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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비사1. 승리의 여신이 연합군에게 준 선물 '무다구치 렌야 중장
게시물ID : military_553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초롱이아빠7
추천 : 10
조회수 : 2641회
댓글수 : 27개
등록시간 : 2015/05/15 14:03:10
2차세계대전 비사

며칠전에 2차대전 비사 올려보겠다고 썼던 자게이에요~~~

시간이 좀 지났지만 긁적 긁적 글을 적어 봅니다.

리플로 많이 호응 해주세요 ^^ 힘내서 2탄도 적어 볼께요 ^^

리플 없으면...걍 이걸로 쫑 치구요(리플 받고 싶어 협박하는 중 ㅋㅋㅋㅋ)



1. 승리의 여신이 연합군에게 준 선물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대우 받아 마땅한 무다구치 렌야

1404625550_무다구치.jpg




1910년...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군인의 길에 들어선다.


소좌 시절에는 러시아 극동의 캄차카 반도에 들어가 홀로 종단하며 정찰활동을 벌이기도 한다.

나름대로 능력을 발휘한 인물.

1936년...베이징 주둔의 일본 연대의 연대장으로 복무...자신의 연대의 한 병사가 어느날 밤에 

실종....이에 노구교 다리에서 대치하던 국민당군에 병사를 찾게 니네 부대좀 살펴볼께....라고 요청...


당연히 국민당군은 "놀구 자빠졌네"

이에 무다구치 렌야 연대가 국민당군을 공격....이로써 일본의 직접 패망의 계기가 된 중일 전쟁 발발...

(나중에 없어졌다는 그 병사는 화장실에 갔었다는 것이 밝혀짐....눈물이 앞을 가리네...물론

일본이 일부러 전쟁내려고 생쇼했다는 것이 정설임)

이후 소장 승진...4군 참모장 근무하다 1940년 중장 승진. 18사단 사단장으로 싱가폴 전투 참전(부상당함)

바탄전투 투입...버마까지 밀고 들어감.

이때 일본 대본영으로 부터 버마와 맞닿고 있는 영국령 인도로의 공격계획이 하달 되지만....

무다구치가 험준한 산맥과 자연장애로 인해 불가능하다며 적극 반대....이에 작전계획 무기한 연기.

이때까지만 해도 나름 합리성을 갖춘 야전부대장의 면모를 보임.

하지만...1943년, 버마 주둔 제 15군의 사령관(15, 31, 33사단 구성)으로 승진하면서 부터 

인간이 확 달라지기 시작함...

인도주둔 영국군이 역으로 버마지역으로 소규모 특수부대가 공격을 가하자...렌야는 인도 침공에 열을 올리기 시작함.


소위 말하는 임팔작전이 시작된 것.

영국군이 쳐들어오는데 역으로 일본군이 쳐들어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


사실 당시 영국 특수부대는 험준한 임팔지대 산악지대를 도보 통과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항공기를 통한 낙하산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임팔작전 입안에 대해 무다구치 렌야의 작전계획서를 상관인 스기야마 하지메 육군참모총장은 부하들의 반대에 대해 

"그래도 무다구치의 체면은 좀 세워줘야 하지 않겠냐?"며 사인을 해줌...참고로...2차대전 전범에 적극 쉴드 치는 

일본 우익들 조차 3대 쓰레기로 무다구치 렌야와 스기야마 하지메, 도미나가 교지(줄타기, 낙하산 인사의 신적 재능을 보인 놈으로...뇌물 셔틀..도조 히데키의 돈주머니...워낙 병신같은 놈인지라 도조히데키 실각후, 도미나가 후속 인사에 대해 그의 상관인 스기야마 하지메 조차...이 병x을 어디다 갖다 박아놔야 사고를 안칠까? 고민하다...당시 가장안전한 남방 전선 육군항공사령관으로 내보냄...결국 이시키가 닥치고 가미카제 작전을 명령해 62차례 400여대의 귀중한 육군항공전력을 말아 잡수심...그러다 전황이 악화되자 위궤양을 핑계로 비행기에 자기가 아끼던 기생과 위스키상자를 싣고 도망감...)

를 손꼽으면서 병신 취급함...


이어 총리대신인 도조 히데키는 계획서를 자세히 들여보지도 않고 목욕탕에서 사인을 해줌으로 써...일본 육군 최대 대재앙의 작전 서막이 오르게 됨. 


험준한 지형에 대한 보급에 대한 부하들의 걱정에 레전드급 어록이 탄생하기 시작...

"버마 농가의 가축(물소 등) 을 징발해 보급품을 싣고 같이 끌고 가라...가다 식량이 부족하면 잡아먹으면 된다"

하지만...실제로 영국군의 포격과 항공 폭격에 놀란 소들이 보급품을 등에 맨체 이리 저리 뛰면서 도망가서...

이중고를 겪게 된다.

이에 대한 렌야의 전설적 어록 또 하나 "일본인은 원래 초식동물이기 때문에 풀만 먹어도 충분히 행군이 가능하다"

31사단장 사토 고토쿠가 철수요청을 하자 이를 질책하면서 한 말 "야마토 혼으로 총탄이 없으면 총검으로, 

총검이 없으면 맨주먹으로라도 싸워라, 주먹이 없으면 발로 차고, 발이 없으면 이로 물어뜯어 이겨라"

결국 31사단장 사토 고토쿠는 "미친놈 말은 들을 필요 없다" 며 항명하고 임의대로 철수를 강행...

전체 15군 6만5천명 중 5만명이 대부분 질병과 굶주림으로 사망하는 대 재앙으로 끝남...

그나마 생존자 1만5천명은 무다구치의 명령에 항명하고 임의대로 철수작전을 펼쳤던 31사단 소속 병사 였음...

천신만고 끝에 돌아온 31사단장에 무다구치 렌야는 말없이 단검을 내밀고...(활복 자살하란 이야기)

이에 31사단장 사토는 화를 내며 정식으로 군법에 회부해 시시비비를 가리자고 반발...

결국 사토 사단장은 본국으로 귀환당해 정신병을 이유로 강제 전역당하고 마무리...당시 도조히데키와 스기야마 등의 

윗선에서 자기들도 이 병신작전 승인에 불똥 튀길까봐 최대한 조용히 마무리 지으려고 한 짓거리...


이렇듯 부하들은 굶어죽고 병들어 죽는 가운데...

무다구치 렌야는 안전한 후방 사령부에서 오후 5시가 되면 땡 퇴근....

일본에서 직접 데려온 전속 요리사와 기생들이 있는 요정으로 들어가 기생들 끼고 술파티~~~


그러다....작전 대부분 실패하고 망해갈 때 한 짓거리가...사령부에 제단 쌓고 승리 제사 지낸거...

결국 작전은 대참패로 끝나고 이후 책임을 진답시고 물러나 예편 했지만...곧 있다가 다시 현역으로 복귀해

육군사관학교 예과(우리나라로 치면 3사관학교 ) 교장으로 근무하다 종전을 맞이 함...

전후 전범용의자로 체포돼 재판을 받기위해 싱가포르로 압송됐으나...워낙 무능한 탓에 연합군에 도움이 됐다고

불기소 처분...(말레이의 호랑이 야마시타 도모유키 장군은 전범으로 사형당함)

믿거나 말거나 소식으로는 한 미군 장성은 렌야에 대해 훈장을 줘야 한다고 까지 할 정도...


이쯤 되면...

앞서 언급한 대한민국 독립유공자로 훈장줘도 마땅한 인물이 될지도...

오죽하면 광복군 비밀요원이라는 우스개소리도 있을 정도...


아무튼...이차대전 일본군 3대 쓰레기 중 선두주자로 손꼽히던 무다구치 렌야는...전후

임팔작전의 실패는 자기 탓이 아닌 부하들의 탓이라고 변명하고 다녔고...부하의 장례식장에서도

그같은 내용의 팜플렛을 만들어 나눠주다가 물세례를 받기도 했다고...

1966년 사망할 때도...유언으로 자신의 장례식에 참석한 인사들에게 자기변명의 팜플렛을 나눠줄 정도라고

하니....더이상 할말이 없는 인간....




ps: 일본 우익들 조차 경원하던 3대 쓰레기가 무다구치 렌야, 스기야마 하지메(그나마 전쟁끝나고 권총자살 하면서 

'자신의 책임을 통감한다'는 유서를 남겨서 부하들을 사지로 내몬 두 병신보단 좀 낫다는 평가를 받음), 도미나가 교지라면...

일본군 인간말종은 바로 관동군 731부대장으로 악명높은 이시이 시로 중장...그리고 치치시마섬에서 포로가 된 

미군조종사를 처형해 인육을 술안주로 삼고 휘하 부대원들에게 먹으라고 명령내린 다치바나 요시오 중장 등이 손 꼽힌다.


ps2: 3대 병신 도미나가 교지도...나중에 남방전선 항공군 말아먹고...도망친 책임을 물어 예편 당했다가...

"이 나쁜 병신새키를 편하게 여생을 보내게해선 안된다"고

판단한 군 사령부가 관동군 139사단장으로 그를 복귀 시킴....그곳에서 소련군과 충돌해 죽으라는 이야기...

그런데 그곳에서 이시이시로 등의 731부대가 세균폭탄 실험에 대해 도미나가 교지 앞에서 회의 하다가

도미나가 교지가 "중국 민간인은 사람 아니냐?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소리를 꽥 질렀다는 일화가 있는 것을 봐서

는...무능에 부하를 죽음에 이르게 한 병신이긴 하지만...최소한의 인간적 양심은 지닌 것으로 판단됨...


ps3: 미군 조종사를 처형해 특별한 술안주가 먹고 싶어 인육을 먹었다는 다치바나 요시오는 나중에 전범재판에서 사형을 

선고 받는데...사형이 이뤄지기 까지 같이 갇혔던 다른 일본군 장성들로 부터 매일같이 두들겨 맞았다고....

한마디로 사람새끼가 아니란 것.....그중에는 무다구치 렌야 휘하의 사단장 1명도 꼈는데...

그가 다치바나 요시오에게 이렇게 외쳤다고 " 야 이새꺄~~ 꼴통 무다구치 렌야도 이런 명령은 내리지 않았다" 고....

결국 매일 두들겨 맞던 다치바나는 거의 구타 후유증으로 죽기 일보직전에 교수형 당함...







ps4: 3시간 뒤에 호주로 출장가는 비행기에 오릅니다. 현지에 데이터 프리 신청하니...

시간 될 때 마다 글 올려보겠습니다...근데 리플 호응을 좀 많이 해주세요....^^

출처 제가 직접 작성, 사진은 구글검색해 퍼왔슴다.
이 글도 slr에 올린걸 지우면서 이곳에 갖고 왔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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