는 아래에 서술한다.


12월 10일 엔터프라이즈는 일본 잠수함 한 척을 격침한다.

 

1942년 2월 1일, 엔터프라이즈가 포함된 함대는 일본군이 점령한 길버트 제도를 기습하여 적함 3척을 격침한다. 2월 24일에는 웨이크 섬을 공격하고, 3월 4일 마커스 섬을 때린다.

 

4월 8일, 엔터프라이즈는 항모 호넷과 함께 비밀임무를 위해 출동한다. 그러나 4월 18일에 일본군이 그들을 발견했고, 여기서 엔터프라이즈의 전투기가 항공엄호를 담당하는 가운데 호넷이 배에 탑재한 폭격기(!) 편대를 발진시킨다. 이들이 바로 둘리틀 특공대였고, 일본은 대낮에 수도 도쿄를 폭격당하면서도 한 대의 폭격기도 못 잡는 치욕을 당한다. 이 수치스런 사태에 일본군은 분노하여 미드웨이를 묵사발내기 위해 연합함대를 출동시킨다.


5월 25일에 진주만을 출격한 엔터프라이즈는 미 해군의 주력으로서 나구모 제독의 항모전단과 격돌하고, 미드웨이 해전에서 진주만의 참패를 설욕한다. 나구모 제독은 항모 4척을 모두 잃었고, 이것으로 미국은 전세를 역전시킬 발판을 마련한다.


대승리를 거둔 엔터프라이즈는 7월 15일에 솔로몬 제도로 출격하여 2차 솔로몬 해전(동부 솔로몬 해전)에 참가했고, 이때 3발의 명중탄을 맞았지만 무사히 돌아와서 수리를 끝내고 다시 출격한다. 그러나 10월 26일, 엔터프라이즈는 동료 항모 호넷을 잃고 3발의 명중탄을 맞아 전선을 이탈한다. 그리고 미 해군에는 항공모함이 하나도 안 남았다

이때 일본군은 엔터프라이즈를 붙잡아서 침몰시키려고 했으나, 때마침 스콜이 쏟아져서 엔터프라이즈를 찾지 못했다. 일본군으로서는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었다

 

엔터프라이즈가 없어지자 일본군은 기고만장했고, 과달카날은 함락의 위기에 직면한다. 그러나 진주만으로 돌아가지 않고 근처에서 응급수리를 하던 엔터프라이즈가 다시 나타나 3차 솔로몬 해전에 참가한다.

 

어쨌든 엔터프라이즈는 1942년 한 해 동안 태평양에서 실질적으로 활동 가능한 유일한 미해군 정규항모로 혼자서 일본해군의 공세를 다 감당해냈다. 당시 엔터프라이즈의 한 정비사는 함교 벽에 흰색 페인트로 "Enterprise VS Japan"이라고 글씨를 휘갈겨서 당시의 심정을 표현했다고 한다.

 

1943년 5월 27일, 엔터프라이즈는 대혈투를 끝내고 진주만으로 귀환했고, 니미츠 제독은 대통령의 감사장을 수여한다. 이것은 미군 항공모함 중에서는 사상 최초다.

이후 엔터프라이즈는 대대적인 수리를 받은 후 11월에 전선으로 복귀한다. 길버트 제도와 마샬 제도에서 활약한 후 12월 9일에 진주만으로 귀환한다.

 

1944년 1월에는 마샬 제도 상륙작전을 지원하고, 2월에는 트랙 섬을 공습하는 등 상륙작전 지원과 양동공격 임무를 맡았다. 이후에도 비스마르크 제도, 케롤라인 제도, 팔라우 제도, 뉴기니아 섬 등 태평양 일대를 돌아다니며 상륙작전을 지원했으며, 필리핀 해 해전에서 칠면조 사냥에도 참가했고, 7월에 휴식을 위해 진주만으로 돌아갔다.


8월 24일에 재출격한 엔터프라이즈는 케롤라인 제도, 오가사와라 열도,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을 공격하고 레이테 만 해전에도 참가했다.


12월 24일에는 야간전투기 훈련도 시작했다.

 
1945년 1월에 출격한 엔터프라이즈는 일본과 인도네시아를 잇는 교통로를 자르고, 이오지마 전투에 참가한 아군을 지원한다. 이 무렵 일본군의 공격으로 약간의 손상을 입었고, 아군의 오발로 피격을 당하기도 했다.


4월 5일에 엔터프라이즈는 오키나와 전투에 참가한 미군을 지원하기 위해 출격한다. 작전을 수행하던 엔터프라이즈는 5월 14일에 26기의 일본항공기의 내습을 받지만, 6기를 대공포화로 격추시키고 19기는 상공초계기에 의해 격추되었다.

 

하지만 도미야스(富安)중위의 1기만이 집중포화를 피해 구름 속에 몸을 감춘 후 시시각각으로 구름사이 얼굴을 비친 엔터프라이즈의 위치를 확인한 후 살아남았다. 그리고 오전 6시 56분, 이 1대의 기체는 엔터프라이즈를 향해 자살돌격을 감행했다. 집중포화를 받았지만 함 바로 위에서 180도 좌측으로 선회하여 배면비행의 상태로 급강하해 전방 함재기 엘리베이터 후방에 돌입했다. 덤으로 돌입순간에 폭탄을 기체와 분리해서 폭탄이 격납고에 직격하도록 하는 등 피해면적을 확산시키는 재주까지 부렸다. 한마디로 말해서 카미카제를 안하고도 훌륭하게 적의 대형 군함을 성공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엘리트급 조종사가 직접 자살공격을 한 셈이었지만, 미군 말대로 일본군이 3년에 걸쳐 손대지 못한 군함을 혼자서 손댔으니까 대단한 위업이기는 하다.


이 공격으로 엔터프라이즈는 400피트 상공까지 연기가 피어오를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는데 전방의 엘리베이터는 120m 상공까지 솟아올랐다가 떨어져서 불탔으며 전사자 12명을 포함한 사상자 48명을 내면서 함 자체도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보통 이러면 모든 추진력을 잃어버리고 불타면서 떠돌다가 침몰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엔터프라이즈는 20분만에 불을 끄고 비행갑판을 정리해서 자력운항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비행갑판의 파손 및 구조손상을 대대적으로 수리할 필요가 있어서 제대로 된 수리를 위해 본국으로 귀환한 뒤 수리를 마치고 전장으로 되돌아오려고 하던 중에 전쟁이 종전되었다.

 

1941년 12월 7일부터 1945년 5월 14일까지 함 자체의 대공포와 항공기로 911대의 적기를 격추하고, 71척의 적함을 격침시켰으며, 최소한 192척의 적함을 파괴하거나 피해를 입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일본, 영국을 제외하고 엔터프라이즈가 혼자서 기록한 전과보다 더 큰 해군 전력을 보유한 나라는 없었으며, 인류역사상 이보다 더 큰 전과를 기록한 군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까지 엔하위키-

 

하여건 무척 전설적임 함으로 함 하나로 말 그대로 전세가 뒤집히는 일까지 나오니

그야 말로...

밑에 글의 요크 타운도 진짜 끈질겻지만

 

엔터프라이즈 함도 끈질긴 함

 

참고로 엔터프라이즈 의 이름은

CVN-65 엔터프라이즈 로

 

 

 

니미츠급 핵항모에 옴겨 졌지만

2012년 3월11일 마지막 임무를 7개월간 수행 하고 12월 1일

노포크 군함에 귀항 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참가한 가운데 퇴함식을 진행

2015년에 핵원료 제거 후 스크랩 처리(고철로 파는것)후 잠들 예정

1961년 첫항해를 시작해 2012년 마지막 임무를 끝으로

CVN-65 엔터프라이즈 함이 잠들지만

 

그 이름은 CVN-80 엔터프라이즈 로

레럴드 R. 포드급 항공모함 3번함으로 다시 붙여질 예정

보통 미국 항공모함은 대통령 이름을 쓰는데 비해서

엔터프라이즈 호는 2차 세계 대전부터 계속 이름이 내려오고 있음

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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