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419와 경향신문, 그리고 현재
게시물ID : sisa_5336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보드리베베
추천 : 10
조회수 : 45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08/06/10 10:31:20
- 419 -

해방 이후 자유당 정권의 정치적 무능은 온갖 부패와 모순을 초래했으며. 남북 분단이 낳은 이데올로기의 대치는 자유당 정권의 독재의 방패 실을 하게 되었고, 이른바 1952년 '발췌개헌', 1954년 '4사5입 개헌'이라는 일련의 정치적 사건으로 하여금 그 세력을 강화하게 하였죠.

1960년에 정.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하는 자유당 정권은 이미 지지 기반의 약화를 감지하면서 사상 유례없는 부정선거를 감행합니다. 전국 경찰의 인사 이동을 통해 주요직에 충성을 맹세한 인물을 배치하였으며, 야당의 분열 공작과 이정재 등의 정치깡패를 동원한 유세 방해 등을 자행하였죠. 막대한 정치 자금을 부정선거 공작에 투입하고 교사들까지 동원한 감시 투표 작전을 감행, 4할에 해당하는 기표용지를 미리 기표하여 투표함에 넣어 두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3월 15일 아침 아침 7시에 투표가 개시되었으나 야당계 유권자에게는 번호표가 배부되지 않았습니다. 야당 참관인은 강제로 축출되었고, 폭력배와 경찰의 삼엄한 '부정선거 비호'속에서 선거는 막을 내렸습니다.

전국이 모두 비슷한 상황이었으나 마산에서는 민주당이 선거 포기를 선언하고 평화적인 시위에 돌입했습니다. 경찰이 이들을 체포하자 마산 시민들은 민주당 사무실 앞으로 모여들었죠. 그런데 어디선가 갑자기 몽둥이를 은 청년들이 나타나서 어린이, 노인을 불문하고 구타하기 시작했습니다.. 흥분한 시민들이 파출소로 몰려들자 대기중이던 소방차가 물세계를 퍼부었고 시민들은 돌을 던지면서 응수했습니다.. 

한편 해가 떨어지면서 주동자도 지시도 없었지만 시청 앞에 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집결된 사람들이 웅성대고 있자니 갑자기 실탄 소리가 귓가를 스치기 시작했죠. 

경찰들이 밝은 라이트를 켠채 발사하면서 학생들의 접근을 저지했던 것입니다. 총탄에 맞아 쓰러지는 비무장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시민들은 열심히 돌을 날랐지만 총 앞에서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후퇴하던 학생과 시민들에게 무자비한 사격이 가해졌습니다. 

다음날 16일 아침 신문에는 '자유당의 완전 승리, 이승만 92%, 이기붕 78% 지지율'이라는 기사가 대서 특필되었지만 전국은 마산에서의 발포문제로 온통 술렁임 속이었습니다. 당황한 경찰 당국은 "위협 공포만을 쏘라 했다"는 거짓 발표를 하게 됩니다. 

또한 시체들의 호주머니에 삐라를 집어넣어 "빨갱이들이 선동을 하고 있다"는 조작을 하고, "공포를 쐈음에도 시민이 많은 돌을 던지는 바람에 공중에 쏜 총탄이 돌과 충돌하여 시민에게 맞은 것이다" "총알이 시위대 정면에 박힌 이유는 총을 쥔 경찰이 돌에 맞아 고개를 숙이다가 총이 잘못되어 정면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등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합니다. 

4월 11일 오전 11시 20분 마산시 신포동 중앙 부두 앞바다 2백미터 떨어진 수면 위로 괴이한 모양의 시체가 떠올랐죠. 교복 차림의 10대 소년이 오른쪽 눈 위에 최루탄이 박힌 채 떠오른 것이었죠. 시체를 낚아올린 시민이 이를 부두에 올려놓자 누군가의 입에서 "김주열이다"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김주열을 금방 알아본 것은 그의 어머니의 애타는 호소때문이었습니다. 김주열은 그 해 봄 마산 상고에 입학 시험을 치르러 왔다가 3·15 데모에 참가한 후 실종되었으며 그의 행방만이 묘연하자 그의 어머니는 실성한 듯이 아들을 찾아 헤맸고, 그러는 사이 '김주열 미스테리'는 마산 시민의 머리속에 깊이 새겨졌던 것입니다. 

김주열의 처참한 시체가 발견되자 격분한 시민들은 성난 물결을 이루며 데모에 들어갔고 경찰이 시체를 도립 병원에 안치시키자 다시 시체 인도를 요구하는 3천여 시민, 학생들이 결집해서 경찰서를 포위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2차 마산봉기는 독재자의 총탄에도 굴하지 않은 채 연일 계속되어 4.18 고대 학생 데모, 4.19 혁명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네이버지식인 발췌-


-경향신문 폐간사건-
59년 새해, 84세의 이승만이 다음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뜻을 밝히자 경향신문은 날카로운 필봉으로 정부를 공격하다 몇가지 트집을 잡혔다. 
첫째, 국가보안법 파동을 수습하는데 정부와 여당이 무성의하다고 지적한 1월 11일자 사설 ‘정부와 여당의 지리멸렬’과 ‘다수결의 원칙과 윤리’라는 2월 4일자 단평 때문이었다. 
이에 편집국은 압수수색 당했고 편집국장 강영수와 사장 한창우는 연행돼 심문을 받았다. 
또한 필자 주요한은 ‘내란선동죄’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되었고 정부는 4월 30일 국무회의를 소집해 경향신문의 폐간조치를 확정, 그날 밤 10시를 기하여 윤전기를 세웠다. 


-현재-
위에 적힌거랑 비슷.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