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친절한 제령 사무소 4
게시물ID : panic_496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미스키튼
추천 : 27
조회수 : 1387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6/07 23:21:20

눈앞이 번쩍 하는 느낌에 순간 고개를 쳐들었다. 깜빡 졸은 모양이었다. 기대어 앉은 비상 통로 계단의 불투명한 유리 창문 사이로 또다시 무언가 번쩍 했다. 오늘 아침 일기예보에 저녁부터 비가 내린다고 했는데 번개가 친 듯 싶다. 차가운 시멘트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몇 시간째 기다리고 있자니 엉덩이가 시리고 허리가 시큰했다.

 

시계를 보니 아직 9시 10분. 아직 한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한다. 혹시나 싶어 등허리에 꽂아둔 영총과 옷 곳곳의 주머니에 넣어놓은 물건들을 확인했다. 다시 시계를 보니 9시 13분. 이 일은 처음부터 신경에 거슬렸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 중의 하나가 바로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다. 지금 나의 임무는 사람들 눈에 안 띄는 장소에서 의뢰인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10시 이후에 온다고 했으나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번 의뢰인은 나의 고등학교 동창생이었다.
그 아이는 나를 정확히 기억했지만, 나는 걔의 이름조차 가물가물하다. 졸업 앨범을 사지 않아서 딱히 확인할 길이 있진 않았지만 이름이나 외모가 완전히 낯설진 않은 걸로 봐서 동창은 맞는 거 같았다. 선미라는 이름의 내 동창생은 나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저기, 너, 안나지? 나 선미야. 혹시 기억해?”
“네? 누구시죠?”
“같은 반이었는데... 왜 그 깡마른데다 머리가 더부룩한 남자 선생님이 담임이었잖아.”
“아아~ 그 선생님!”


사실 여기까지 대화를 했어도 선미란 아이는 좀처럼 기억이 나질 않았지만, 그냥 대충 아는 척을 했다.


“어, 어떻게 잘 지내고 있어?”
“아니 뭐.. 그냥 그렇지. 근데 난 네가 이런 일을 할거라곤 생각 못했어.”
“이런 일이라니?”
“넌 늘 얌전하고.. 좀 숫기 없는.. 전형적인 모범생 인줄로만 알았는데..”
“사람은 변하니까. 너는 뭐하고 지내는데?”
“나? 나는 지금 간호사해. 안 그래도 우리 병원일 때문에 전화했어.”
이렇게 시작된 얘기는 중간 중간 다른 얘기까지 섞어가며 거의 한 시간을 계속했다.

 

전체적인 얘기를 종합해보면, 선미는 지금 지하 주차장까지 포함한 4층 건물에 약 서른 개의 병실을 가진 내과 전문 개인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일년 전까지만 해도 그 분야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치료 프로세스를 바탕으로 독보적인 성공을 거두며 승승장구 하던 병원-정확히는 병원 원장-이었지만, 일년 전부터, 이상하게 한 달에 두어 명은 꼭 돌연사로 죽어나갔다. 꼭 생사를 오락가락하는 중병이어서 죽는 게 아니라 맹장, 위염 등 사망 가능성이 드물거나 아예 제로에 가까운 병을 지닌 환자도 마치 제비 뽑기 하듯이 무작위로 꾸준히 죽어나갔다. 그러다 보니 병원을 둘러싼 괴소문들도 생겨났고 평소 이 병원을 시기하던 타 병원 사람들이 언론을 섭외해 심심치 않게 ‘병을 고치고 죽음을 주는 병원’, ‘치료비 대신 당신의 목숨을 주세요’ 라는 타이틀로 가십기사를 실어댔다. 물론 나도 그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계속 끊이지 않고 돌연사가 계속되다 보니 원장도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별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었다고 한다. 한번은 몰래 무당을 불러 굿까지 했다고 하니, 그 심정도 알만했다. 결국 하다하다 못해 최후의 선택으로 나에게 의뢰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이미 이 분야에서 나름대로 이름이 있기 때문에 알아보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그래서 모든걸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처리하길 원하는 원장의 의견으로 나는 면회 시간이 끝나는 때 즈음에 몰래 병원에 들어와 간호사나 의사들이 원장에 의해 모두 강제 퇴근될 때까지 이렇게 계단 구석에서 몸을 숨기고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이 병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위해 선미가 몰래 같이 남아주겠다고 해서 다행이었다.

 

아까 병원 안을 둘러보고 오겠다고 했던 호우가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 오 분만 더 기다려보고 전서령(傳書靈)을 보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병원은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건물답게 깨끗하고 현대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빈틈 없이 하얗게 칠한 벽에 머리를 기대고 계속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축축하게 습기를 머금은 공기를 마시고 있자니 괜히 기분이 을씨년스러웠다. 중간 중간 번개와 천둥도 끊이지 않고 계속 내려치고 있었다.

 

갑자기 한기가 발목을 스치는 느낌이 들어 재빨리 영총을 꺼내 겨눴다.
“누구야!”
- 나다. 설마 두 번 죽일 참이냐?
“아, 호우. 왜 이렇게 늦은 거야?”
- 병원을 둘러 봤는데, 잡령 하나 없더군. 아주 깨끗해.
“..........”
- 원래 큰 나무 옆에선 다른 나무는 자라지 못하는 법이지.
“알고 있어. 확실히 여기 뭔가가 살고 있다는 얘기로군.”
- 알고 있겠지만, 나는 인간 몸 속에 사는 영은 상대할 수 없어.
“그래. 만약 사람 몸 속에서 뭔가 살고 있는 거라면 정말 곤란해 지겠지.”
- 병실 마다 살펴봤는데 하나 걸리는 게 있어.
“?”
- 내가 봤을 땐 거기가 중심일 거 같..
호우가 말을 끝내기 전에 철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원장이 나왔다.
“지안나씨, 이쪽입니다.”


“지금 급하게 전 병실 환자 모두 바이탈 체크를 끝내고 직원들 모두 퇴근 시켰습니다. 그리고 이건 병원 구조도 입니다. 가능하면 오늘 안에 원인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그렇게 됐으면 합니다. 노력해보지요.”
“필요하신 서류는 다 찾아보실 수 있도록 원장실과 원목실 마스터 키를 준비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네. 말씀하신 대로 정확히 6시에 오겠습니다.”

원장은 굳은 표정으로 해결을 부탁하며 나갔다.

 

나는 호우와 함께 병원에서 밖으로 연결되는 문마다 결계 부적을 붙여나갔다.

출구를 봉하는 작업을 끝낸 후 호우와 나는 각 병실을 둘러보기로 했다. 1층. 2층. 3층...
아직까진 별다른 것도 없고 영의 흔적도 없었다.

호우와 나는 복도가 보이는 주사실의 침대에 걸터앉아 상황을 살피기로 했다.


“왠지 누군가 일부러 깨끗하게 청소한 듯한 느낌이야.”
- ..........
“흐음... 도대체 원하는 게 뭐지?”
- 그건 두고 봐야 알겠지만, 지금은 죽은 듯 있는 그 놈을 끌어내는 게 더 중요하다.
“아마 그 쪽에서도 날 눈치챘을 텐데 말이지..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게 너무 이상해.”

저 멀리서 선미가 급하게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안나야, 저기 환자가 이상해. 빨리 가봐줘!”

숨을 헐떡이며 다급하게 말하는 선미 뒤로 그림자가 두 겹이 비쳤다. 조명은 분명히 위에서 바로 내려오는 조명 하나뿐인데. 나는 재빨리 팔꿈치 뒤에 묶어둔 영도를 꺼내 그림자를 베었다.

끼아아아아-----

 

귀를 찌르는 비명과 함께 그림자는 베어지고 선미는 쓰러졌다.
- 시작이군.
“그래. 지금부터 게임 시작이야.”


아까 호우가 말한 이상하다는 병실은 3층에 있었다. 호우에게 다시 한번 확실히 찾아봐 줄 것을 부탁했지만 감쪽같이 사라진 영기에 호우도 난감해 하는 듯했다.
- 옮겨 다니는 녀석은 아닌 거 같아. 그랬다면 옮기는 도중에 내가 물어버렸을 테니까.
“지금쯤 어딘가에서 환자처럼 누워있겠지.”
맨 끝 병실부터 차근차근 뒤지기 시작했다. 모든 환자들은 계획대로 잠들어 있었다. 원장의 말에 따르면 수면제의 약효는 새벽 6시쯤까지 갈 거라고 했다. 지금 시간은 10시 40분. 7시간 가량이 남았다. 이 안에 찾아내면 좋을 텐데.

 

병실을 차근차근 주의 깊게 살피고 있는데 병실 안쪽의 커튼이 드리워진 침대에서 울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응?’
커튼을 들춰보니 너댓살 정도의 여자 아이였다. 아니, 남자 아이였다. 아니, 똑같은 얼굴을 한 쌍둥이였다.
두 명의 꼬마는 침대에 걸터 앉아 울고 있었다. 구별할 방법은 머리 길이 뿐인 완벽히 똑같은 쌍둥이였다.
“꼬마야, 왜 울고 있니?”
“어..엄마가.. 저 때문에..”
아이를 달래주려 고개를 숙이는데 희미한 향내음이 풍겼다.
‘이 냄새는?’
순간 흠칫 놀라 고개를 드는 찰나에 아이의 손이 내 팔을 할퀴었다.
“아앗!”
“내 집에 온 걸 환영해. 안나 언니.”

 

재빨리 몸을 틀어 공격을 피했지만 두 아이의 민첩한 몸놀림에 허리부터 허벅지까지 길게 베인 자국이 생겼다. 한 손에 영도를 들고 미끄러지듯 복도로 뛰쳐나왔지만 윗옷 자락을 아이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아이 둘은 내 다리와 등에 매달려 이빨로 내 살을 뜯어내려 하고 있었다.

“호우! 호우! 어서 은수에게 연락해! 백단향(白檀香)을 쓰는 그 놈! 아, 갑자기 이름이 생각 안나. 암튼 그 놈 지금 어디서 뭐 하는지 좀 알아봐달라고 해!”
- 알았다.
호우는 바람처럼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나는 몸을 피해 건너편 진찰실 앞에 결계 부적을 붙이고 들어갔다. 문밖에서 텅텅거리는 몸 부딪히는 소리가 계속 들렸지만 아직까진 결계가 뚫릴 걱정은 없어 보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문과 천정에 부적을 두 장씩 더 붙이고 웃옷을 벗어 상처를 들여다봤다. 제법 깊게 파여서 피가 조금씩 멈추지 않고 흘렀다.
“제길.. 붕대도 없는데.”
이 말을 하고 나서 순간 웃음이 나왔다. 여기가 어딘지 잠시 잊었다. 병원에서 붕대가 없다는 소릴 하다니. 눈에 띄는 선반을 열어보니 거즈가 보였고 옆 선반에는 붕대가 크기 별로 여러 개 구비되어 있었다. 대충 뒤져 소독약을 찾아 상처에 붓고 거즈를 대고 붕대를 감았다. 너무 쓰라려 눈이 저절로 감길 정도였지만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후우, 후우,-“
숨을 고르고 상처 난 팔도 붕대를 감았다. 아까 뛰면서 피를 좀 흘렸는지 머리가 약간 멍했지만 상처의 쓰라림으로 금세 정신이 들었다. 내 기억에 의하면 저 향을 풍기는 영은 그 놈이었다. 이름은 당장 떠오르지 않았지만, 다른 영능력자가 몇 번이나 퇴치하려다 실패했다는 그 놈은 인간을 죽여 작게 압축해 그 조각을 퍼즐처럼 맞춰서 새로운 자신의 몸을 만드는 아주 저질 중의 저질급 영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거의 인간이 되었다는 말도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문이니 믿질 않았다. 근데, 그 영이 쌍둥이의 몸에 있다니?

 

쨍그랑!


소리와 함께 유리창이 깨졌다. 아차 싶어 얼른 부적으로 창문에 결계를 펴려는데 아래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안나! 나야! 이거 받아!”
호우와 함께 은수가 와 있었다. 은수는 둘둘 말린 묵직한 천을 던졌다. 열어보니 무전기가 있었다.


“치익- 내 말 들려?”
“어, 그래. 잘 들려.”
“지금 내가 들어가고 싶지만, 아무래도 그 놈이 확실한 거 같다. 난 죽기는 싫으니까 여기서 정보나 줄게.”
“그래, 알았어.”
“너도 짐작하고 있겠지만, 그 놈은 주작령(朱雀靈)이야. 남방의 신이 되려다 실패하고 결국 악령이 되었지.”
“아! 주작! 아아, 어떻게 백호를 보고도 그 이름이 안 떠올랐지?!”
“그 놈의 본체는 지금 아무데도 없는 걸로 되어있어. 그러니까 아마 병원 안에 있는 게 본체일거야.”
“하지만 여기 있는 건 기껏해야 다섯 살 정도의 쌍둥이라구!”
“뭐?”
“뭔가 있어. 좀 더 알아봐줘. 난 일단 부딪혀볼테니까.”
“알았어.”


몸에 감긴 붕대들을 손으로 툭툭 쳐 확인 한 후, 결계를 뜯고 밖으로 나갔다. 밖은 적막하게 고요했다.


가만히 서서 기를 돌려 주작령의 위치를 가늠하고 있는데 갑자기 무언가 내 발목을 잡았다.

“언니, 놀자!”


“꺄악!”

순간 너무 놀란 나는 발목을 털며 도망가려 했지만 그 쌍둥이 꼬마는 꼬마의 힘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내 발목을 비틀었다.
“아악!!”
으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발목이 비틀려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대기실 의자 밑에 숨어있던 사내아이도 나와 가세했다.
“누나, 놀자!”
사내아이는 내 머리칼을 붙잡고 내 머리를 들어 바닥에 내리쳤다. 비릿한 피비린내와 함께 눈 위로 피가 흘렀다.
나는 영총을 꺼내 사내아이의 머리에 겨눴다.
“누나, 그럼 안되지. 쏘아봤자 나는 살지만, 이 아이는 죽을걸?”
“제길!”
힘을 모아 발목에 매달린 계집애와 머리를 잡고 흔드는 사내애를 뿌리쳤다. 복도를 뛰어 도망가는데 아까 쓰러지면서 상처가 터졌는지 자꾸 피가 흘러 바닥이 미끄러웠다. 깨진 창문으로 들어온 호우가 일갈성을 날렸다. 그 소리를 듣고 쌍둥이는 멈칫했다.

 

“제법인데... 나 저 호랑이 맘에 들어.”
“그래, 나도 맘에 들어.”
“저거 잡아서 키우자!”
“그래! 키우자!”
아이들은 더욱 즐겁다는 표정으로 나와 호우를 뒤쫓았다.


-인간, 저 아이에게서 영만 분리시켜줘. 그럼 내가 마무리 할 수 있다.
“그걸 내가 할 수 있으면 지금 도망가고 있겠어?!”
- 지금 상태로는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렇게 말 안 해도 알고 있어! 제길! 제길!”
눈 앞에 화장실이 보였다. 나는 재빨리 한 칸에 들어가 부적과 금줄을 두르고 숨을 골랐다.


“언니 어딨어?”
“누나 어딨어?”
화장실 안으로 들어오는 아이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나는 숨을 죽이고 기를 죽여 가만히 있었다.


“치익- 안나, 드디어 알았어!”


“여기 있네!!”

“여기 있네!!”


무전기 소리로 눈치를 챈 아이들이 내가 있는 칸 틈새로 나를 노려보았다.
“언니, 나와. 우리 같이 놀자. 응?”
두 아이의 작은 손가락들이 문틈 사이로 꿈틀거렸다. 결계 덕에 문을 통과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저 정도로 한다는 것 자체가 섬뜩했다. 아이의 자그마한 손가락들이 꿈틀대며 문의 경첩에 살이 비틀려 벗겨지고 있었다.
“뭘 알아냈다는 거야?”
“주작령이 어떻게 아이에게 들어갔는지를 알아냈어.”
“그래서, 어떻게 하면 주작령을 제령할 수 있는데?”
“.....아차, 그건 좀 생각해볼게.”
“야, 야!!”
치직 소리와 함께 무선이 끊겼다.


이도 저도 하지 못한 채 변기 위에 앉아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영이 조금만이라도 쌍둥이의 몸을 벗어나면 호우가 처리를 해줄텐데. 어떻게 꺼내야 하는 지가 막막했다.


“안나야, 지금 어디 있어? 나 무서워...”
선미의 목소리였다.


“안나.. 꺄아아아아악!”

 

갑자기 들려온 선미의 찢어지는 비명 소리에 나는 급히 문을 열고 나왔다.


“선미야! 괜찮아?”

화장실 문을 열자 내 눈에 들어온 건 두 쌍둥이 뿐이었다.

“언니 이제 나왔네.”
“누나 다시 놀자”
“이..이것들이!!”
속임수라 생각지 못한 나의 실수였다. 아이들은 내가 한 손으로 다시 화장실 문을 건드리며 조금씩 들어가려는 걸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들어가면 안되지!”
섬칫한 외침과 함께 아이들은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영총으로 사내아이의 정강이를 쏘아 틈을 만들어 달아났다.


“안나, 내 말 들려?”
“어, 들..”
도망을 가며 응답하다 복도에서 넘어져 굴렀다. 억지로 뛰려 했더니 아까 뒤틀린 발목이 견디질 못한 것이다. 넘어지면서 바닥에 떨어진 무전기는 호선을 그리며 복도 끝으로 미끄러졌다.
“젠장! 젠장!”
주머니를 뒤져 수성계의 부적을 꺼내 손의 기운을 모아 부적을 공중에 띄웠다. 부적은 공중에 잠시 떠 있다 투명한 물방울을 흩뿌리며 수성 계열의 결계를 만들었다. 호우도 어느새 결계에 들어와 앉아있었다. 앞에서 열 걸음도 안 떨어진 자리에선 사내애를 부축한 계집애가 섬뜩한 미소를 지은 채 노려보며 결계의 힘이 약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 정말 도움이 안 되는구나.”
- 나약한 인간에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다.
“빌어먹을! 이런 일 인줄 알았으면 저번 일에서 공격계 부적을 다 써버리는 게 아니었어!”
- 뭐든지 일에는 계획이 중요한 법이다.
“부적만 더 있었어도 이길 수 있는데.”
- 내가 보기엔 너 스스로의 영능력 자체도 의심스럽다. 그러고도 이 일을 하다니. 여태껏 살아있는 게 용하다. 영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인간은 부적에 의존하지 않는다.
“지금 꼭 그렇게 화를 돋궈야 되겠어?”


쨍그랑!!

 

복도의 창문이 깨지고 쇠로 된 작은 가방이 들어와 빙글빙글 돌며 바로 근처에 멈췄다.
“안나! 안나! 내 말 들려?”
밑에서 빗소리와 섞여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은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내가 준 건 죽은 이들을 부르는 부적이야! 그걸로 돌연사한 사람들을 깨워!”

갑자기 눈이 뜨이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결계 밖으로 손을 뻗어 가방을 잡았다. 순간 계집아이가 내 팔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나는 재빠르게 팔을 추스려 가방을 챙겼다. 가방을 열자 눈에 익은 은수의 글씨로 적힌 주문 종이 하나와 붉은 종이에 검은 글씨로 쓰여진 큰 부적 한 장이 보였다.

 

나는 정좌를 틀고 앉아 허리를 곧추세우고 기를 돌렸다.
“윽,”
몸에 기를 돌리니 허리며 발목이며 온갖 곳이 다 욱신거렸지만 최대한 잡념을 없애고 정신을 집중시켰다.
“후우-“
숨을 고르며 앞에 부적을 펼친 뒤 은수가 적어준 주문을 읽어나갔다.

 

“신의 손을 벗어난 망령이여, 악마의 축복을 받은 원혼이여….”
앞에서 기회를 노리던 쌍둥이의 얼굴이 순간 표독스럽게 변하며 일그러졌다.

 

“캬아악!!!!”
그 둘은 결계를 향해 무작정 뛰어들어 죽기 살기로 결계를 뜯어내려 하고 있었다.

 

“생명의 흐름을 저버린 이들이여, 이제로부터 구원을 받아 다시 삶을 누리되, 당신을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트린 이를 잊지 마라.”


호우의 귀가 쫑긋 섰다. 뭔가 주변에서 원을 그리며 피어 오르고 있었다.

 

“세상이 너에게 다시금 삶을 주리니 그대들의 마음 속 원한을 씻어 새로운 생명의 발돋움으로 삼아-”

“다시는 떠돌지 말지어다!”


주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결계가 깨지며 부적이 커다란 원을 그리며 타 들어갔다. 그 원을 중심으로 뿌연 안개가 퍼지면서 점차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갔다. 쌍둥이들이 나에게 달려들려고 했으나, 이미 다시 깨어버린 수십 명의 원혼이 그 둘을 잡아챘다. 그들은 당장 주작령의 혼을 씹어먹기 위해 어떻게든 주작령을 쌍둥이에게서 끄집어 내려고 몸 곳곳에 기생충처럼 붙어 버렸다. 쌍둥이는 원한에 찬 표정으로 나에게 달려오려 했으나, 워낙 강한 원한을 지닌 혼령들이 둘러쌓아버리니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옆에선 호우가, 영이 조금이라도 나올 때를 기다리며 몸을 숙이고 공격 자세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참을 실랑이 한 끝에, 사내아이의 정수리에서 약간의 기운이 솟았다. 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든 호우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그 영을 물어 뜯어 내 바로 앞 바닥에 내팽겨쳤다. 나는 재빨리 봉하는 부적을 덮어 영을 가뒀다. 호우는 싱긋 웃는 듯한 얼굴로 계집애의 영도 틈이 보이길 기다리고 있었다. 수많은 영들의 집요한 공격에 못 이겨 이제 계집아이도 거의 기운이 빠져가고 있었다. 호우가 또 신나 하겠군, 생각하며 호우가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호우?”


호우는 내 등 너머 비상 계단의 문 쪽을 향해 경계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뭔가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 기어가 라디에이터를 짚고 일어서 벽을 따라 절뚝거리며 문에 다가갔다. 문 손잡이를 잡고 돌리려는데 뭔가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문을 연 순간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 곳에는 키가 2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조각조각 가죽으로 기괴하게 몸을 이어 붙인,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가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 인간, 엎드려!

호우가 외치며 뒤에서 달려들어 그 남자의 어깻죽지를 물어 뜯고는 둘 다 같이 계단으로 굴러버렸다.

 

‘저게 주작령이 만들던 자신의 본체?!’

황급히 난간을 잡고 따라 내려갔다. 바로 한 층 밑까지 굴러 떨어진 둘은 서로 엉켜 싸우고 있었다. 나는 영총을 꺼내 겨눴지만 둘 다 너무 붙어 있어 제대로 조준을 할 수 없었다.

 

‘잠깐, 저게 왜 여기까지 올라왔지? 뭔가 큰 위협이 있지 않고선 저렇게 자신의 모습을 보일 리가 없는데...?’

짚이는 게 있어 다시 난간을 붙잡고 깡총발로 올라 복도 문을 열었다. 아직도 원혼들이 뒤엉켜 계집애의 혼을 뽑으려 했지만 아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게 위험하니까 올라온 거군.’
원혼들이 혼을 뽑아주길 기다렸지만, 되려 원혼들이 하나씩 힘을 잃어갔다.

...어쩔 수 없이 결단을 내려야 했다.


탕!!

 

탄환은 혼 하나를 꿰뚫고 계집아이의 어깨에 박혔다. 원래 총탄의 힘은 그다지 강하지 않지만 상대가 어린아이의 몸이기에 치명상에 가까운 부상을 입힐 수 있었다. 영총을 맞자 아이의 몸이 심하게 비틀거렸다. 원혼들은 놀라 사라졌고, 아이의 어깨와 머리에 박힌 총알에서 기생령(寄生靈)이 수십, 수백 마리가 뛰쳐나와 머리를 갉아 혼을 파먹기 시작했다.

 

아이는 쓰러졌다. 그리고 오 분도 채 되지 않아 머리는 다 먹혀버렸다.

 

“호우! 호우!”
호우의 안부가 걱정돼 급히 비상 계단의 문을 열었다. 다행히 바로 앞에 호우가 얌전히 앉아있었다.
- 그 녀석은 껍데기였어. 몇 번 실랑이 하지 않아 그냥 죽어버리더군.
“근데 왜 안 들어온 거야!”
- 문 여는 법 모른다.
“그냥 통과하면 되잖아!”
- 정말 멍청하군. 아까 우리가 결계 부적을 붙인 건 기억나지 않나?
호우의 톡 쏘는 한마디에 방금까지 들었던 걱정은 다 사라져버렸다. 정말 정 안 붙는 녀석이야.


모든 게 사라지고 적막함이 감돌자 복도 끝에 굴러간 무전기에서 치직거리는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칙- 안나! 제발 좀 받아봐!”
긴장이 풀려 물 먹은 솜처럼 늘어진 몸을 이끌고 무전기를 잡았다.
“...다 끝났다, 은수야...”
“살아 있구나! 야- 정말 다행이야.”
“이제 들어와도 돼. 나 좀 살려주라. 출혈이 너무 많았나 봐. 정신이 몽롱해.”
“어 그래. 지금 가”
대화가 끝나자 지금껏 버틴게 신기할 정도로 잠이 쏟아졌다. 힘이 빠져 들리지도 않는 팔을 들어 시계를 보니 5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아.. 원장 올 때까지 잠깐 눈 좀 붙여야겠어.

멀리서 아득하게 은수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


눈을 떴을 땐 하얀 병실 천장이 보였다. 옆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는 걸로 보아 1인실이었다. 발치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일어났구나!”
침대 발치의 소파에서 무언가를 꿰고 있던 은수가 반갑게 인사했다.
“호우는 침대 밑 구석에서 자고 있어.”
“.....”
“지금 거의 점심때야. 이제 곧 원장이 올 거야.”
“...뒤처리는?”
“별걱정을 다하네. 내가 누구냐. 다 깨끗하게 처리하고, 나도 짭짤하게 수입 올렸지.”
“수입?”
“어. 주작령이 만들던 그 조각 인간의 조각 하나하나가 다 영력이 있는 인간들꺼더라구. 그걸로 물건 만들면 아마 꽤 나올 거야. 일부러 그렇게 모았나 봐. 참, 그러고 보니 너도 죽이려고 일부러 부른 건가?”
“너 지금 꿰고 있는게 그 가죽이야?”
“응. 그럼.”

"윽..."
“그 쌍둥이네 엄마. 아니, 쌍둥이가 아니지 참. 암튼 그 엄마가 임신할 때 병으로 고생했었대. 근데 임신 중이라 약을 먹을 수 없어서 시어머니랑 같이 무당집을 찾아갔었는데, 거기서 굿을 해준 사람이 주작령을 섬겼나봐.”
“쌍둥이가 아냐?”

“응. 아들 하나. 여튼 주작령이 머물 곳을 찾다가 그 엄마가 굿을 하러 오니 기회다 싶었겠지. 근데 집안 대대로 수호령이 강해서 아들 몸에 직접적으로 들어가지는 못한 것 같아. 일단 성체를 만들기 위해 아들의 기를 빨면서 몸을 키웠는데, 아마 예상보다 인간의 성장 속도가 너무 느렸는지 몸을 바꾸려고 별 짓을 다 한 모양이야. 하긴.. 다섯 살짜리 몸으로 뭘 하겠어.”
“아.. 다행이야. 그럼 나는 사람을 죽인 건 아니로군.”
“어쨌든, 너도 이 기회에 힘 좀 길러봐. 아무리 주작령이라고 해도 어린애 기로 움직인 영 하나 없애는데 이렇게 끙끙대다간 머지 않아 죽겠다.”
“안그래도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참, 선미는 좀 괜찮아?”
“응? 그게 누군데?”
“선미말야. 간호사인데 어제 나랑 같이 있었어. 내 동창.”
“몰라. 어제 왔을 땐 환자들 빼고 너 밖에 없었어.”

순간 몸에 소름이 돋았다. 선미가 없었다고?

 

때마침 원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설마설마 했지만 정말 귀신과 관계된 일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별말씀을요. 윤 간호사는 어떤가요?”
“윤 간호사요? 누구를 말씀하시는지..?”
“윤선미 간호사요.”
“윤선미..? 저희 병원엔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아니, 전 분명히 윤선미씨에게 얘기를 또 따로 들었는데요. 원장님과 합의 된 것 아니었습니까?”
“하하.. 지안나씨. 저희 병원엔 윤씨 성을 가진 간호사도 없고, 의뢰 문제는 비밀리에 저희 내부 인사과 직원들끼리의 상의로 결정된 일이었습니다.”

 

원장이 그 후에도 뭐라고 나의 수고에 대한 감사의 말을 했지만 잘 기억 나진 않는다. 원장은 내 손을 잡고 인사를 한 번 더 한 후, 또 한번 열변을 토하려다 붕대를 갈기 위해 간호사가 들어오고 나서야 나갔다.
“출혈이 심하신데도 회복력이 정말 좋으시네요.”
“저기.. 정말 윤선미라는 간호사가 없나요?”
“네? 그런 간호사는 없는데요.”

나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묵묵히 내 붕대를 갈아주던 간호사가 갑자기 뭐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아, 환자 중에 윤선미라는 사람은 있었어요.”
“네? 환자요?”
“네. 하지만 며칠 전에 돌연사로 죽었어요. 참 착한 아가씨였는데.. 워낙 얌전하기도 했고, 또. 맞다, 간호사가 꿈이라고 했었어요.”

 

*

 

이런 일을 하다보면 현실적인 감각으로는 다 믿을 수 없는 일들을 접하게 된다.
나 역시 영을 늘 보고 접하는 사람이지만.. 이런 일은 뭐라 말할 수 없이 착잡한 기분을 안겨준다.
선미가 과연 내 동창생이긴 했을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뭐 동창이든 아니든 무슨 상관이냐. 결국 나는 주작령뿐만 아니라 선미라는 착한 아가씨의 영까지도 성불시켰는데. 어떤 사람이었든, 고인의 명복만 빌고 그냥 잊기로 했다.

“은수야.”
“응?”
“나. 좀 잘게. 호우 일어나면 미리 고맙다고 전해줘.”
“그래. 좀 푹자.”


큰 일을 끝내서인지 오랜만에 달콤하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