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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느끼는 낙타/20111003
게시물ID : today_552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매력kim
추천 : 6
조회수 : 15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10/21 13:33:54


 모두에게 한 번씩은 있었을 것이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여기저기 떠돌면서 여행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그렇게 산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에 빠지는, 그런 순간 말이다. 저자인 싼마오는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시절을 꼭 그렇게 살았다. 지금 이 시대에도 그렇게 유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미쳤느냐는 시선을 거두질 않는데, 그때야 오죽했을까. 그러나 그녀는 평범하게 사회에 거세당하는 것을 거절하고 인생을 자신의 방법으로 이끌어간다.

책 중에는 이런 부분이 있다.
.. 부모님께서는 매주 보내오는 편지에 늘 신신당부를 하신다.
'물하고 콜라값이 똑같다니, 너 분명 물은 잘 안 마시고 콜라만 마시겠구나. 물은 몸에 꼭 필요하단다. 허구한 날 콜라만 마시다가는 건강을 해친다. 꼭 물을 마셔라. 아무리 비싸더라도.....'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어찌나 큭큭 거렸던지. '저 사람도 정말 보통은 아닌 모양이다', 라는 생각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과연 보통이 아닌 이야기들이다. 정열적인 라틴계의 피가 흐르는 남편 호세와는 하루걸러 한 번씩 투닥거리면서 싸움을 하고, 온도가 너무 올라가는 낮에 콜라를 마실 것인가 물을 마실 것인가 하는 고민 앞에서 콜라만 마시다가 탈수 증세를 일으키기도 하며, 노예를 함부로 대하는 노예상인의 모습에 눈에 불을 키고 달려드는 모습까지, 참 별스럽고 따스한 것들이다.

이렇게, 그녀가 가진 열정은 그녀의 이야기를 특별하게 한다. 그것들이 차근차근 모여 그녀의 인생을 특별하게 하고, 또 끊임없이 이어져 50년 후를 사는 나의 앞까지 이어진 것이리라. 만일 그녀가 자신 속에 있는 열정을 꺾고 평범하게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유복했던 그녀의 부모 밑에서 그냥저냥 교육을 받다가 나이가 차면 시집을 가고, 그 당시의 여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제한되어 있는 사회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고 살다가, 자신을 죽여버린 채 그렇게 늙어 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당연히 50년 후 내가 그녀를 다시 돌아보면서 슬며시 웃는 일 역시 없었을 것이 아닌가? 다행히 그녀는 그녀 자신을 속이지 않았다. 그 사회가 말하는 테두리 안의 삶 속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여자들이 있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데 그녀는 자신이 후자라는 것을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정직하게 마주 앉아, 당돌하지만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 덕분에 그녀도, 나도 둘 다 유쾌한 이야기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을 아주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녀가 살아 있다면 열정을 한 조각만 나눠달라고 조르면서 이야기해봤을 텐데. 아쉬운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그녀가 왜 그렇게 척박한 땅으로 갔던 것인지가 궁금했다. 대만에서 제법 풍요로운 삶을 누렸던 사람이 삶의 무게가 버겁고 힘들어서 여행을 갔다. 그럼 여행을 가도 왜 하필 그렇게 고생과 참을 것이 넘쳐나는 땅으로 간 걸까.

책장을 다 덮고 나서야 퍼뜩 이런 생각이 날 덮쳤다. 그녀는 자신도 버텨 내지 못할, 이기기 힘들었던 허무에 저항하기 위해 오로지 무(無)가 넘쳐나는 공간으로 간 게 아닐까. 청춘을 사는 젊은이의 마음을 파먹어 가는 허무함과 불안함을 가장 잘 표현한 곳이 있다면, 그곳은 아마 사막이지 않겠는가.
그녀는 그곳에 가 한참을 마음껏 울었던 것이다. 자신을 좀먹어가는 허무를 눈앞에 그려 놓은 것 같은 사막 앞에 서서 웃고, 화내고, 소리 지르고, 말없이 고요히 모래가 흩날리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말이다.
그녀의 발랄하고 활기 넘치는 글들에는 단지 유쾌함만 있는 것이 아니다. 뒤에는 무언가 가슴을 아련하게 하는 서글픔이 묻어 있다. 나는 그것의 정체가 흐느끼고 있는 싼마오였음을, 이제야 알아챘다.


20111003

출처 http://book.naver.com/bookdb/today_book.nhn?bid=5413890
5년 전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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